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흰 캐딜락을 타고 온다
추정경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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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강원랜드를 배경으로 번쩍이는 카지노 뒷편의 이야기를 SF와 누와르가 혼합된 장르로 펼쳐 보입니다. 비루한 현실의 세계가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일까요. 강원랜드 근처에 가면 주인공 진이 있는 전당사가 있을 것같으면서도, 순식간에 마블 영화에서나 봄직한 장면들이 이어지는데 전혀 위화감이 없어서 신기했습니다. 빠르게 휙휙 지나치는 장면들 속에 진과 주변 인물들의 '능력'에 대한 회상과 고뇌가 담겨있어요.

기면증 때문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성사장의 캐딜락 전당사에서 일하고 있는 '진'이 이 소설의 주인공입니다. 하지만 각각의 등장인물이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어 이야기의 흐름은 주인공에 치우쳐 있지 않아요. 위에서도 말한 것처럼 마블 영화가 연상되는 데는 이런 이유도 있을 것 같아요. 마치 여러 명의 주인공들이 적재적소에서 각자의 역할을 다한다는 느낌일까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사연이 서서히 드러나게 되는데요. 만약, 웹소설이었다면 후속편 혹은 외전으로 세세한 이야기를 풀어달라고 요청하고 싶을 정도로 각각의 인물들이 살아있어요. 아직 풀어내지 않은 이야기도 왠지 많을 것 같고요. 까도 까도 계속 겹겹이 꽉 들어찬 양파처럼, 얽히고 설킨 인연들이 속속 밝혀지며 진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게 되는데요. 그때마다 인물들의 자유 의지로 인해 디테일들이 조금씩 변해갑니다.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고요. 결국 진은 8년이라는 긴 시간을 거스르는 선택을 하게 되지요.

진의 기면증은 '능력'을 억누르는 데서 온 부작용이었어요. 현실세계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것 같은 배경과 인물들 사이에 생소하지만 흥미로운 초능력을 가진 이들이 등장합니다. 바로 '포트'를 여는 '게이트'들인데요. 이들은 원하는 크기의 구멍(포트)을 만들어 장소와 장소를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 모를 그 능력은 유전을 통해 이어져요. 능력의 발현이 원해서 이뤄지는 게 아닌것처럼 사라지는 것도 어찌해 볼 수 없는 일인지라, 포트를 여는 능력이 사라져가는 게이트들의 말로는 처참합니다. 어느 세계나 능력을 사용하는데는 동전의 양면처럼 장단이 존재하니까요.

초반부의 한 사건으로 인해 진은 자신이 앓고 있는 게 기면증이 아니란 걸 깨달아요. 차는 취급하지 않는 캐딜락 전당사에 한 중년남자가 아우디A6를 맡기겠다고 찾아옵니다. 그 차는 이미 황금전당사에 담보로 잡힌 차였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진이 전당사로 돌아왔을 때는 5분도 채 지나지 않았어요. 사라진 한 시간 반의 시간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그날 밤, 진은 포트와 게이트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은 거기에 더해 시간을 건드릴 수 있다는 것도요.

진의 뒤에는 묵묵히 진을 감싸주는 캐딜락 전당사 성사장과 시크하지만 속정 깊은 정희아줌마가 있어요. 진이 열두 살 무렵에 아버지가 데려온 정희 아줌마는 진이 스물 한 살이 될때까지도 아버지와 호적을 섞지 않지요. 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담배꽁초를 툭 날려버리는 정희 아줌마의 뒤에서 진은 꽁초를 주워요. 이런 거 버리면 사람들이 뒤통수에 욕해요, 하면서요-. 하지만 정희 아줌마는 오히려 보란듯이 붉은 립스틱을 더 진하게 칠하고 소문의 온상인 동네 가게 앞에 앉아 담배를 꼬나물고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에 머리채 잡혀 끌려다니지 마라. 중요한 건 너랑 나다. 그리고 난 누구 뒤치다꺼리는 못 해.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고 각자 인생 살자. 딱 김치 냉장고 온도로. 얼어 죽지도 썩어문드러지지도 않는 4도 정도."

P.36~37.

정말 시크함 그 자체이지요. 이 시크하기 그지 없던 정희 아줌마의 정체가 밝혀지고, 진에 대한 애정의 깊이를 느끼게 되는 순간 이야기는 급류를 타고 흘러갑니다. 진이 급류에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찾을 수 있을지- 선택의 결과는 과연 어떨지-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푹 빠져 있다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을 읽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합니다. 애잔한 마음과 조금만 더 읽고 싶다는 마음이 충돌하지요. 후속편은 안나오나요? 그 다음에 진은 어떤 삶을 살게 되나요? 하고 작가에게 묻고 싶을 정도라니, 어휴~ 너무 빠져있었나 봅니다.

읽는 내내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아서 책장을 덮고 난 후에도 자꾸 떠올라요. 한쪽 벽면 전체가 눈 내리는 한계령과 연결되어 있는 진의 방이 그려집니다. 마지막 문장을 읽고선 제목을 다시 한 번 훑어보게 되는 건 비단 저뿐만이 아닐거예요.


현실과 SF 느와르가 절묘하게 조합된 『그는 흰 캐딜락을 타고 온다』 는 장르 문학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입니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푹 빠져있었네요. 당분간 제 머릿속에서는 책 속의 장면들이 툭툭, 떠오를 것 같습니다.



* 서평단 선정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써내려간 감상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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