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석근 목사님은 확실히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은 것 같다. 우리 고대사의 엄청난 비밀을 성경과 연결하여 완벽하게 재현하는 그 능력이야 말로 단순히 인간의 지혜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그렇게 훌륭한 역사 학자들이 많이 있지만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모르니 어찌 고대사의 깊이를 이해할 수가 있었겠는가? 언(言)이라는 글자는 왜 말언이라 하지 않고 말씀언이라고 하는가? 말이라는 것은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특별한 능력이다. 원숭이가 진화해서 말을 할 수가 있었겠는가? 진화론이 마치 진리인 양 믿고 있는 인간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할 수 없는 비밀이다. 인간의 말은 하늘에서 받은 말씀에서 시작되었기에 말씀언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는 말(語)도 진리이신 하느님의 말씀을 본받아야 한다. 그래서 말씀언이다. 

불교도들과 유학자들이 버린 우리의 고대사를 선교도들은 생을 걸고 지키기 위해 힘을 썼다. 고구려의 조의선인이 사라진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신라, 고려, 조선, 일제까지 합세하여 우리의 고대사를 지워버리려고 힘을 썼으니 고대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만 하여도 기적에 가깝다. 이제는 우리가 살려야 할 고대사의 진실을 자존심을 걸고 찾아내자. 한민족으로서 자존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자라면 꼭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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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노예가 많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운명의 노예가 된 이후, 끝없는 노예의 길을 걸어오지 않았던가? 적어도 법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노예가 아니다. 원래 노예를 뜻하던 글자인 民이 주인이 되어버린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아직도 삶의 곳곳에 노예 상태로 머물러 있는 부분이 많다. 금융기관에 대출을 한 사람은 빚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대학 입시에 목을 매고 있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점수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사상의 노예, 종교의 노예, 심지어 자유의 노예도 있다. 자유를 부르짖으면서도 자유가 없는 인간들은 자유의 노예다. 힘써 부르짖는다고 노예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삶을 바꾸어야 한다. 사회의 틀을 바꾸어야 한다.

 세상에 완전한 인간의 이론이란 있을 수가 없다. 그럴수록 다양한 주장이 수용되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다양성은 창의성과도 연결이 되어 있다. 다양성이 죽은 사회는 북한처럼 멸망의 길로 갈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입시 제도는 다양성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그것은 창의성을 죽이는 길이기도 하다. 모든 학생에게 똑같은 문제와 똑같은 답을 원하는 사회가 창조적일 리가 없다. 한국의 초중등학교는 대학입시의 노예라는 저자의 글을 읽으며 참으로 서글프고 답답한 심정을 느겼다. 창의성 없는 엘리트가 나라를 이끌고, 창의성 없는 서울대가 한국의 입시지도를 조정하고 있다. 우선 급한대로 서울대의 학부를 없애자. 대학원만 남기자. 로스쿨은 저자의 주장과는 반대의 결론으로 가고 말았다. 교육관료들은 현장을 모르고 날뛰고 있다. 교육개혁은 교육관료의 개혁에서 출발해야 한다. 교육 현장에서 개혁이 이야기 되어야 한다. 정작 필요한 현장은 잠자코 있고 바깥에서 더 야단이다. 이것도 주객의 뒤바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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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교수는 항상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리고 도전 의욕을 고취시키는 분이다. 과거에도 그 분의 글을 읽고 심취한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최근에는 딸 덕분에(?) 예수 믿게 되었다고! 얽매이기 싫어하던 자유인이 스스로 그리스도에게 발목을 묶다니. 그러나 사실은 그것이 가장 자신을 자유롭게 할 것이다. 진리를 아는 자가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이 책은 우리말의 지평을 넓히는 좋은 책이다. 앞으로 더욱 풍부하고 좋은 자료를 보여주시기를 기대한다. 더불어 나도 이러한 작업에 동참하고픈 심정이 간절하다. 때가 되면 나의 작업도 시작되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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