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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알 것 같은 마음 ㅣ 연시리즈 에세이 14
금나래 지음 / 행복우물 / 2022년 9월
평점 :
『왠지 알 것 같은 마음』의 작가 사인본을 받았습니다. 함께 온 엽서와 책갈피도 너무 예뻐서 한참을 들여다 보았어요. '인생의 반을 그림을 그리며 보낸' 금나래 작가의 시적인 언어들이 책장 가득 출렁이는 에세이집입니다. 책 곳곳에 작가의 멋진 그림과 사진들이 수록되어 있어요. 슬픔과 외로움, 그리움 너머 마음 깊은 곳에 일렁이는 파랑을 담아낸 에세이, 만나 보실까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때, 나는 '파랑이 인다'라고 한다. 파랑은 너울이 되어 결마다 흉터를 남겼다. 나를 보는 것이 아물어가는 상처를 헤집는 것 같아서, 소멸하지 못한 채 오늘이 되었다. 파랑을 마주하는 것은 어쩌면 숙제 같은 것일지 모른다.
아침놀_파랑 중_P.9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순간, 내 안에 파랑이 이는 그 순간을 시시때때로 경험했던 지난날들이 떠올랐어요. 어쩌면 현재 진행형에 가깝달까요. 저도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요즘입니다. 내 안의 파랑에 온몸을 던져 감정 사이를 드나든 뒤에 말갛게 갠 오늘을 맞이해보고 싶습니다. 지금 제게 가장 필요한 것은 어쩌면 혼자 떠나는 여행일지도 모르겠어요.
기억은 때때로 슬픔과 아픔을 동반해요.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 어느 하나를 끊어낼 수도 떼어낼 수도 없지요. 그래서 잃어버린 그 시간들이 더 아프게 다가오나봅니다. 하지만 그렇게 그리움으로 진하게 얽힌 그 감정들을 온전히 느낀 후에라야 비워낼 수 있는 거겠지요. 채우고 비우고 그렇게 잊혀가는 모든 상실의 기억에 애도를 표합니다.
'내 마음 깊이 심어'진 그리운 이에게 안부를 전해보는 것처럼 따스한 일이 또 있을까요. 마음밭에 꼭꼭 심어 씨를 밟듯 간직한 그리운 이들을 떠올려봅니다. 부디, 안녕하시기를.
어쩐지 씁쓸해지던 식사 시간, 두 엄마의 아득한 시간이 그려진다. 가늠할 수조차 없는 고통, 나였으면 못했을 거라는 말에 엄마와 해녀는 자식이 있으면 못할 게 어딨냐며 입을 맞춘다. 돌이켜보면 엄마는 나랑 둘이 있을 때 가끔 울기도 했었던 것 같다. 나는 엄마가 왜 우는지 몰랐지만, 그냥 따라 울었다. 어린 딸 앞에서 소리죽여 울던 엄마의 나이가 되어서야, 고단했던 밤과 들썩이던 뒷모습이 가슴에 소복이 내려앉는다.
먼 바다, 숨비소리가 수면에 흩어진다.
고통에서 나온 소리라기에는 새들의 지저귐처럼 청아한.
숨비소리_P.50
'자식이 있으면 못할 게 어딨냐'는 엄마의 말. 저 역시 엄마가 되었지만, 죽었다 깨나도 우리 엄마처럼은 못 살 거예요. 자식을 품고 희생하며 한 생을 살아내신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께 존경의 마음을 전합니다. 어디선가 길고 청아한 숨비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뭉클했던 순간이었어요.
깊어진다는 것은,
가슴 한편으로부터 뭉근하게 번져오는
온기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말, 이상의 것_P.53
가슴 한편으로부터 뭉근하게 번져오는 온기, 그 온기로 매일을 버티며 살아가는 것 같아요. 작은 온기 하나에 울고 웃는, 여전히 마음만은 소녀인 저라서 이 짧은 글귀가 무척 반가웠습니다. '손끝에 온기를 담아 마음을 전한다'라는 뜻으로 지은 제 아호가 떠올라 더 그러했겠지요.
어떤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바래지 않는다.
떠올리면 지금이 되는 그 밤.
색과 선으로 이루어진 기억 저편의 사람들과
밤새 춤을 추고.
부드럽고 황홀하게_P.61
어떤 기억들은 너무도 생생해서 떠올리면 지금 이 순간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손에 잡힐 듯 눈앞에 펼쳐지는 기억들과 그 속의 나. 가만히 눈을 감고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추억 속에 잠겨 있다 보면 현실의 나를 잠시 잊을 수 있을 테니까요. 잠시나마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의 나로부터 힘을 얻는다면 현재의 괴로움도 슬픔도 조금 가벼워지지 않을까요.
체온은 전해지는 것이다. 눈보라 치는 벌판 위에서 들려오는 너의 목소리, 살 속으로 파고들던 소소리바람 흔적 없이 사라지고, 나는 붉게 돌아와 마음먹었다. 네가 내 세계에 꽃을 피운 것처럼, 이제 나의 계절은 봄이어야 하겠다고.
나의 계절이 당신에게 봄이기를_P.87
한 장 또 한 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시적인 문장들에 턱턱 걸려 넘어지고 맙니다. '이제 나의 계절은 봄이어야 하겠다'는 작가의 다짐 앞에 스스로를 돌아봐요. 혹시 내 안에도 꽃이 피어있을까 슬그머니 들여다보지만 마른 사막 같아서 씁쓸합니다. 그 사막 안에 오아시스가 있다면, 거기엔 아주 작디 작은 꽃망울이라도 맺혀있을까요. 바람결에 날아온 꽃씨라도 품어 봄을 꼭 피워내야겠어요.
'결혼에 대한 나의 로망은 따뜻한 색감의 유화 같았'으나 '발가벗은 현실 앞에서는 여간해서 한 걸음 내딛기도 벅찰 것 같아서' 로망을 지향하지 않았다는 작가의 다음 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욕실은 눈물의 방이었다.
울기 위해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샤워를 했다.
종려나무 그림자_P.192
아이를 낳는 일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지요.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그 오묘한 경험을 산고를 겪은 여자들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을 거예요. 우울증 진단을 받고, '뜨겁고 차가운 순간들을 지나면서 사랑의 밀도가 높아'진 그녀는 늘 곁에 있어준 소중한 연인, 뮤즈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혹 잊으실지 몰라서 한 번만 적어'둔다면서요.
나는 하얀 풀씨처럼
당신이 부는 방향으로 날아갑니다.
저녁놀_나인, 당신에게_P.208
이런 사랑 고백이라면 작가의 바람처럼 '매일 말하지 않아도 늘 알아'줄 수 있지 않을까요. 책을 집필하는 동안 아이는 훌쩍 자라나고, 늘 변함없이 존중해주던 부모님은 흘러간 시간만큼 함께할 시간도 점점 줄어들겠지요. '콩쥐의 장독'처럼 '속절없이 새어 나가'는 시간은 어찌해 볼 도리가 없으나 애틋함과 사랑을 가득 담은 문장으로 그 마음을 담아냅니다.
당신은 지는 순간까지도
어찌 그리 고운가요.
저녁놀_나인, 당신에게_P.209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사진에서 어쩐지 애수와 쓸쓸함이 짙게 느껴지고, 표지 그림에서 볼 수 있는 특색 있는 그림들이 시적인 글귀 사이사이를 가득 채워주는 에세이 『왠지 알 것 같은 마음』이었어요.
작품 전시 기간에는 자리를 지키는 편인 작가는 어느 날, 전시회에 여러 차례 찾아온 남자와 시선이 마주칩니다. 사회초년생처럼 보이는 그와는 '서로 수줍어 어색한 미소만 나누었지만, 왠지 알 것 같은 마음'이었다지요. '손 없이 주고받는, 그런 일들이 좋아서 나는 작업을 이어가는지도 모르겠다'는 작가의 글에 어쩐지 저도 알 것 같은 마음이 되었습니다.
짧은 에세이 안에 시적인 표현이 가득해서 스윽 읽기보단 여러 번 다시 곱씹게 되는 글들이었어요. 저의 일상에 유유한 파랑이 되기를 바란다는 작가님의 말씀대로 읽는 동안 출렁이는 문장의 파도에 흠뻑 취했습니다. 색색의 아름답고 특색 있는 그림들에 눈호강했고요. 특히 눈동자 다음에 나오는 여인의 얼굴 그림이 기억에 남아요.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 끝에 누가 닿아 있을까요? 그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차오르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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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