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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우, 오래된 역사병 - 역사과잉시대 한중의 고대사 만들기
김인희 지음 / 푸른역사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치우는 매우 친숙한 인물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2002년 월드컵 때 치우는 붉은 악마의 마스코트였으며, 국민 대부분은 치우의 레드 데빌스 티셔츠를 입고 국가대표팀을 응원했다. 외신들도 이런 붉은 물결을 흥미롭게 주목했으며,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열정이라고 칭찬했다. 치우에 대해서 국민들은 친밀함을 느끼며, 우리와 연관이 깊은 신화적 인물로 생각한다. 치우를 상징하는 붉은색도 월드컵 때문인지 매우 친근하다. 정리해보면 치우라는 캐릭터는 한때 국가를 대표했던 마스코트였으며, 대한민국 국민들의 무의식 속에 깊이 각인된 친숙한 인물이다. 그런데 정작 국민들은 이런 친숙한 치우에 대해서 깊이 있게 아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나라 사람들을 붙잡고 단군이 누구냐고 물으면 우리의 조상이라고 '확실하게' 대답하지만, 치우에 대해서는 떨떠름하게 반응한다. 물론 역사학에 관심이 있고, 역사에 대해 조금 배운 바가 있는 사람이라면, '치우는 동이족'이며 우리의 조상이라고 주장하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 치우는 누구이며, 우리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조상인 것일까?
책은 도발적인 명언으로 시작하고 있다. '역사의 과잉은 인류를 파멸로 이끌 것이다.'라는 니체의 주장을 빌어, 우리나라, 그리고 중국의 '치우병'을 냉철하게 비판하고 있었다. 치우라는 인물은 중국의 사서에서 신화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선사시대 이래로 모든 문명국의 역사는 비현실적인 신화로 시작하며, 그로부터 먼 시간이 흐른 뒤에야 현실적인 시간의 기록으로 이어진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수메르 문화도, 나일강의 이집트 문화도, 인도의 인더스 문화도, 그리고 중국의 황화 문화도 마찬가지다. 그리스 역사도, 로마 역사도 모두 시작은 신화로부터 비롯한다. 일본과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사실 단군이라는 인물도, 신화적 색채가 강하지 않는가? 치우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의 신화에서 선의 축이 '황제'였다면, 악의 축이 바로 '치우'라는 인물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비롯했다. 검증하기 힘든 신화적 인물을 역사의 무대에 끌어올리려 하다 보니, 온갖 억측이 만연했고, 이것이 한국과 중국을 강타하고 있는 치우병의 원인이었다.
그럼 역사에 기록된 신화적인 요소는 비현실적 요소가 다분하기에, 그저 무시해야만 하는 기록일까? 그렇지 않다. 신화는 현실을 매개로 하여 탄생한 비현실적 기록이다. 즉 당대의 모습을 바탕으로 하여서 기록한 것이 신화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무조건적으로 덮어둘 수만은 없다. 앞에서 고찰했듯 인류의 대부분의 고대사는 신화적 요소가 강한데, 이를 좀 더 사실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허구의 속에 내포된 진실을 잘 가려내야만 한다. 허구를 매개로 한 당대의 진실은 무엇인지, 허구는 왜 이렇게 부풀려질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역사적, 문헌학적, 고고학적 요소를 모두 동원해서 조심스럽게 검증해야 한다. 이런 어려움이 있기에, 신화적 요소가 잔재한 고대사 부분은 여전히 사학에서 어려운 영역으로 여겨진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우리나라의 고대사만 보더라도 그렇지 않은가?
저자는 책을 통해 치우라는 인물이 어떻게 형성됐고, 치우라는 인물이 왜 태어났으며, 치우 신화를 모태로 한 사건이 무엇인지를, 정밀하게 고증한다. 책 초반부에 고증하지만 치우의 신화는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주나라와 초나라의 전쟁에서 비롯했다. 황제를 통칭하는 세력은 주나라 황실을 뜻하며, 초나라의 반골 세력은 치우를 상징한다. 치우를 이야기할 때 전쟁과 관련한 이미지, 그리고 구리를 제조하는 능력을 가져서 병기를 제작했다는 것 역시도, 당시의 초나라의 모습을 상징한다고 밝혔다. 주나라 황실과 초나라 제후국의 싸움의 원인은 바로 청동기 광맥 때문이었다. 당시 초나라 일대는 천연 청동기가 많이 매장된 곳으로, 매해 황실인 주나라에 청동기를 조공으로 바칠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초나라는 자신의 노다지를 주나라 황실에 바치기 싫었고, 이를 무기화해 자신이 패자가 되려고 했었다. 이에 주나라는 온갖 도덕적인 명분을 내세워 초나라를 정복하는데, 이 사실이 황제와 치우의 전쟁이라는 신화적 스토리텔링의 모태가 됐다.
이후 시대가 거듭할수록, 중원에서는 황제와 치우 신화를 더욱 부풀리기 시작했는데, 크게 두 가지 특징이 있었다. 첫 번째, 당대의 정치적, 그리고 사회적인 문제를 신화 속에 첨가하여 더욱더 과장을 부풀렸다는 점이다. 황제와 치우가 크게 싸웠다는 기주대첩과 탁록대전, 그리고 소금 못에서 치우와 관우가 싸웠다는 설화 등등이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두 번째 역대 이래로 중원의 정부는 역대 이래로 만들어지고 부풀려진 신화를 '사실로의 역사'로 끌어내려,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다는 점이다. 이는 역대의 중원 정부에서 늘 자행했던 일이며, 특히 최근 근대 이래로 중국의 과잉 민족주의 정책에서 노골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신화적인 요소를 역사적으로 검증하는 데에는 아까 살펴봤듯 신화 속의 허구적 요소가 다분하기에, 매우 정밀한 태도로 검증해야만 최대한 진실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이를 자국의 정치적 목적에 맞게 해석하고, 자료 해석 역시도 취사적인 선택으로 살펴봐 자신들이 원하는 결론으로 이끌어냈다. 사실 이는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 역시도 우리 마음대로 치우라는 인물을 해석하고 있었다. 이러다 보니 치우라는 설화적 인물은 양국의 입장, 양국의 주관에 따라 서로 다른 과잉적 의미로 치닫게 된 게 오늘날의 모습이다.
우리나라 사학 학계에서는 치우를 둘러싸고, 주류 사학에서는 신화적 요소라고 하며 역사적으로 검증할 사안이 아니라고 무시하고 있고, 재야 사학에서는 그를 동이족의 조상으로, 한때 중국을 호령했던 위대한 인물로 격상해서 해석하고 있다. 이들의 말에 따르면 결국 치우는 우리나라 민족의 모태이며, 중국에 대해 보이지 않게 종속적으로, 문화적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던 우리나라의 불편한 마음을 해소한 고대의 영웅이다. 반면 중국은 오늘날 치우를 자신들의 조상으로 여기고, 황제 그리고 염제와 더불어 제사를 지내고 있다. 원래 중국은 염제와 황제만을 중국 민족의 원류로 인정하고 숭배하며 국민적 단합을 이끌어내려 했는데, 치우라는 인물을 포함함으로써 역사적으로 이질적이었던 이민족들을 포용하려 하였다. 이렇듯 치우라는 인물은 현재 중국의 시조로도, 그리고 한국의 시조로도, 중국의 소수민족의 시조(마야족)로 받들여지고 있는 실정이다. 허구적이고 신화적인 인물을 둘러싸고 각국의 주관적인 해석이 불러온 '역사 과잉'의 모습이다.
책은 매우 흥미롭지만 사실 교양 차원으로 읽기에는 버거운 책이었다. 온갖 전문적인 용어와, 학술적으로 치우친 설명이 가득했기에 일반인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역사에 관심이 많고, 나름 역사책과 중국 고전을 읽는 나조차도 이렇게 느껴지는데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어렵고 복잡한 내용이 있기에 저자가 주장하는 주장이 과연 정답이라고 확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은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었고, 매우 치밀하며 구체적인 해석과 사료, 그리고 문헌 고고학적 배경을 바탕으로 전개되고 있어서 매우 신뢰가 갔다. 더불어 책 말미에는 치우에 대한 고전의 문헌들을 대부분 번역해놓고 있어서, 치우라는 인물이 어떻게 기록됐는지를 시대별로 살펴볼 수도 있었다. 교양 차원에서는 다소 어려운 책이었지만, 책을 관통하는 주제의식과, 주장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철두철미하게 논증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신화적인 인물인 치우라는 인물을 이토록 구체화하여 풀어낸 점도 흥미로웠다. 책을 통해 중국이라는 나라가 역사를 어떻게 정치적으로 이데올로기화하여 이용하는지도 살펴볼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은 본문의 전문적인 내용들은 주석으로 처리해서 책 말미나 챕터 말미에 배치했으면 어떨까 싶다.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 평이한 서술과 주장을 읽다가 뒤이어 나오는 너무 전문적인 논거를 접하면 아무래도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이 책이 전문가, 그리고 학자들을 대상으로 쓴 책이라면 할 말은 없겠지만, 주제의식이나 내용으로 봤을 때 일반 독자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서 편집의 아쉬움이 컸던 것 같다.
얼핏 봐서는 '역사의 과잉'은 바람직한 자세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는 단순하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다. 물론 역사는 중요하고, 의미를 과소평가해서도 안되지만 과대평가 역시 위험하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화를 불러오는데 역사의 의미도 마찬가지다. 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의 뒤틀린 역사 과잉 의식은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역사에 있어 민족주의 의식은 민족 내에서 소속감과 유대감을 고양하는 효과가 있지만 이것이 과잉된다면, 이는 근거 없는 우월의식으로 빠지게 된다. 게다가 역사에 과대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하여 왜곡과 날조가 가미된다면 이러한 사태 역시도 커다란 문제로 이어진다. 치우의 역사병이 전형적으로 이에 속한다. 중국의 편협한 민족주의적, 중화주의적 역사관도 위험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나라도 이에 대한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다. 온 국민들이 근거 없이 친근하게 느끼는 치우. 그가 누구인지 우리도 냉정하게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