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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 드는 밤의 궁궐 기담 ㅣ 궁궐 기담
현찬양 지음 / 엘릭시르 / 2022년 9월
평점 :
혹시 무서운 이야기 좋아하시나요? 기이한 이야기는요? 한 여름밤 등골을 오싹하게 해 주는 기담이 있다면 들을 요량이 있으신지요.
어릴적 이불을 뒤집어 쓰고 손바닥으로 눈을 가려가면서도 티비 앞에 앉게 했던 전설의 고향이 생각납니다. 책장을 펼치기도 전에 『잠 못 드는 밤의 궁궐 기담』에는 어떤 내용일지 몹시 기대가 되었어요. 나쁜 일이 일어날 줄 뻔히 알면서도 결국에는 어기고 마는 금기라니. 도대체 한밤의 궁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1장 도깨비집터
2장 사라진 궁녀
3장 천벌
4장 쥐 중에서 고양이 같은 것
5장 군자불어괴력난신
외전 면신례
궁녀규칙조례
작가의 말
『잠 못 드는 밤의 궁궐 기담』은 이방원이 통치하고 있는 조선 시대의 경복궁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경복궁의 교태전이 주 무대라고 할 수 있지요. 중전인 원경왕후와 딸인 경안궁주가 교태전에 머물고 휘영당, 안상재, 운경당에도 각각 후궁들이 머물고 있습니다.
주상의 명으로 중전이 교태전에 갇혀 냉궁이라 불리는 중이나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궁은 여전히 말도 많고 탈도 많지요. 이야기는 경복궁에서 일하는 궁녀들이 주축이 되어 진행되는데 가장 중심이 되는 인물은 교태전의 지밀나인 마노아와 세답방 나인인 장백희입니다.
해마다 이맘때만 되면 경복궁에 부엉이가 날아듭니다. 근정전 처마에 보란 듯이 앉아 밤이 새도록 우는 부엉이(고양이매)를 쫒느라 소란한 여름밤, 노아와 백희의 방에 어린 나인들이 들이닥칩니다. 자기 방에서 자는 게 규칙이지만 문앞에서 베개를 쥐고 벌벌 떠는 나인들에게 백희는 오늘만 같이 자자며 불러 들입니다. 불길하기 짝이 없는 부엉이 울음 소리는 언제나 그렇듯 꼭 2주간 이어져요.
궁궐에는 왜 이리 금기가 많습니까?
이것도 하지 마라, 저것도 안 된다.
정말이지 언제 무얼 하나 어기게 될지
몰라서 늘 불안하다니까요.
완전히 도깨비 소굴이야.
1장 도깨비집터_P.35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어린 나인들이 버선이 자꾸 없어진다며 투덜대자 이를 귀엽게 바라보던 백희가 한마디 툭 던집니다.
버선 도깨비 있지!
여기가 원래 도깨비 집터였잖아.
1장 도깨비집터_P.35
모두가 잠깐 말을 멈춘 바로 그 시점에 부엉이가 부엉, 울고 미닫이 문이 벌컥 열리며 경안궁주가 들어섭니다. 그리고 경복궁을 도깨비집터라고 말한 연유를 캐묻지요. 궁주의 하문에 어쩔 수 없이 백희가 입을 엽니다.
단, 한 가지 약조를 해주셔야 합니다. 우리 궁녀끼리는 비밀 이야기나 괴이한 이야기를 하고 나면 반드시 귀를 씻는답니다. 귀 씻은 물을 대나무밭에 부으면 비밀을 지키겠다는 뜻으로 받습니다. 오늘 이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을 돌아다니지 않고, 오로지 대나무숲만 헤맬 수 있도록 해주신다면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약조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1장 도깨비집터_P.42
이렇게 시작되는 첫번째 기담은 바로 경복궁이 지어지기 전에 그 자리에 있었던 백희의 집, 바로 도깨비집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백희는 과연 무슨 사연을 지닌 걸까요? 자신이 살았던 집이 도깨비의 집터였다는 백희의 말에 저절로 숨을 죽이고 이야기에 빠져들었습니다.
한양부에서 누가봐도 당당한 기와집에 살고 있던 백희는 그야말로 사랑받으며 자란 양가집 규수였어요. 오라비는 학문에 재능이 있어 소과에 급제하고 개경 유학길에 올랐지요. 그러나 좋은 시절도 한 때, 나라의 주인이 바뀌자 겨우 목숨을 부지한 오라비는 집으로 돌아와 자리에 드러누워요. 장손이 병석에 눕자, 가세는 천천히 기울고 아버지마저 주색에 빠져 돌아가시고 맙니다. 급기야 아버지의 상을 치르는 중 찾아온 한 도사로부터 '이 집 장손은 사람 백 명을 먹어야 살겠'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날부터 오라비의 병세는 악화되고 어머니는 백희를 다른 집에 가서 돈을 벌어오라며 일을 시킵니다. 여느 때처럼 일을 다녀오던 어느 날, 백희는 집 앞에서 생전 아버지처럼 장성한 오라버니를 만납니다. 집 안 어디에도 어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병약했던 오라비는 이제 다 나은 모양이라며 기운이 넘쳐났습니다. 오라비가 그간의 노고를 치하하며 목간을 권유하기에 백희는 부엌 문고리에 숟가락을 걸어두고 오랜만에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어요. 그런데 오라비가 자꾸 문을 두드립니다. "목간 다 했니? 백희야, 목간 다 했니?"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남겨진 백희는 어떻게 될까요? 정말 오라비가 사람들을 잡아 먹은 걸까요? 오라비는 사람일까요, 도깨비일까요?
각 장이 끝날때마다 괴이도감이 실려 있어요. 1장의 끝에는 부엉이를 고양이매라 부르는 이유와 백 명의 사람을 잡아먹으면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는 비비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도깨비집터를 시작으로 기담은 매일 밤 이어집니다. 화자가 청자가 되고 청자가 화자가 되기도 하면서요. 궁궐 안에는 기이한 일들도 소문도 어찌나 많은지요. 그런 와중에 궁녀가 사라져 궐이 발칵 뒤집어지기도 합니다. 하늘로 솟았거나 땅으로 꺼졌을리 만무한데 궁녀 하나가 감쪽같이 사라진 거지요.
사라진 궁녀는 새로 들어온 후궁의 몸종인 '한단지'였는데, 아직 궐의 사정을 알지 못하고 뻣뻣하게 굴다가 빨래터에서 싸움을 일으켜요. 하지만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고 했던가요? 잘못을 한 단지 대신 자기 자리를 빼앗긴 세답방 나인 효진이 외려 혼이 납니다. 그 후 며칠이 지나지 않아 단지가 홀연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어요. 단지는 어디로 간 것일까요?
단지의 행방을 두고 말이 많아지던 어느 날 밤, 효진과 어린 나인들은 춘향이 놀이를 합니다. 요새 말로 하면 분신사바, 같은 것일까요? 춘향이를 불러 질문을 하는 놀이인데, 이것은 궁녀 규칙 조례에도 떡하니 적혀 있는 금지된 놀이입니다.
금지된 놀이를 한 바로 다음 날, 효진이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는 일이 생깁니다. 그런데 이상도 하지요. 마치 하늘이 아닌 땅에서부터 벼락을 맞은 듯 아래는 새카맣게 탔는데 얼굴은 멀쩡하고, 시체에서는 순식간에 물비린내 같이 썩은 악취가 풍겼습니다. 이 또한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지요. 궐은 점점 흉흉해지고, 사건의 내막을 알아내기 위해 왕은 괴인이자 신선이라 불리는 강수 선생을 궐에 불러들입니다. 교태전 소속의 환관이라는 신분으로 수사를 맡게 된 강수 선생은 과연 사건의 내막을 파헤칠 수 있을까요?
물고기였는데 오래 살아 신력을 얻으면서 사람 모양을 갖추게 된 병화어, 쥐면서도 다른 쥐를 공격해 잡아 먹는 서묘, 사람의 신체와 닮았으나 사람은 아닌 괴인, 이마에 뿔이 돋아 있고 세월이 가도 늙지 않는 강수, 강수가 부리는 교전지상까지 온갖 괴상한 이야기가 한데 모여 있는 『잠 못 드는 밤의 궁궐 기담』의 백미는 외전인 '면신례'에 있습니다.
외전에는 열 여섯이나 되어 입궁하여 나인임에도 불구하고 어린 생각시들의 눈치를 보며 일을 배우는 처지였던 백희와 고려시대부터 궁에서 생활했으나 그 태도를 고깝게 여겨 침방에서 괴롭힘을 당하던 노아의 첫 만남이 실려 있어요.
외전을 읽은 후 별책부록처럼 나온 궁녀 규칙 조례를 읽다보면 피식 웃음이 비어져 나옵니다. 궁에 들어오는 어린 아이들에게 이 비망록을 일러주는 것이 무엇으로부터 비롯된 일인지 알고 나면 엄격하게만 보이는 규정에도 틈이 있음을 알게될 테니까요.
'경복궁이 거대한 학교라고 한다면 궁녀들은 영원히 졸업하지 못하는 학교에 갇힌 학생'이라며 '온갖 불합리한 규율이 판치는 곳이며 불안과 공포가 일상화된 공간'에서 '괴물들이 실체화된다면 얼마나 즐거울까'라고 생각했다는 작가의 이야기에 불현듯 『밤을 걷는 선비』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궁궐 안 깊은 곳에 살고 있는 흡혈귀도 있는데 더한 괴물도 많겠지 싶어지면서요.
『한국 괴물 백과』를 토대로 『어우야담』 등의 옛 이야기를 비롯, 여러 논문들을 참조하여 제 3의 괴물을 만들어 냈다는 작가의 상상력에 탄복했습니다. '경복궁을 거닐 때 한 번이라도 괴력난신이 즐비한 조선을 상상해 주신다면 작가로서는 더없는 영광'이겠다는 작가의 말에 선선한 가을날 경복궁을 한 번 가봐야 겠다고 생각해봅니다. 아름다운 경복궁에서 괴이한 일들을 들춰보는 낯선 시선으로 이야기를 음미하며 거닐어 보는 것도 색다른 체험이지 않을까요?
이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한다,
낯선 이여.
작가의 말_P.323
작가의 환영 인사를 받으신 여러분, 괴이한 일이 펼쳐지는 경복궁으로 지금 바로 입장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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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