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 이름 붙이기 - 마음의 혼란을 언어의 질서로 꿰매는 감정 사전
존 케닉 지음, 황유원 옮김 / 윌북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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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혼란을 언어의 질서로 꿰매는
감정 사전 『슬픔에 이름 붙이기』

누구나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일 때가 있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모호한 감정들에 이름을 붙이지 못할 때 마음은 외로움과 공허함에 물든다.

작가 존 케닉은 불완전한 언어의 빈틈을 메우고 싶다는 생각을 실천으로 옮겼다. 인류 전체가 공유하고 있지만 아직 이름은 없는 감정들을 하나하나 명명하고 질서 정연하게 정리하는 그의 프로젝트는 바로 '슬픔에 이름 붙이기'다. 이 프로젝트는 수많은 이의 공감을 자아내 언론 매체로부터 찬사를 받는 작품이 되었다.

『슬픔에 이름 붙이기』는 감정을 표현하는 신조어 사전이다. 단어와 단어를 조합하거나 여러 가지 있었던 사실들, 심지어 피아노 곡명 등을 통해 새롭게 단어를 만들기도 하는데 어원이 분명하게 표기되어 있어, 신조어뿐만 아니라 그 단어가 빚어진 사실들까지 함께 알아볼 수 있다.

사실 한글로 이루어진 신조어가 아니기에 다소 난해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책 날개에 적힌대로 '박학한 언어학적 지식과 마음의 뉘앙스를 잡아내는 섬세하고 집요한 감각'은 나의 시선을 잡아 끌어 문장과 문장 사이를 이어달리게 만들었다.

도대체 장르가 뭐야? 라는 물음을 이게 바로 존 케닉의 장르구나, 하는 깨달음으로 바꾸게 만드는 책, 『슬픔에 이름 붙이기』.

짤막짤막한 단어 설명에도 문학적 감각과 센스가 돋보였지만, 어떤 단어들은 짧은 에세이 한 편 정도의 분량으로 설명이 되어 있다. 그중에서 '당신이 원하는 삶과 당신이 살고 있는 삶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는 기분'을 뜻하는 오즈유리나 '당신이 경험할 세상이 얼마나 작을지에 대한 깨달음'을 뜻하는 오니즘, '거듭되는 자기 회의의 위기'를 뜻하는 쿠도클라즘은 현재 내 상황을 콕 집어 얘기하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 질문에 대한 답을 얻는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신비를 헤쳐 나가며 던지는 질문이라는 행위, 틈을 건너가려는 노력의 행위다―그것이야말로 매달릴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계속 살아 있게 해야 할 감정이다. 설령 우리가 그 감정을 표현할 적확한 말을 절대 찾아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_그노시엔느(여러 해 동안 알아온 누군가에게도 개인적이고 신비한 내적 삶이 존재한다는 깨달음) 중에서 P.137~8

책에는 각각의 단어에 대한 콜라주 작품도 함께 실려 있다. 단어를 보고, 그 단어에 대한 설명을 듣고, 그 단어를 토대로 생성한 이미지를 보고 있노라면 단어의 의미를 점차 확장시켜 내 안에 가져올 수 있게 해 준다. 다시 말해, 작가가 만들어 낸 신조어지만, 그 단어가 주는 울림, 그 단어가 내 안에 스며드는 의미는 오롯이 나만의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 결국 당신은 모든 게 자신만의 관성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 디르게 된다. 그리하여 가만히 있을 때조차, 긴 하루가 끝나서 침대에 몸을 눕힐 때조차 어딘가로 달려가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비록 내일 조금 더 빨리 뛰게 되더라도, 팔을 조금 더 멀리 뻗게 되더라도, 당신은 부유하며 모퉁이를 돌면서 여전히 시간이 흘러가버리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삶은 짧다― 그리고 삶은 길다. 물론 순서는 반대다. _제노시네(시간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느낌) 중에서. P.190

*당신의 삶은 지워지지 않는 잉크로 쓰여 있다. 돌아가서 과거를 지우거나 실수를 수정하거나 좋친 기회를 다시 붙잡기란 불가능하다. 순간이 끝나자마자 당신의 운명은 결정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당신의 경험을 기록한 잉크는 사실 말라 있지 않다. 당신의 경험은 들여다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의미가 변한다. _클렉소스(과거를 곱씹는 기술) 중에서. P.203

*당신은 시간의 바다로 나뉜 두 사람이다. 당신의 일부는 자신이 본 것을 이야기해주고 싶어 안달이고, 또 다른 일부는 당신에게 그게 전부 어떤 의미인지 말해주길 애타게 바라고 있다. _데뷔(이 순간이 기억이 될 거라는 깨달음) 중에서. P.230

*당신은 한때 느꼈던 것과 똑같은 평화로움, 차 뒷좌석에서 잠들었다가 깨어나 보니 자기 침대로 순간 이동해 있던 시절의 평화로움을 절대 다시 느끼지 못할 것이다. _유이(무언가를 다시 강렬히 느껴보고픈 열망) 중에서. P.241

『슬픔에 이름 붙이기』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의 팔레트에서 알맞은 색상만을 가려내어 속 시원히 찍어 주는 감정 사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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