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 노인들의 일상을 유쾌하게 담다. 실버 센류 모음집
사단법인 전국유료실버타운협회 포푸라샤 편집부 지음, 이지수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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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마다 웃음이 터져 나오는 실버 센류 걸작선.

'센류'가 뭔가 하고 찾아봤더니 에도 시대 중기에 성립된 운문 장르로 하이카이와 비슷하지만 계어 사용의 제약이 없고, 자유롭게 용어를 구사하여 사회의 모순이나 인정의 기미를 예리한 골계로 표현하는 서민문학이란다. 쉽게 말해 일본의 정형시 중 하나로 5-7-5의 총 17개 음으로 된 풍자나 익살이 특색인 짧은 시이다.

<실버 센류>는 사단법인 전국유료실버타운 협회의 주체로 2001년부터 매해 열리고 있는 센류 공모전의 이름이다.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은 2011년과 2012년의 입선작을 포함한 여든여덟 수를 모아 놓은 <실버 센류> 걸작선이다.

센류에 실버가 붙었으니 노인을 대상으로 한 짧은 시겠거니 하고 펼쳐봤는데 지은이의 성별도 나이도 천차만별이다. 편집 후기를 읽어 보니 2012년에 12회를 맞은 <실버 센류>의 최연소 응모자는 여섯 살, 최고령 응모자는 백 살, 응모작 수는 무려 11만이 넘는단다. 작품은 그야말로 인생과 시대를 반영한 역작!

책장을 넘길 때마다 짧은 문장에 웃음이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짠해졌다. 아마도 나 역시 나이를 먹어가고 있기 때문이겠지. 노년과 죽음이 멀리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그야말로 웃픈 글들에 공감하고 다음 장을 기대하며 앉은 자리에서 휘리릭 읽었다.

나는 유머와 위트가 부족한 사람인지라 몇 번이고 들춰봐도 웃음 속에 애잔함과 서글픔이 공존하는 짧은 글귀에 다시금 감탄하고 말았다. 사는 게 힘들고 지치는 날, 이유도 없이 눈물이 터져나오는 날에 곁에 두고 슬쩍 슬쩍 펼쳐보면 좋을 책이다. 짧은 시구를 보고 피식거리며 웃다 보면 마음의 근심 걱정과 우울도 조금씩 그 무게를 달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나하나 너무 다 즐겁게 읽었던 터라 그 중에서 몇 개를 고르는 건 쉽지 않지만 일부를 발췌해 본다.

🏷
생일 케이크 불고 나니 눈앞이 캄캄
비밀번호 카드가 많아져서 뒷면에 적는다
똑같은 푸념 진지하게 듣는 건 오직 개뿐
쓰는 돈이 술값에서 약값으로 변하는 나이
혼자 사는 노인 가전제품 음성 안내에 대답을 한다
아내는 여행 나는 입원 고양이는 호텔
요즘은 대화도 틀니도 맞물리지 않는다
이름이 생각 안 나 이거 저거 그거로 볼일 다 본다
이봐, 할멈 입고 있는 팬티 내 것일세
두 사람의 연애담 처음 들은 장례식 날 밤
손주 목소리 부부 둘이서 수화기에 뺨을 맞댄다
서로를 돌보며 다시 한번 싹트는 부부애
홀딱 반했던 보조개도 지금은 주름 속

무릎을 탁 칠 만큼 공감이 가는 시구를 읽다 보면 웃음이 났다가 짠해졌다가, 결국에는 마음에 따스함이 스며든다. 통통 튀듯 가볍게 쓰여진 듯한 시들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묵직한 여운이 남는 시집이다.

📕
나이를 먹는 것은 누구나 가는 길을 걷는 일입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기쁜 일로만 가득한 건 아닌 울퉁불퉁한 길이지만 나이를 먹었기에 보이는 풍경도 분명 있습니다. 이 책과 함께, 힘을 빼고 즐겁게 그 길을 걸어보세요.
_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편집 후기 중에서

힘을 빼고 즐겁게, 노년으로 가는 그 길을 천천히 걷고 싶다. 아울러 이런 위트와 유머를 장착할 수 있다면 사는 게 조금쯤 더 수월하지 않을까.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웃음 너머 담긴 따스한 위로를 만나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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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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