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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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심해어들


편리주의자 가라사대


나쁜 감기 사랑 감기


역자후기


차례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귀여운 후배를 짝사랑하는 어수룩한 남학생의 고군분투기를 그린 로맨스 판타지입니다. 로맨스, 라고는 하지만 간질간질한 무엇이라기보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절로 선배를 응원할 수밖에 없는 그런 로맨스일까요. 교토의 대학가와 마을을 배경으로 하지만 이야기에 휩쓸려가다 보면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할 법한 상상력 내지는 망상력이 최고조에 달하는 소설입니다. 



애니메이션, 좋아하시나요? 실은 저는 이 책을 예전에 읽었습니다. 까맣고 윤기 흐르는 단발 머리를 찰랑이며 밤길을 씩씩하게 걷는 소녀와 그 소녀의 뒤를 쫒는 어수룩한 남학생의 이야기. 그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데에는 책으로도 읽고 애니메이션으로도 보았기 때문이지요. 이 작품 뿐만아니라 『펭귄하이웨이』도 소설과 애니메이션으로 다 보았습니다. 어느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펭귄무리라니... 정말 놀라운 상상력을 가졌는데 그걸 표현해 내는 방식이 또 매력적입니다. 『다다미 넉장 반 세계일주』나 『유정천 가족』도 꽤나 재미있게 읽었다지요. 그러고보니 저 모리미 도미히코의 소설을 꽤나 읽었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의 개.정.판.이 나왔다고 하여 기대가 되었습니다. 아가씨가 걸어가는 모습을 단순화하여 표현한 표지도 귀엽고요. 개정판에서 어떤 변화가 있을지도 궁금하고요. 물론, 비교 분석하기에는 이미 읽은지가 꽤 오래되긴 했지만요. 



모리미 도미히코의 소설을 처음 접하시는 분은 아마 어리둥절 할지도 모르겠어요. 아니, 이런? 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하는 만화적 상상력이 현실세계를 넘나드는 그런 소설이거든요. 두께도 꽤 두툼한 편인 이 소설은 작가가 끝내기로 마음 먹었기에 망정이지 우주 끝까지라도 써내려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망상력" 에 불과하다고 치부하기에는 그 상상력이 너무나 탐나는 1인인지라 읽으면서 예전의 기억이 속속 떠오르기도 하고, 애니메이션의 장면이 연상되기도 하여 참 즐겁게 읽었습니다. 


소설은 두 명의 화자가 이끄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밤길 순회를 나서는 아가씨와 그 뒤를 쫒으며 기상천외한 일들을 겪는 남학생이 번갈아가며 이야기하는데요. 문체가 달라서 쉽게 구분이 갑니다. 남학생의 이야기도 여학생의 이야기도 둘 다 매력적입니다만, 읽다보면 어쩐지 제군들, 혹은 독자 제현, 이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 놓는 남학생의 말투에 슬슬 중독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야기는 검은 머리의 아가씨가 기야마치에서 시작하여 본토초 일대의 밤길을 순회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아가씨가 밤거리에서 만나는 인연들은 하나같이 독특하고 요상하지만 신기하게도 거부감이 들지 않아요. 생각해보면 울화가 치밀 상황인데도 웃음이 나는 건 그 인물들을 바라보는 아가씨의 시선이 올곧고 따뜻해서일 거란 생각이 듭니다. 치한이나 다름 없는 도도씨의 행각에도 노여워하지 않지만, 선을 넘어섰을 땐 응당 응징을 해야겠지요. 하지만 그 바탕에는 상대방을 염려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깔려 있습니다. 



밤거리를 걷다 만난 인연들을 통해 아가씨는 '가짜 전기부랑'을 알게 되고 급기야는 무시무시한 고리대금업자인 이백 씨와 가짜 전기부랑 마시기 대결을 펼칩니다. 아가씨는 생긴 것과 다르게 말술이어서 급기야 이백 씨를 이기고 사람들이 가진 빚을 탕감해주지요. 



섹시하고 여성미가 넘치기 보다는 발랄하고 생기 넘치는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가진 아가씨의 주변에는 그리하여 여러 명의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게 되는데요. 그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들이 즐겁고 유쾌합니다. 뭐랄까 다소 오타쿠스럽게 느껴지는 설정도 종종 나오긴 합니다만, 마찬가지로 생각할수록 웃음이 나는 그런 상황의 인물들인지라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한가지 답답함이 있다면, 아가씨를 사모하는 선배의 순정. 그 이어질듯 이어질듯 닿지 않는 선배의 마음이 안타까워 손에 땀을 쥐게 되는 것 정도일까요? 물론 그게 이 소설의 묘미이긴 합니다만-.


헌책시장이 열리는 날, 아가씨가 갖고 싶어하던 그림책 '라타타탐'을 얻기 위해 한 여름에 두툼한 빨간 솜옷을 입고 화로에 둘러앉아 불냄비 요리를 먹는 선배. 내기에 이겨 홀로 남았는데 돌연 헌책시장의 신이 나타나 고서들을 해방하지요.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일에도 고서를 잃은 이백을 걱정하는 선배를 보면 역시 사람은 끼리끼리 만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선배는 끝내 그림책을 손에 넣지 못했지만, 친구펀치를 가지고 나무나무를 외며, 신이 날 땐 로봇스텝을 밟는 천진난만한 아가씨는 돌고 돌아 자신의 손으로 돌아온 어린시절의 '라타타탐'을 보고 감격하지요. 



가을이 되어 대학가에는 축제가 열리고, 이 축제의 장에서 또 신기한 일들이 펼쳐집니다. '축지법 고타츠', 연극 '괴팍왕', 달마오뚝이, 빤스총반장, 코끼리엉덩이 등등 기상천외한 일들이 벌어지는데요. 그 한가운데에는 역시나 공기총 오락장의 상품으로 커다란 비단잉어 인형을 받아 등에 메고 다니는 아가씨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의 선배는 그 뒤를 쫒고 있지요. 괴팍왕의 마지막 연극에서 드디어 선배의 마음이 아가씨에게 가 닿았을까요? 둘의 인연은 어떻게 될까요? 아, 이제 마지막 장만 남아 있습니다. 


바야흐로 겨울, 대학가뿐만 아니라 온 교토 시내를 감기의 신이 휩쓰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신의 가호를 받은 아가씨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감기의 신에 몰락당하고, 역시 이상한 꿈들을 꾸게 되는데요. 마음 착한 아가씨는 감기에 걸린 이들을 찾아가 간호를 하지만, 정작 선배에게는 문병을 갈 수가 없었지요. 자신의 애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바깥 해자'만 계속 메우던(우연히 아가씨를 마주치려는 무수한 노력들이여!) 선배는 감기에 걸려 비몽사몽한 가운데 온갖 꿈에 시달립니다. 그러던 와중 아가씨는 감기의 신이 깃든 이백 씨를 걱정하여 중무장을 하고 문병을 가지요. 이백 씨가 아가씨의 도움으로 감기의 신을 물리치게 되던 날,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환상속에서 선배와 아가씨가 마주치게 됩니다. 감기의 신의 회오리에 점점 위로 올라가던 아가씨는 선배의 손을 맞잡고 선배의 자취방으로 무사히 착지하지요.


이윽고 선배와 아가씨는 보통의 남녀가 데이트 하듯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정합니다. 


창으로 들어오는 겨울 햇살이 마치 봄날 같은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선배는 그 햇살 속에서 턱을 괴고 앉아 어쩐지 낮잠 자는 고양이처럼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배 밑바닥에서부터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치 공기처럼 가볍고 작은 고양이를 배 위에 올려놓고 초원에 누운 기분이랄까요.


선배가 나를 알아보고 웃으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나도 고개를 숙였습니다.


이리하여 선배 곁으로 걸어가면서 나는 작게 중얼거렸습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어떤 인연


나쁜 감기 사랑 감기 중에서_P.392


아, 정말 선배의 고군분투가 드디어 결실을 맺어 어찌나 다행이던지. 그러나 생기발랄한 아가씨와 주변 인물들 사이에 벌어지는 무수히 많은 일들이 앞으로도 벌어지지 않으리란 장담은 할 수 없지요. 어쩐지 여전히 그 둘 사이에는 험난한 앞길이 펼쳐지지 않을까 예상되지만, 그럼에도 이제는 각기 다른 방향이 아닌 한 방향을 보며 함께할테니 그 어떤 일들이 생겨도 즐겁기 그지 없을 것 같습니다. 



다양한 상상력이 총망라되어 있는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를 통해 유쾌하고 즐거운 '망상'의 바다에 푹 빠져보심이 어떨는지요. 이상 망상의 바다에 푹 빠져 있던 독자 제현 중 1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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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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