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트 베니핏 - COST BENEFIT
조영주 외 지음 / 해냄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성비를 주제로 한 엔솔러지, 『코스트 베니핏』의 서평단에 선정되었어요. 지난 번에 읽었던 『환상의 책방 골목』의 조영주, 이진, 정명섭 작가가 또 의기투합했네요. 가성비를 주제로 다섯 명의 작가가 펼치는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단편은 조영주 작가의 「절친대행」입니다. 소설의 맨 앞장 타이틀 아래에 '당신의 친구가 되어드립니다'라는 부제가 붙어 있어요. 소설의 주인공인 재연은 학창시절부터 '늘 누군가와 함께'였지만 삼십대가 되자 편하게 만날 상대가 없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지만 '언제든지 불러낼 수 있는 친구, 이른바 절친'은 없었지요.

어느 주말 홀로 노천카페의 4인 좌석을 차지하고 있던 재연의 눈에 일수 명함 사이에 떨어져 있는 '절친대행' 명함이 들어옵니다. 외로움을 참다 못해 방문했던 네일아트의 요금보다 저렴한 금액에 망설이다가 명함을 챙겨 가방에 넣어두지요. 재연은 주말마다 만났던 명혜와의 연락이 뜸해지자 조바심을 냅니다. 연예인 덕후인 명혜의 끝도 없는 자기 자랑과 덕질이야기는 듣기 지겹지만 그마저도 없다면 혼자 있는 주말을 견뎌야 하니까요.

친구가 없는 건 쓸쓸하다고 생각하며 버스에서 내리는 할머니를 바라보던 재연은 정류장에서 할머니를 기다리는 친구를 발견하고 이내 시야가 뿌예집니다. 이를 계기로 절친대행을 해 주는 (주)프렌드엔코 강남점에 방문해 친구 명혜가 가입한 서비스를 확인하지요. 명혜와 똑같이 등급제로 운영되는 절친 서비스 중 가장 비싼 요금인 '천만절친'을 신청한 재연은 절친의 첫 만남을 위해 때 빼고 광을 냅니다. 하지만 제일 상위 등급의 절친인 선희는 등산복을 입은 '아줌마'였어요. 실망은 잠시뿐, 재연은 이내 선희에게 빠져들게 됩니다. 이 절친 대행의 끝은 예감하시는 대로 희극과는 거리가 멀지요. 절친 대행은 그저 절친 '대행'일뿐 사원인 선희도 (주)프렌드엔코의 최절친 대표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그저 돈벌이의 수단으로밖에 여기지 않는다는 게 여실히 드러납니다.

'고독을 잊게해 줄 누군가'를 바라는 이들에게 '친구를 빌려준다'는 매력적인 서비스, 혹시 이용해 볼 의향이 있으신가요?

갑자기 당신의 혼자력은 안녕하신지 궁금해집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시나요? 잘 못 지내고 계신다고요? 그렇다면 제가 좋은 서비스를 소개해 드려야겠군요. 절친대행이라는 서비스가 있는데……

작가의 말_ 당신의 혼자력은 안녕하신가요 중에서_P.44

소설을 읽지 않았을 때라면 모를까, 워워~~ 저는 작가님의 제안을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


두 번째 단편은 김의경 작가의 「두리안의 맛」입니다.

코로나를 뚫고 태국 여행을 하는 파워블로거 강윤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여행 블로거라기 보다는 맛집 블로거에 더 가깝지만 파워블로거 팸투어에 초청되어 책도 출간했던 경력으로 태국 팸투어 기자단에 선발되었어요. 코로나 시국에 태국이 얼마나 안전한지를 보여주는 것이 목적인 여행에서 윤지는 틈나는 대로 인스타에 소식을 업데이트 합니다. 여행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담아 올린 게시글에 일용직 노동자로 보이는 스파이더맨이 댓글을 달아요. 처음엔 불쾌하기만 했던 그의 댓글은 점점 윤지에게 스며들어 그의 생활을 들여다보게 만듭니다.

문득 여행이란 멋진 풍경을 낯선 사람들과 함께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리안의 맛 중에서_P.58

SNS에는 좋은 기분과 의도된 연출만 올리는 윤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만은 않았지요. 피와 진물이 나는 코끼리 등에 올라타야 하는 코끼리 트래킹과 자꾸 치근덕 거리는 털보, 그리고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듯 보였던 무테안경의 갑작스런 풀빌라 침입에 공포심을 느낍기도 하지요.

그래도 눈앞의 노을은 태어나서 본 그 어떤 노을보다 아름다웠다. 윤지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어쩌면 자기 인생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아름다움일지도 모르니까.

두리안의 맛 중에서_P.87

단 하루도 편히 잠들지 못했던 공짜 여행, 윤지는 여행에서 돌아오며 스파이더맨의 SNS에 이런 댓글을 답니다. '여행하는 동안 SNS에 올린 첫 진심'이었지요.

공짜 여행 별로였어요

두리안의 맛 중에서_P.88

윤지는 방콕행 비행기에 오를 때만 해도 '가성비 갑' 여행이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하지만 블로거로서의 정체성과 맞바꾼 고가의 태국 여행은 스스로를 '블로거지'라고 느끼게 만들었으니 오히려 가성비 마이너스 여행 '가성비 을' 여행이 되어버렸다.

작가의 말 중에서_P.89~90


세 번째 단편은 이진의 「빈집 채우기」입니다. 수록된 단편 중 가장 공감이 많이 되는 이야기였어요. 빈집 채우기는 말 그대로 결혼을 앞둔 커플이 빈집을 채우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가성비에 걸맞게 최대한 가격 비교를 하고 혼수 품목을 정하며, 꼭 필요한 것들을 효율적으로 구매하려고 애씁니다. 주인공은 결혼해서 남부럽지 않게 잘 살고 있는 친구의 집에 가서 이것만은 꼭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게 있느냐는 질문을 하지요. 친구는 비장한 표정으로 "식기세척기"라고 말합니다. 사건의 발단은 혼수 품목에 없었던 식기 세척기를 사느냐 마느냐로부터 시작해요. 식기 세척기보다는 플스를 들이고 싶은 남친과 실랑이를 하게 됩니다.

'최신형 게임기를 살 수 없다면 식기세척기도 살 수 없다'는 남친을 두고 주인공은 심각하게 고민을 합니다. 그 고민은 결혼을 진행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까지 뻗어나가요. 즉석 떡볶이와 떡볶이의 차이를 알면서도 취향을 고려하지 않는 등의 사소한 문제에서 비롯된 서운함까지 떠오르면서 감정의 골은 점점 깊어가지요. 그러던 어느 날, 백화점의 카페에서 완벽하게만 보였던 친구 가족의 모습을 목격합니다. 떼쓰는 아이와 방관하는 남편, 사람들의 수근거림에 수치심으로 달아오르는 친구의 얼굴을 보며 주인공은 아무것도 사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필요했지만 남친밖에 떠오르지 않던 주인공에게 때마침 남친이 등장합니다. 주인공이 그렇게 먹고 싶어했던 즉석 떡볶이를 고등학교 앞 단골 가게까지 가서 사 온 것이지요.

어쩌면 이 모든 졸렬하고 궁상맞고 불평등한 조건들을 무릅쓰고 결혼을 하고 마는 이유는 겨우 그거 하나뿐인지도 모른다. 친구도 그랬을까? 다들 그러고 사는 걸까? 나만 바보같이 속고 있는 건 아닐까?

빈집 채우기 중에서_P.130

모르겠다며 일단 떡볶이가 담긴 비닐 봉지를 받아 들이는 주인공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는 건 비단 저뿐만이 아닐 거예요. 사소하게 여겨지는 일상속에서 감정의 변화무쌍함을 솔직하게 드러내 준 작품이랄까요. 결혼을 앞두고 갈팡질팡하는 주인공의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되는 소설이어서 더 즐겁게 읽었습니다. 『환상의 책방 골목』 에 수록된 「모노크롬하트를 찾아서」도 참 따스했는데요. 그 때는 일상적인 책방이라는 공간에 들어온 판타지가 제 마음을 끌었다면, 이 작품은 현실 세계의 디테일에서 충분히 공감이 되는 이야기였어요.

그 어떤 타인과도 교류하지 않고 온전히 혼자 힘으로만 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어떤 경지에 도달해야 그럴 수 있을지, 소설 주인공으로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오래 산 집의 장판이 들뜨고 식탁이 흔들거리는 것은 제대로 된 물건을 사지 못해 일어난 불상사일 수도 있지만, 살아온 세월을 생각하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가성비를 추구하지 못했을 때의 분한 마음도, 가성비를 획득할 때의 짜릿한 희열도 모두 인생을 조금이나마 덜 외롭게 꾸며주는 것이라고, 요즘은 그렇게 생각하려 합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_P.132


네 번째 단편은 주원규의 「2005년생이 온다」입니다. 한얼고등학교 1학년 1반의 사적 공부 모임 '2005년생이 온다'가 공식 출범하게 되는데요. 멤버는 그 모임의 주체자인 '자유주의'와 장차 게임 업계의 혁명가가 될 거라는 '조병수', 학구열이 넘치는 '유혜리'입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공부의 목적은 단 하나야.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조기 은퇴.

뭐?

우리, 학교와 인생을 조기 은퇴하자고. 그게 우리 모임 '2005년생이 온다'의 정확하고도 간결한 모임 취지야.

2005년생이 온다 중에서_P.145

모임의 목적도 목적이지만 자유주의가 하는 말들과 행보는 갈수록 그가 싫어하는 '꼰대'와 같아집니다. 결국 모임은 와해되고 말지요.

태어난 것 자체가 가장 우수한 성능을 장착한 것일진대, 그게 아니라 자라면서 경쟁하고, 비교하고, 비교당하면서 점점 한 개인이 상품이 되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씁쓸한 마음을 한 편의 소설에 담아봤습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_P.166

작가의 말에 담긴 것처럼 제게도 이 소설은 참 씁쓸하고 유쾌하지 못한 이야기였어요.


소설집의 마지막 단편은 정명섭의 「그리고 행성에는 아무도 없었다」입니다.

「그리고 행성에는 아무도 없었다」는 짐작하시는 대로 애거사 크리스티의 대표작 중 하나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모티브로 한 작품입니다.(중략) 그래서 저는 미래에도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미래가 무조건 낙관적이고 장밋빛일 리는 없으니까요. 가성비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단편이지만 독자 여러분에게 긴 여운을 남겼으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_P.214~215

작가의 바람처럼 소설은 제게 짧은 이야기지만 긴 여운을 남겨주었어요. 한 편의 SF 영화를 보는 듯한 감각이었지요. '비상 탈출 캡슐을 타고 낯설고 외딴 행성으로 비상 착륙' 하는 열 명의 인물들을 카메라가 비추듯이 보여줍니다. 그리고 외딴 행성으로 무사히 착륙한 그들에게 어디선가 노래가 들려오지요. 이후 상황은 그 노래의 가사와 딱 맞아떨어집니다. 각기 다른 범죄를 가졌으나 처벌 받지 않은 열 명의 인물들이 맞는 최후는 그리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리고 행성에는 아무도 없었다'라는 재부팅 암호가 주는 여운, 그리고 암호와 동일한 제목은 모티브에 아주 충실하게 여겨졌습니다.

가성비에 관련된 다섯 개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는 이 소설집은 조영주 작가님이 기획한 세 번째 엔솔러지라고 해요. 기획력도 기획에 맞는 이야기를 꾸려 내는 능력도 탁월하지 않나 싶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