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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릿 - 한동원 장편소설 ㅣ 담쟁이 문고
한동원 지음 / 실천문학사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딴따라? 열정? 청춘? 우정? 친구? 방황? 일탈?
이러한 단어들이 삐릿에서 떠 오르는 단어이다.
고등학교 배정에서부터 1학년 여름방학끝까지 있었던 학교생활과 음악, 그리고 사랑과 열정이 묻어난다. 올림픽을 앞둔 1987년. 책을 읽으면서 예전 학교 시절이 생각났다. 학년마다 틀린 색깔의 명찰 그리고 선도부의 두발단속, 교복.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는 하나의 빛바랜 추억이다. 하지만 남녀공학이 드물었던 시절에 남학교를 다녔더라면 그 시절을 추억해 볼 만한 책임에 틀림없다.
누가 말했던가? 추억이 꿈을 대신하는 순간 이미 늙어가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첫사랑이라는 단어도 청춘이라는 단어가 어떤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그나마 다행인것은 내개도 아직은 청춘과 같은 삶에 대한 열정이 무한정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청춘이란 언제 생각해도 가슴뛰는 열정과 싱그러움이 함께 공존한다.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은 어떠했는가?
사학명문임을 그리고 전통을 고수하려는 선도부소속팀들과 새로운 혁신을 통해 학교재단을 인계인수하려는 음악선생파. 그리고 이 두 대립하는 조직 사이에 있는 사람들. 저마다 가진 외형적인 배경이 훌륭하다. 그 뒷 배경들을 이용해 자신의 잇권을 챙기려는 인간의 욕망이 두드러진다. 학교라는 곳도 구성원들을 보면 경영권을 손에 넣기 위해 암투를 벌이는 영화속 경영현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바로 그 축소판이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흡사하다.
짧은 기간동안에 소수의 등장인물로서 과거의 추억과 향수를 자아내게 하고 청춘으로 되돌아갈 열정을 지펴주는 책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책에서의 시대적 배경이 20년 전, 그 당시에는 중고등학생들이 할 수 있는 곳이 상당수 제한을 받고 있었던 시대였다. 학교에서 체육부나 밴드부, 선도부는 힘의 역학을 배우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지금까지도 여전히 체육부나 밴드부에 대한 시각은 '공부는 안해도 되는 듯'한 인상을 남기고 있는 것이 과거에 많은 수의 학생들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최근에서야 교육당국에서 이러한 시스템을 고치려고 하고 있을 뿐이다. 외국에서처럼 공부도 잘 하고 운동이나 음악도 잘 하는 시스템으로 말이다. 운동을 그만두면 더 이상 할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충분히 찾아 갈 수 있는 시스템으로, 운동이나 교내 음악 활동을 한 것은 추가적인 플러스 포인트로만 존재할 수 있어야만 한다. 특기생이라고 하여 선택학과 기본이수과목이나 기본적 소양을 이수하지 않은 상태에서 학위를 주는 시스템이 아직도 남아있다면 역시 재고해봐야 할 것이다.
현재의 시스템과 미래에 대해서 고뇌하는 젊은 중,고등학생들이 입시전쟁에 열중하느라 순수성을 잃고 해보고 싶은 것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며 보내는 이들이 안타깝다. 부모세대들이 만들어놓은 시스템의 희생양인 것이다. 이제는 암기보다도 더 중요한 자유토론과 창의적 사고를 무기로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 범위를 넓혀 나가야 하는데, 청소년들이 즐길 수 있는 삶, 경험이 필요한 10대의 중요한 시기를 희생하고 있는 것이 무척이나 안스러울 뿐이다.
이 책을 통해 부모나 다른 사람이 정해놓은 틀 속에서 벗어나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고뇌하며 새로운 경험을 함으로써 세상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발을 내 딛는 모습도 보기가 좋다.
어쩌면 이 책에서 저자는 마지막 부분에 양수은의 말을 빌어 이 사회의 부조리를 꼬집는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과 질서, 그리고 도덕조차도 때로는 거대 자본이나 인맥, 조직앞에서는 정의롭지 못할 수 있음을.
"내가 사건 다음 날부터 다른 신문들을 전부 사서 뒤져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런 얘기를 한 신문은 하나도 없더라. 뉴스에서도 그렇고 말이다. 사실 이거야말로 내가 우리나라를 당분간 떠나 있고 싶은 가장 큰 이유다. 나는 언론들이 이 사건의 진상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p361)",..."게다가 일개 개인이 낸 의장등록이니 특허권이니 하는 건, 큰 회사의 자금력하고 조직력 앞에선 x 묻은 휴지 쪼가리도 안 된다는 걸 알았겠냔 말이다. 그 순진한 양반이 생각했던 건 그저, 열심히 노력하고 연구해서 외국 유명 메이커들만큼 좋은 일렉 기타를 만드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저 딱 거기에 맞는 대가를 얻어서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것뿐이었다.(p.363)"
이 구절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말이 하나 있다. 세계적인 거대 자본가들에게 있어 '국가는 아무 의미가 없는 하나의 조직일 뿐이고 우리는 이윤과 수익 창출을 따라 움직일 뿐'이라는 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