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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르네상스가 온다 - 누가 새로운 르네상스의 주인이 될 것인가
프레데릭 르누아르 지음, 김수진 옮김 / 생각의길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르네상스는 14~16세기에 일어난 문화 운동으로 학문이나 예술의 부활·재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근본정신은 인문주의, 즉 휴머니즘이다.
신 중심의 사상과 봉건 제도로 개인의 창조성을 억압하던 중세에서 벗어나 인간의 창조성에서 모든
것이 만들어진 문화의 절정기였던 고대로 돌아가자는 운동으로, 문화·예술 분야뿐 아니라 정치·과학 등 사회 전반적인 영역에서 새로운 기법의 시도와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로 인간의 이성과 창조성은 무한한 나래를 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기계론적 세계관을 따른 무차별적 개발과 경쟁, 그리고 인간의 더 가지고자 하는 무한한 탐욕으로 인한 극심한 빈부의 격차 등으로 한쪽으로만 너무
나아가게 됨으로써 다른 한쪽을 잃어버리는 중세의 오류를 다시 범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지만.
“분명 세상을 치유하려면 이윤과 물질적 성공 외의 가치를 선택해야 하며, 지금껏 인류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기계론적 세계관을 초월해야 한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바로 이 인류의 정신을 변화시키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 바람직한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정신의 전환과 함께 생활 방식의 변화를 실행하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결국 우리
각자의 몫이다. 정확히 따져보자면, 근대사회에서는 개인이 그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세상은 개인이 변해야만 바뀔 수
있다.” - P. 283.
<네오르네상스가 온다 – 누가 새로운 르네상스의 주인이 될 것인가>는 현대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들의 무한한 욕구와 탐욕을 채우기 위해 무분별하게 개발되고
황폐화되어가고 있는 지구와 점점 더 극심해지는 빈부의 격차로 나락으로 떨어져가고 있는 인류의 공존과 새로운 도약을 위한 새로운 르네상스가 시작될
것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모든 것이 자본화되어가고 인간의 가치보다 돈의 가치가 우선시됨으로써 발생하게 된 현대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문제해결의 방법을 제안한다.
“현대 세계가 다양하게 변화한 결과 여러 분야에서 위기가 발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위기는 서로 연관되어 있다.... 이처럼 분야별로 나타나는 위기는 서로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공통적인 원인을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병의 뿌리를 찾아가다 보면 우리 세계는 시스템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적합한
해결 방안을 찾게 될 것이다.” - P. 109.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필자 역시 ‘자본화’의 패러다임을 넘어서기 전에는 세상을 치유할 수 없다고 확신한다. 이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보건, 교육, 문화 등의 분야에서 ‘세계의 상품화’가 낳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 것이다.” - P. 142.
저자는 현대의 대부분의 전문가들과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듯이 모든 문제를 단순히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보는 것은 잘못된 처방과 결과만을 낳을 뿐이라 말하며, 현재 발생하는 모든 문제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어느 하나만을 위한 처방이 아닌 가장 근본적인 본질을 파악하여 치료하여야 문제가 해결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본질적 문제는 인간성의 상실이며, 인간만이 가진 보편적 가치 – 진리, 정의, 존중, 자유, 사랑, 아름다움 - 의 재발견을 통한 인간성과 공동체의 회복만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이러한 인간성과 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수많은 운동들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이에 대해 저자는 상당히 긍정적인 의미로 분석한다.
“지금 우리 모두의 눈앞에는 점점 더 병들어가는 세상이 펼쳐져 있다. 지구와 인류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병 가운데 정치인과 미디어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는 것이 딱 하나
있다. 바로 경제 위기다. 사람들은 흔이 이에 대한 유일한 처방은 소비를 활성화함으로써 경제성장을 회복하는 길밖에 없다고
말한다.” - P. 6.
“병든 세계를 다시 건강하게 회복시키려면 한가지 증상에만 집중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이렇듯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위기는 체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체계적으로 조직되어’ 있기에 여러 문제를 서로 떼어놓고 생각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이 세계가 앓고 있는 병을 치유하려면 그 병의 진정한 본질을
파악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은 무엇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기획되었다.” - P. 7~8.
“우리 조상은 두가지 ‘안전장치’를 만들어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었다. 하나는 신이라고 하는 수직적인 안정장치였고, 다른 하나는 초기 원시 촌락의 울타리에서 파생된 국경이라는 수평적
안전장치였다. 그러나 우리는 신을 죽이고 말았으며, 국경을 바꾸거나 지웠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이런 ‘안전장치’를 바로 우리 자신 안에서 찾아야만 한다.” - P. 66~67.
과연 저자가 희망(?)하는 것처럼 네오르네상스가 올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중세처럼 완전한 르네상스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모든 것이 통제되고 있었던 중세시대에서도 르네상스가 일어났듯이, 모든 것이 자본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현대에서도 새로운 르네상스가 일어날 수는 있을
것이다.
다만 중세와는 다르게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모든 전자기기를 통해 우리도 모르게 우리 삶의 모든 것이
철저히 통제되어 있는 현실에서, 그리고 더욱 철저히 통제되어지고 무한 탐욕으로 인해 더욱 어두워질 미래에 과연 르네상스가 일어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저자도 자신이 주장하는 완전한 새로운 르네상스의 도래에는 어려움이 있음을
고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인간성과 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노력을 계속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과 공동체를 보존, 유지하기 위하여 보다 적극적인 사회참여와 지속적인 노력만이 우리의 미래를, 새로운 르네상스를 불러올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을 치유한다는 목표는 결국 절대로 달성될 수 없는 목표다. 이기주의와 두려움, 이익을 둘러싼 갈등은 항상 존재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을 치유하는 일은 우리를 비극으로 인도하는 현재의 내리막길을 뒤집기 위해 반드시
뛰어들어야 하는 과정이다.... 이 책의 목표는 다른 세상을 만드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있다. 또한 치명적인 논리가 여전히 세상을 지배하고 있지만 충분히 이를 피할 수
있으며, 치유의 길이 열려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 P. 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