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이상하든
김희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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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해도 불안해도 괜찮은, 부드러운 위로의 시간'이라는 문구에 이끌려 서평단에 신청했어요.

소설에는 어딘가 이상하고 불안하고, 남들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이 등장합니다. 강박과 불면증, 공황장애 등은 그저 표면적인 증상에 불과해요. 7장에 걸쳐 이어지는 그들의 사연을 읽다 보면 ', 이상해도 괜찮아'하며 등을 토닥이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어느새 응원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거예요. 불안해도, 이상해도 괜찮다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고, 그렇게요.

소중한 이들의 죽음을 바로 앞에서 목격한 스무살, 정해진이 소설의 주인공입니다.

해진을 주축으로 해서 매일 아침 해진의 일상을 뽀뽀로 시작하게 하는 커다란 곰인형 바닐라, 이빨을 뽑는 치과 의사 큰언니, 털을 뽑는 왁싱을 업으로 하는 작은언니, 만두를 빚는 엄마와 초밥을 만드는 아빠, 해진이 아르바이트 하는 편의점 '불면증' 사장, 동갑내기 배우지망생 ()승리, 우체통이 사라질까봐 하루가 멀다하고 우체통에 편지를 넣는 여덟 김다름, 집안에 수십 개의 시계를 걸어놓고 해외 여행은 다닌다면서 집밖으로 나가기 싫어서 해진에게 물건 배달을 요구하는 극작가, 비행에 대한 공포가 시작되어 여행 한국에 7 동안 머무르는 영국인 마크, 말보로 레드와 카프리 맥주를 사는 편의점 단골 손님 꽃순이 할머니 그리고 정체 불명의 검은 그림자 김만초와 기타 등등의 인물들이 이야기를 엮어 나갑니다.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지만 이들 역시 각자의 사연이 있어요. 이야기를 '정해진' 시선으로 따뜻하게 풀어나갑니다.

읽는 내내 생각했어요. 만약, 내가 해진의 입장이었으면 어땠을까 하고요. 대부분의 남의 아픔보다는 자기 손톱 밑에 가시가 아프다는데, 해진은 오히려 나의 아픔이 있기에 다른 이의 어려움을 측은하게 생각할 있는 같아요.

난데없이 자전거를 빌려탄 승리에게 가족들 모르게 방을 빌려주고, 지척이 편의점인데 굳이 배달을 시키며 정리까지 부탁하는 극작가의 심부름에 속으로 투덜대면서도 나중에는 배달비를 받는 오히려 미안해 한다든지. 컵라면이 너무 좋아서 한국을 떠나지 못한다는 마크에게 국물은 먹지 말라고 잔소리하고, 팔순의 꽃순이 할머니에게 건강에 해롭다며 담배를 줄이라고 염려의 말을 건네는 일들.

어리숙한듯 보여도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이 없다면, 믿음이 없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들일 거예요. 스무살이라는 인생의 시기에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불안해하며 휘청이던 해진의 모습이 점차 단단해 있는 것도 그런 마음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그런 따스함은 아마도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편의점 '불면증' 사장은 명이라도 살리고 싶어서 뛰어든 바다에서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고 눈을 감을 때마다 죽은 이들의 모습이 떠올라 불면의 밤을 지새워요. 해진은 그에게 잠은 주무셨냐는 말로 인사를 대신하고, 숙면할 있게 해준다는 베개를 선물하며 이렇게 얘기하지요. "저희 엄마가 자주 쓰는 말이 있는데, 어느 구름에서 비가 올지는 아무도 모른댔어요."라고요. 어떻게든 희망을 전하고 싶은 해진의 마음이 느껴지는 대목이었습니다.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있다보면 언제 어디선가 마음에 단비가 쏟아져 내릴지도 모르지요.


'매일매일이 하품이 나는, 그저 보통의 시간이기를 바라' 마음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해진이 가진 상처를 들여다보면 지루할 정도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보통의 날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돼요. 그건 평범하리라 믿었던 어느 봄날에 비일상적인 사고를 겪었기 때문에 있는 바람이니까요. 해진의 강박은 사고 이후에 발현됩니다. 맨홀을 밟지 않는다거나, 낡은 계단에서 소리가 나지 않도록 가장자리로 오른다거나, 연거푸 세수를 하는 조금이라도 나쁜 기분이 든다면 좋은 생각으로 덧씌워질 때까지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강박이지요.


현장에서 셋이 죽고 혼자만 살아남은 사고였다. 떠올리려고 마음만 먹으면 그때의 굉음과 공포와 비명은 바로 어제 일처럼 온몸을 휘젓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런 고통은 내게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무사했으니까. 보도에 버려진 사람의 죽음에 비하면 살아남은 고통쯤은 사실 별거 아니었다. 그리고 강박증은 결국 의지와 시간의 문제라는 누구보다 스스로가 알고 있었다.

얼마나 이상하든 2 중에서_P.115~6


어떤 사고는 의도치 않았지만 순식간에 벌어져요. 아차 하는 순간에 생과 사가 갈리게 되기도 하고요. 바로 그런 일을 해진은 눈앞에서 겪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수근거림으로 '죽음에도 가치의 차이가 있다는 ' 느끼곤 절망하지요. '나와 맺어진 인연 하나 하나가 나중에는 모두 슬픔이 되고 상실이 거라는 생각' 스스로를 방에 가둘 밖에 없었던 해진의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공감이 갔어요. 사람은 살아야한다지만 슬픔을 혼자 감당하기엔 정말 버거웠을 거예요.


나는 고요 안에서 해진 선배와 소영 커플을 생각했다. 안타깝게 놓쳐버린 그들의 젊은 날과 그들이 꿈꾸었을 미래를 생각하다 보면 문득문득 슬퍼졌다. 왜냐하면 지금 내가 살아가는 나날은 그들이 살아보지 못한 날들이고, 앞으로 내가 살아가게 나이는 그들이 결코 가져보지 못할 나이가 것이기에 그랬다. 그걸 깨달은 순간 나는 영화음악을 하고 싶어 했던 해진 선배의 꿈을 대신 이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을 위해 살아간다면 삶에게, 그들의 지워진 삶에게, 그날의 사고와 봄에게 미안해질 것만 같았다.

얼마나 이상하든 3 중에서_P.126


'태어남이 넘쳐나는 계절' '죽음을 애도'해야만 하는 해진에게 '살아남은 죄는 아니'라고 토닥이며 위안이 되어 주는 김만초.

그는 어느 갑자기 튀어나온 정체 불명의 검은 형체입니다. 사실 사람도 아니고 보는 사람마다 실체가 다르게 보이는 존재이지요. 색이 짙어지기도 옅어지기도 하는데 옅어지는 좋은 징조가 아니에요. 없어져 버릴 같은 위기에 처하면 그늘에 숨어 들어요. 불쑥 나타났다가 애타게 찾아도 보이지 않는 날도 있어요. 하지만 누구보다 해진에게 위안이 되는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임에는 틀림없지요.

해진은 이름을 지어달라는 그에게 가장 흔한 성인 김에 만두와 초밥의 줄임말인 만초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 가족이 모이는 일요일 아침 식사에 그를 초대해요. 일상에 등장하는 낯설고 새롭고 독특한 존재. 하지만 낯설음이 익숙함으로 바뀔 날도 머지 않을 것만 같아요.


세상에는 때로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녀석이 알아준다면

나만의 것이던 그는 모두의 것이 되어갈 터였다.

얼마나 이상하든 72_P.274


책장을 덮으니, 어느 갑자기 어디선가 "심심하고 쓸쓸해서 그러는데, 저랑 놀아줄래요?"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대도 놀라지 않을 같아요. 지독하게 외로운 어느 날에는 외려 제가 찾게 될는지도 모르지요. "김만초씨, 거기 있나요?" 하고 부르면 어느샌가 옆에 나타나 것도 같아요.

그리고 작가의 말을 읽으며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말하고 들어주는 , 힘은 때로 누군가를 살리기도 한다.

웃게 하기도 하고 변화와 용기와 의지를 끌어내기도 하며, 지치지 않게 다독여주기도 한다.

웃는 이유가 아닌, 우는 이유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사람이 사람에게 닿는 일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고, 생의 이치가 그러함에도 모두 자리에 있어주면 좋겠다.

어떤 이는 당신이 있기에 살아간다.

당신은 다른 누군가가 있기에 살아가고, 어쩌면 또다른 누군가는 내가 있기에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모두 자리에 오래오래 있어주시길. 나를 위해, 그리고 당신과 당신의 누군가를 위해 그래주시길.

그래서 아무도 외롭지 않게 되기를.

작가의 중에서_P.286~7.


부디 외롭지 않게 되기를, 역시 같은 마음이 되어 바라봅니다.

이상으로 서평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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