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가족, 희망여행을 떠나다
대니얼 글릭 지음, 정명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성공자의 과거는 초라할수록 더욱 빛나고, 실패자의 과거는 찬란할수록 더욱 비참하다고 했던가. 저널리스트였던 저자는 결혼생활에서 결코 본인이 이혼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행복한 삶을 살아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아내로부터  황당한 (여자 친구를 연인으로 하여 함께 살기로 하고)이혼결정 통보를 받게 된다. 이 얼마나 황당하고 허무할까? 게다가 이혼 1년째 되는 날은 그 누구보다도 많은 추억을 함께하였던 소중한 가족인 형이 암으로 투병생활을 하다가 죽음을 맞게 된다.

 

행복한 시간이 오래 지속된 후 닥치는 불행은 작은 불행일지라도 아주 크게 와 닺는 법. 하물며 어느 누가 보더라도 충격적인 상황을 연이어 맞게 되는 저자가 할 수 있었던 결정은 열 살 전후의 딸, 아들과 함께 낯선 오지 세계 여행을 계획한 것이었다. 환경오염과 지구 생태파괴의 끝자락에 서 있는 희귀 동물들과 지구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함께 보기 위해서....

 

150일간의 세계여행이라면, 상당히 호화롭거나 값비싼 비용을 치루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아직까지도 통념상 세계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어쩌면 부자들이나 누릴 수 있는 사치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의 가족 여행은 결코 호화로운 여행은 아니었다. 호화 여행을 한다면 어린 자녀들과 밀림이나 오지를 찾아 떠나겠는가.

 

서구와 아시아의 문화차이, 접하는 사람들과 환경, 그리고 화식조와 코뿔소 같은 멸종 직적의 희귀 동물과의 만남, 911과 관련된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인식들...

 

변화없는 삶을 살고 있다면 얻을 수 없는 것들을 시공간의 여행을 통해서 삶과 자연에 대한 인식에 많은 변화를 갖게 된다.

 

잊고 싶을 정도의, 크거나 작은 일들이 생겼을 때 시간이 약이 되기도 한다지만 시간과 함께 살아야하는 우리들이 내릴 수 있는 결정에는 무언가 몰입 할 수 있는 다른 대상을 찾기도 한다는 것이며 이 중 하나가 여행이 될 수 있다. 낯선 환경에 대처하다보면 순간순간의 상황에 몰입하게 되기 때문이리라. 저자도 커다란 두가지 절망적인 상황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찾은 탈출구가 바로 희망을 찾아 떠난 150일간의 세계여행이었던 것이다.

 

여행을 하며 정리되는 몇개의 소중한 구절을 인용하고, 일부 글을 덧대어 본다.

1) 가족에 관하여, 형제자매 또는 남매와 관련하여,...

저자는 걸핏하면 딸과 다투는 아들에게 한마디 한다. 형에 대한 사랑 그리고 슬픔과 남매에 대한 아빠로서의 사랑이 묻어 있는 말이기도 하다.  "아빠와 엄마를 제외하고는 여동생만큼 너를 무조건적으로 영원히 사랑해줄 존재는 이 세상에 없다고. 그때 나의 두 눈엔 눈물이 가득 괴어 왔다(p.342)"

 

2) 지나온 과거 아내에 대한 생각중에서

"오랜 세월 서로 신뢰하고 사랑했던 우정 관계.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멀리 찢어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쩌다가 이런 신세가 되고 말았는지 다시 한번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나이가 들면서 레베카가 변화하고, 또 그녀가 평소 알고 있었던 자신의 울타리를 크게 넘어서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몸부림치고 있을 때 나는 그녀의 노력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고 그 노력을 지지해주지도 못했다. 만약 내가 처신을 달리했다면 일이 다르게 전개되었을까?(p.367)"

 

3) 뒤늦은 시간이지만 깨달을 수 있는 것

"이제 우리 인간은, 적어도 인간들 중 일부는 야생에는 그 나름의 전형적이고 필수적인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가고 있다. 그런 깨달음을 얻기까지 인간은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호랑이의 95%를 없애는 우를 범했으며 그 동안 우리 인간은 전원의 농경사회에서 기계화된 도시로 옮겨갔다(p.405)" 이 말은 가족과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진 다음에서야 뒤늦게 소중한 가치를 깨닫는 우를 범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인 듯 하다.

 

4) 여행으로 부터 얻은 것들

 "나는 어슴푸레 모습을 드러내려 하는 기나긴 여정의 끝을 위안과 슬픔, 그리고 아주 특별한 무엇인가를 해내고 말았다는 충만감을 느끼며 바라보았다. 정말로 믿어지지 않는 이 여행을 반추하면서 나는 자신에게 또 다른 자축의 순간을 허락했다. 여행의 속도도 적절했고, 모험도 어느 정도 즐겼고, 재미도 있었고, 서로의 가슴을 따뜻하게 비빌수도 있었고, 사랑스러웠고, 적당히 힘이 들기도 했고, 세상을 보는 시야도 열어주었고, 무엇보다도 잊지 못할 일들이 많지 않았는가. 여행하는 동안 다툼이 있고 싸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과 나 사이에는 매우 강력한 유대가 형성되었다(p.423)" 많은 이들이 추구하는 여행의 목적, 특히 가족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훌륭한 가치를 얻지나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5) 아픈만큼 성숙해진다.

"상실감은 무한한 치유의 가능성을, 지금까지는 깨닫지 못한 채 놓쳐온 그 가능성을 다시 창조해냈다. 만약 비탄과 상실 속에 뭔가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면,  우리는 그 교훈을 태울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p.489)" 쉬운 노랫말처럼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이와 비슷하지나 않을까.

 

5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고, 소설인지 기행문인지 또는 탐사노트인 듯 싶기도 하지만 고뇌하며 여행을 하는 저자와 새로운 것을 접하며 성장하는 두 자녀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저마다 다른 이유와 목적을 가지더라도 소중한 세계여행을 꿈꾸고 계획해 보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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