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수식어가 전혀 아깝지 않은 소설 『스노볼』을 읽었습니다.
지난 번 책을 받았을 때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카카오페이지에서 이 소설을 먼저 접했어요. 카카페에서 이런 소설을 읽을 수 있다니, 하며 놀라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기발한 상상력과 휘몰아치는 속도감에 연신 다음 편 결재를 하며 봤었거든요. 완결에 뭔가 더 있을 것 같아 아쉬웠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렇게 소설Y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으로 만나볼 수 있어 신기했습니다. 현재 카카페에서도 지난 연재에 이어 추가로 연재되고 있는데요. 전 소설Y대본집으로 완결까지 쭈욱 달릴 수 있었어요.
『스노볼』은 평균 기온이 영하 41도로 내려간 혹한기를 배경으로 돔으로 둘러쳐진 따뜻한 지역 ‘스노볼’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스노볼'은 이본 미디어 그룹이 지배하는 세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스노볼의 '재건 가문'인 이본가 사람들에게는 '전력을 생산하거나 사생활을 공유하'는 의무가 주어지지 않아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늘 '이본은 권력을 추구하지 않으며 특권을 누리지 않'음을 강조하지요.
스노볼 안에는 액터와 디렉터가 존재하고, 카메라의 필름을 교체하기 위한 시간을 제외하고는 내내 카메라가 돌아가요. 스노볼에 거주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한정적으로, 스노볼에서 살기 위해선 리얼리티 드라마를 연기하는 액터가 되거나 드라마를 제작하는 디렉터여야만 해요. 스노볼 밖에 사는 이들은 극한의 추위를 견디며 스스로 쳇바퀴를 돌려 전기를 생산합니다. 이 전기로 스노볼의 드라마를 수신하는 시청료를 지불하지요. 문밖으로 나서기만 해도 콧속이 얼어붙는 스노볼 밖의 세상에서 주인공 '전초밤'은 디렉터를 꿈꾸지만 번번이 탈락하고 말아요.
1권에서는 주인공인 '전초밤'이 스노볼에 입성하여 최연소 기상캐스터인 '고해리'의 대역으로 겪게 되는 일들을 그려냅니다. 스노볼의 디렉터 가문의 주요 일원인 차설은 베일에 싸인 이본가의 사생활을 대중 앞에 보여주고 싶어하지요. 고해리가 된 전초밤을 통해서요.
우연히 스노볼의 비밀을 알게된 전초밤은 이본 그룹의 후계자 이본회와 마주치기도 하고, 이제 겨우 고해리로서의 적응이 되어가던 찰나에 또다른 고해리인 '배새린'에게 뒤통수를 맞아 퇴직자 마을에 버려지기도 합니다. 디렉터 가문 출신으로 전설의 디렉터인 할아버지 차귀방, 언니인 차설의 잘못을 외면하며, 스노볼을 떠나온 차향은 전초밤에게 출생의 비밀을 알려주게 되지요. 진실을 밝히기 위해 스노볼로 향하는 길에 전초밤은 자신과 같은 방식으로 태어난 아이들과 합류하여 생방송 무대로 무단 침입을 강행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이본회에게 승부수를 띄워요. 1권의 마지막인 '각성과 인식'에서는 의미심장한 장면이 대미를 장식하지요. 전 2권의 끝자락에 가서야 이 의미를 알아챘습니다.
1권이 스스로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다면, 2권의 전초밤은 이제 스노볼의 비밀을 폭로하여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내던집니다.
스노볼에 임시 체류하게 된 전초밤 일행의 생활 역시 리얼리티 드라마로 제작되는데요. 전초밤이 스노볼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걸 알아챈 이본영 회장이 최면술사를 이용해 전초밤의 기억을 제거하려 합니다. 하지만 이는 실패로 돌아가고 전초밤에게 강력한 고통을 남겨요. 계획에 실패한 이본영 회장은 전초밤을 함정에 빠뜨립니다. 이본 그룹이 전초밤을 위협하며 스노볼을 유지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 사이 스노볼을 설계한 사람이 전초밤 앞에 등장합니다.
전초밤은 과연 누구의 손을 잡게 될까요. 진실을 밝히고 사람들을 구하려는 시도는 서로를 속고 속이며 전초밤을 이용하려는 이들에 의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복선이 드러나고 소위 말하는 떡밥까지 회수되는 걸 읽다보니 어느새 마지막 장을 넘기는 저를 발견했어요.
혹시 영화 다이버전트 시리즈(다이버전트, 인서전트, 얼리전트) 보신 분들 있으실까요?
전초밤이 최면술사를 만나고 트라우마를 벗어나기 위해 겪는 일련의 일들을 읽으며 전 이 영화가 저절로 떠올랐어요. '헝거게임', '트와일라잇' 시리즈나 '인셉션'처럼 유명하진 않지만 제 취향엔 딱이라 여러 번 봤던 영화인데요. 이 영화에선 주사를 맞고 기기에 연결하면 가상의 세계로 들어가게 돼요. 환영을 통해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들이 나타나고,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분파가 결정되는데요. 덕분에 전초밤이 최면술사 '부해'를 만난 뒤 스노볼의 설계자를 만나러갈 때, 최면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맞닥뜨리는 장면이 더욱 생생하게 연상된 것 같아요. 비단 이 장면뿐 아니라, 책을 읽는 내내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고 있는 기분이어서 와, 정말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소설'이라는 수식어가 괜히 있는게 아니구나 싶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