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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편애 - 음악을 편들다 ㅣ 걷는사람 에세이 5
서정민갑 지음 / 걷는사람 / 2019년 6월
평점 :
음악은 시대를 반영한다. 동시에 음악은 시대를 앞서간다.
즉, 음악이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기도, 시대의 흐름을 무르익게도 한다는 말이다.
또한 음악은 그것을 듣는 이들에 의해 선택되어진다.
개개인의 삶과 취향에 따라 선택되어지는 음악들은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개개인의 음악에 대한 선택도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모든 이들이 항상 좋아하는 음악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음악은 부르는 이들 뿐만 아니라 듣는 이들에게도 공감과 위로를 가져다 준다.
“세상의 모든 음악이 사회 문제를 표현할 필요는 없다. 만약 세상에 사회 문제만 담은 음악만 존재한다면 그런 세상은 또 다른 의미에서 지옥일지 모른다. 음악 안에 사회 문제를 담지 않더라도 아프고 힘든 이들 곁에 있을 수 있는 방법은 충분히 많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프고 힘든 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들에게 다가가는 일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의 원인을 찾고, 싸워야 할 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는 일이다. 할 수 있는 일보다 조금 더 해보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 P. 150~151.
“예술작품의 완성도는 창작자가 만든 작품의 세계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는지에서 끝나지 않는다. 작품에 대한 공감은 작품을 향유하는 감상자의 삶, 그 시간으로 스며들어와 그/그녀의 삶을 되짚기 마련이다. 작품은 삶으로 향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사용한 언어에 대한 미적 감응을 병행해야 한다. 어느 쪽으로든 마음이 움직이게 만드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다. 특히 아름다움에 대한 찬탄에서 끝나지 않고 삶으로 공감하고 되새기게 될 때, 예술은 인간과 인간 사이를 겨우 좁히며 특별해진다. 예술은 찰나만큼이라도 자신과 타자를 더 깊이 인식하게 함으로써 나를 나답게 하고, 나 아닌 나를 바라볼 수 있게 협조한다.” - P. 436.
<음악편애 – 음악을 편들다>는 저자가 2015년부터 2018년 4월까지 민중의 소리의 <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코너에 썼던 음반에 대한 글들 중에서 80편을 추려서 정리한 책이다.
책에 담긴 80편의 글 첫머리에는 QR코드가 있어 이를 스캔하면 해당 음반의 곡들을 들으면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다만 서평을 적기 위해서는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기에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려 먼저 책을 읽고, 다시 한번 더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으면 좋으리라 생각한다.
솔직히 책일 읽는 내내 80편의 음반중 내가 알고 있는 음반이나 음악가들이 극히 일부였다느느 사실이 내가 가진 음악에 대한 지식이 얇다는 것을, 음악에 대한 선택의 폭이 너무나 좁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한국 대중음악 시장에서 다양성은 충분하다. 록, 알앤비, 일렉트로닉, 재즈, 팝, 포크, 힙합을 비롯한 대부분의 장르에서 완성도 높은 음악을 계속 만들고 있다. 해외 대중음악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다만 모를 뿐이다. 음악 마니아가 아니라면, 열심히 찾아 듣는 사람이 아니라면 있어도 있는지 모른다.” - P. 346.
“사실 작품은 발표하는 순간 창작자의 손을 떠난다. 작품을 감상하는 일은 항상 개별 감상자들의 이해와 곡해를 동반한다. 작품을 감상하는 일은 이해와 곡해 사이에서 서성이고 헤매다 주저않는 일이다. 그 순간 삶이 끼어들고, 취향이 드러난다. 젠더와 세대와 계급과 지역과 이데올로기가 눈을 가렸다가 틔우기를 서슴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감상자는 자신만큼만 본다. 아는 만큼 보는게 아니라 딱 자신만큼 본다.” - P. 466~467.
저자가 선택한 80편의 음반들은 나름의 공통점들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글을 쓰던 시대적 상황의 반영도 있겠지만, 저자 자신의 음악적 편견도 있음을 책을 읽으면서 알 수 있을 것이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음악을 선택하는 폭이 좁아져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보다 조용한 노래를, 나의 지나간 시간을 둘러볼 수 있는 노래들을 선택하는 나를 보면서 나이가 들어감을 느끼게 된다는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음악, 안좋은 음악을 구분하는 기준은 없다고 생각한다.
노래를 들으며 가사에, 리듬에 공감하며 위로받을 수 있는 음악이 좋은 음악이 아닐까 생각하며, 다만 그런 음악을 선택하는 개개인의 선호가 있을 뿐이라 본다.
보다 많은 이들이 음악을 통해 서로를 나누며, 공감하며, 이해하고, 위로를 주고 받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어렵거나 독특하다는 점이 예술의 완성도를 가늠하는 척도는 아니다. 이제는 남다른 작품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교양의 증거가 되지 못하는 취향의 시대다. 익숙하거나 쉽다는 점이 예술의 완성도를 낮추는 척도가 되지 않는 점과 마찬가지이다. 음악이 감정과 사상을 전달하는 수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음악의 완성도는 감정과 사상을 얼마나 잘 전달하는지 여부로 판단해야 한다. 누구나 좋아한다고 좋은 음악이거나 안좋은 음악이 아니듯, 소수만 좋아한다고 좋은 음악이거나 안좋은 음악이라는 법은 없다. 들여야보아야 할 것은 음악 그 자체이다. 음악이 이 세계와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울림의 반향, 그 크기와 깊이다.” - P. 45.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했을 뿐일지라도 자신의 삶을 뒤져 맞춰보는 음악이 있다. 나만 이런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마음을 쓸어내리게 하는 음악이 있다. 누구에게든 너만 그런 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견딜 수 있는 삶에 위로를 대신하는 음악이 있다. 음악은 예술가의 고백임과 동시에 모두를 향한 응원이며, 조언이다. 탈출구이자 거울이다.” - P. 3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