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 지음 / 열림원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어쩌면 우리는 '잊기 좋은' 이름들에 빚지며 살아가는 건 아닐까?
세상에 잊어야 한다거나 잊어도 되는, '잊기 좋은' 이름은 없다

P73 최근 시내버스를 타고 자취방으로 가다 내 가슴 속 저 밑바닥 컴컴한 곳에 놓인 빈 소파를 떠올렸다 가끔 아무도 모르게 혼자 앉아보는, 고독하고 오래 된 한 자리를. 버스 창문을 여시 새삼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버스 운전기사가 틀어놓은 라디오에선 내일부터 정말 추워질 거란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니까 오늘은 여름과 작별하는 날이다 나는 이 시절이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은 생각에, 이런 여름은 이제 없을 것 같은 예감에 쓸쓸했다 숙소에 도착한 뒤 이 이야기를 오랜 친구에게 하자, 나보다 속 깊은 친구는 수화기 너머로 나직하게 말했다 그런 느낌 앞으로 마흔여덟 번은 더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나는 앞으로 내가 겪을 일들을 생각했다 소설 바깥의 말과 입장에 대해서도. 그러니 너무 많은 것을 회고하지는 않기로 한다 여름과 작별하는 일은 마흔여덟 번도 더 남아 있을 테니까. 세상에는 내가 하루에 한 번씩 앉아도 전부 경험하지 못할 많은 소파가 있을 테니 말이다


<두근 두근 내 인생>을 읽고 반했던 김애란 작가님, 첫 산문집
좋아하는 작가님이 어떻게 살았고 소설 속 문장들은 어떻게 탄생했는지 궁금했던 이야기들. 부모님 러브 스토리는 순수하고 소박한데 로맨틱하다 충남 서산의 작은 마을 동네 어르신의 '증래 딸이여 쟈가 작가랴'하는 말이 들리는 듯 하다 동료 작가님들 이야기도, 남달라 보이는 작가님들 이야기도 좋았고 사람 냄새나는 사는 이야기
김애란이다, 그냥 무조건 읽어야 하는

P214 여름이 끝날 무렵, 나는 그곳에서 '당신은 왜 글을 쓰는가'란 질문과 다시 만나보기로 했다 누군가 우리에게 삶이, 인생이, 역사가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는데 굳이 왜 그런 수고를 하느냐 묻는다 해도 할 수 없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