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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파괴할 힘
이경희 지음 / 다산책방 / 2022년 7월
평점 :
1부 달
2부 혁민이들
3부 예카테린부르크
4부 모두를 파괴할 힘
차례
『너의 다정한 우주로부터』에 이어 두 번째로 접하는 이경희 작가의 소설입니다. 단편소설 모음집인 전작에서 「살아있는 조상님들의 밤」, 「우리가 멈추면」, 「저 먼 미래의 유크로니아」를 매우 인상 깊게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요. 이번엔 단편이 아닌 두께도 꽤 두툼한 장편 소설입니다.
총 4부로 나뉘어진 소설은 달에서 출발해서 주인공이 지구로 다시 돌아오게 되기까지의 일을 담아냅니다. 홀홀단신으로 지구에 도착한 신화경의 앞날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는 알 수 없어요. 그래서 더더욱 방대한 세계관을 가진 블록버스터 영화의 시리즈 첫편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2편을 기대하시라 두둥! 하는 것 같은 마무리에 에필로그에 더해진 "쿠키"까지 들어있어요. 마치 런닝타임이 긴 영화의 상영이 끝나고 화장실이 가고 싶은데도 쿠키 영상을 보려고 꾹 참고 자리에 앉아있는 것처럼,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소설에서 그려진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어떨지 생각만 해도 아찔해져요. "책을 덮고 나면 현실의 시차에 적응하기 위해 한동안 심호흡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정보라 작가의 말처럼 시차 적응이 필요한 소설, 『모두를 파괴할 힘』입니다.
1부 달은 우주선의 수면캡슐에서 화경이 눈을 뜨며 시작합니다. 화경이 타고 있던 우주선이 정체 불명의 누군가로부터 공격을 받아요. 그리고 우주선에 타고 있던 많은 이들이 죽고, 화경은 가까스로 그 중 일부와 함께 달의 그늘로 피신합니다. 화경은 왜 달에 오게 된 것일까요? 생존한 이들의 사연과 함께 화경의 유년이 그려집니다.
'데비안트(2020년대 한반도에서 시작해 전세계적으로 발견되기 시작한 일련의 초능력 현상 및 능력자들을 일컫는 용어)'로 각성하게 된 어린 화경은 강제적으로 엄마와 떨어져 수술대에 오릅니다. 어린 나이에 더이상 임신을 할 수 없는 몸이 되고 이후 섬에 갖히게 되지요. 섬 안에 있는 학교에는 각각의 능력을 가진 데비안트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어느날 유영이 전학을 오게 되고, 각종 불합리한 규칙과 폭력, 차별이 난무하는 학교에서 작은 '혁명'을 일으킵니다. 그 과정에서 발현된 유영의 능력은 화경을 통해 극대화됩니다. 이윽고 유영은 전국에 있는 데비안트 시설의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섬을 떠나요. 화경이 섬에 갖혀 있는 동안 화경의 엄마는 데비안트 아이들을 위한 일인 시위를 벌이고 끝내는 분신을 시도해 목숨을 잃습니다.
화경의 이야기와 함께 생존한 이들의 사연도 속속 드러나는데요. '소리 없는 섬광이 온몸을 후려갈'기는 공격을 받는 것으로 1부에서 2부로 넘어갑니다.
2부의 혁민이들에서는 섬의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오게 된 화경이 유영 그룹과 합류하면서 혁민이들이 일으키는 혁명의 시작과 진행 과정이 흥미롭게 펼쳐집니다. 1세대 '전설의 데비안트'들과 화경의 엄마 유민아가 친구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들이 화경을 중심으로 만남을 약속하게 됩니다. 화경은 그 만남이 어떠한 일을 빚어낼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지만, 유영 그룹에 있던 PD 리웨이만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상하지요. 1세대 데비안트들의 목숨을 건 투쟁은 결국 혁명의 불씨가 되어 활활 타오르게 됩니다.
"화경아. 너는 뭍에 나온 바다의 아이야. 아마도 육지를 사랑하게 될 테지. 영원히 같은 물결을 반복하는 파도처럼. 그래도 잊어선 안 된단다. 파도는 결국 바다로 돌아가야 해. 언젠가는."
너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힘껏 고개를 끄덕이고는 빛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를 파괴할 힘_P.252
유튜브 영상과 댓글이라는 형식을 가져온 2부에서는 혁민이들(유영, 화경, 태빈, 레이리, 리웨이)이 어떻게 세계와 하나가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소녀시대와 아이유의 노래가 그렇게 찰떡일수가 없어요. 생각지도 못한 노래가 등장했지만, 노래로 하나가 되는 혁명 참가자들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절대 너희들끼리 싸우지'말라던 마리야의 조언을 혁민이들이 기억했으면 좋았을텐데 말이죠.
그리고 3부 예카테린부르크의 첫 문장 "우리 이야기의 재미있는 부분은 끝났다."에서 직감할 수 있는 것처럼 혁명의 시작과 그 역동하는 에너지는 지지부진한 협상과 존속을 위한 작업으로 서서히 가라앉습니다. 내부의 분열과 분쟁, 그리고 새롭게 침입한 세력으로 인해 협상은 불발되고 모두에게는 상처만 남습니다. 그 과정에서 임무를 끝낼 때마다 기억이 지워지는 리웨이의 이야기가 서서히 베일을 벗습니다. 수수께기 같은 인물 PD, 리웨이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요?
4부 모두를 파괴할 힘에서 이야기는 다시 달로 돌아갑니다. 죽은 줄만 알았던 유영은 화경을 구해내 지구로 보내려 애씁니다. 화경이 다시 지구로 가야만 하는 이유가 드러나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데요.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유영의 모습을 한 이는 과연 누구일까요? 화경은 지구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요?
한 줄기 민들레 씨앗처럼.
낙하산은 바람을 타고 대지를 향해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모두를 파괴할 힘_에필로그 중에서
소설의 책장을 덮으며 마음이 알싸해졌습니다. 지구에 도착한 화경이 보게 될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눈 앞에 그려지는 것 같아요. 열아홉살 소녀가 짊어진 무게는 상상하지 못할 만큼 무거웠겠지요. 약자와 소수자, 차별 받고 소외당하는 사람들이 구축하는 연대와 믿음. 그 결과가 부디 '아름다운 변화'를 일으켜낼 수 있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다시 만난 세계'의 노랫말처럼 화경이 다시 함께하게 될 지구의 모습이 아름답기를 바랍니다. 다양한 능력의 초능력자들이 모여 일궈내는 혁명의 과정과 탄탄한 서사가 방대한 블록버스터 영화를 방불케 하는 소설 『모두를 파괴할 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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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