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삼백수
손수.장섭 엮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중국 시에 대한 고전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경》을 손에 꼽을 것이다. 《시경》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노래 모음집이라는 문헌학적 가치와, 유학의 아버지 공자가 편찬하여 유학의 경전으로 인정받는 사상적 철학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다음으로 유명한 시집은 무엇일까? 아마 《초사》가 아닐까 한다. 《시경》이 중국 북방 문명의 문학이라면 《초사》는 중국 남방 문학의 대표작이다. 굴원을 주축으로 초나라의 노래, 그리고 이러한 초나라의 노래 형식을 후대에 이어나간 작품들이 《초사》를 구성하고 있다. 《시경》이 시가 가지는 짧은 형식성을 강조한 작품이라면 《초사》는 긴 장편 시를 연상하는 작품이며 산문이나 가사문학의 효시로 꼽힌다. 내용적인 측면에서 《시경》은 현실적이며 통상적인 것들을 노래하는 것이 많았고, 《초사》는 이에 반해 인간의 감정을 중점적으로 묘사했는데, 그 감정들 중 개인의 고뇌와 번민, 비애를 집중적으로 노래했다. 《시경》의 작품들은 대부분 작가를 알 수 없는데, 이것은 당대의 불특정 다수가 부르던 노래를 공자가 선정했기 때문이다. 반면 《초사》는 이와 반대로 소수의 작가들의 작품들로 이뤄졌는데 대표적으로 꼽히는 작가는 굴원이다. 굴원은 《초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이며, 초나라 노래의 시초에 해당되는 작가였다.

 

 

 

 이렇듯, 고대의 고전 중에서는 두 책이 독보적으로 두드러졌다. 그럼 중세 시기에는 어떤 시집이 유행했을까? 바로 《당시》다. 《당시》는 당나라 시인의 노래 모음집인데, 당나라의 유명한 작가들의 대표작 모음집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중국에서 최고의 시인으로 꼽히는 이백과 두보는 어느 시대 사람일까? 바로 당나라 시대 사람이다. 당시 당나라는 당시 대외적으로 돌궐을 정벌해 국토를 넓혔으며, 대내적으로 중국 내에서 가장 뛰어난 문명을 이룩한 시대였다. 다양한 나라를 정복한 덕에 문화 교류가 활발했던 이런 시대적인 상황은 문학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는데, 왕유나 이백, 두보와 같은 걸출한 시인이 당나라 시대에 집중적으로 태어난 것은 과연 우연으로 치부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개방적인 환경이 잉태한 결과인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시경》과 《초사》와는 다르게 《당시》는 여러 가지 판본이 존재한다. 중국 내에서도 당나라 시가 뛰어난 점을 인식하여 여러 문학가들이 《당시》의 판본을 제시했는데, 지금 리뷰할 손수의 《당시삼백수》 역시 많고 많은 《당시》의 판본 중 하나였다. 손수는 청나라 건륭제 때 인물로, 시와 서예에 조예가 깊은 인물이었다. 서문에서 볼 수 있듯, 손수는 당나라 시를 모아 편찬한 목적을 교육에 두고 있었다. 즉 이 책에 수록된 시만 읽고 외운다면 시에 대해서 문외한이더라도 시를 짓는데 능할 것이라고 서문에 밝혔다. 많고 많은 당나라 시 중 굳이 왜 300여 편인가? 이것은 《시경》의 300여 편의 편제를 본받은 것이었다. 이렇게 손수가 엮은 《당시삼백수》를 청조 1834년 장섭이라는 사람이 대폭적으로 주석했는데, 지금 리뷰하는 《당시삼백수》는 이 주석본을 원전으로 삼았다. 장섭은 주석을 가하면서 기존 《당시삼백수》에 10수를 더 포함하였다. 따라서 최종적으로 《당시삼백수》에 포함된 작품은 320개가 확정됐다. 여기서 유심히 살펴볼 점은 각 시대별로, 당나라 시에 대해 선집을 만들어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당나라 이후 송, 원, 명, 청나라 시대로 가면서 당나라의 노래는 경시된 적이 없었다. 현대에 가장 가까운 청나라 후기에도 이러한 현상은 꾸준히 유지됐다. 그만큼 당나라 시는 시대적으로 보편적인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나라에서도 《당시》는 여러 번역본이 있다. 다만 번역자의 취향이 크게 작용하여, 어느 작가의 시를 더 많이 포함하거나 덜 포함하는가에 대한 차이가 있다.


 그럼 왜 당나라 시대의 시는 유독 주목을 받아왔을까? 그리고 당나라 시대의 시들을 정리한 《당시삼백수》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내가《당시삼백수》를 읽으며 느꼈던 것은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가장 큰 부분은 바로 엄격한 형식성과 그러한 엄격한 형식성이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시의 내용면에서 뛰어난 감정 표현이 나타난 점이었다. 당나라 시대의 시는 다른 시대와는 다르게 시의 형식적인 부분이 극도로 강조됐다. 오언고시, 칠언고시, 오언고시악부, 철언고시악부, 오언율시, 칠언율시, 오언율시악부, 칠언율시악부, 오언절구, 칠언절구, 그리고 각 절구의 악부까지... 이런 식으로 형식적인 부분이 강조됐다. 이런 형식성은 자유로운 창작을 하는 데에 걸림돌로 적용한다. 작가의 경우 자신의 창작에 무언의 형식이 개입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작가가 자유롭게 표현하려는 것을 형식이라는 틀이 제약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당시 당나라 시대의 시들은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암묵적인 형식이 있었다. 문인들인 이 틀에 벗어나는 것을 비판했으며, 약간의 일탈적인 형식의 시가 몇몇 수 존재하지만, 큰 틀에서는 기존의 형식을 지키려고 하는 특징이 있다. 놀라운 점은 이러한 형식적인 제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삼백수》의 시들은 그러한 형식에 맞춰 자신들이 노래하고자 하는 감정을 '유감 없이' 발휘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이러한 형식이라는 틀이 작가의 창작성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으로 형식이라는 틀을 이용하여 작가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좀 더 잘 표현하고 있었다. 특히 당나라 시들은 이러한 부분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예로부터 뛰어난 문인이더라도, 당나라 시의 시풍으로 시를 짓는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워했다. 그만큼 당나라 시의 형식성은 까다로웠고, 깐깐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시인들은 그러한 까다로움을 넘어 그 까다로움을 오히려 창작의 시너지로 이용했다. 그래서 당나라 시는 엄격한 형식성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내용적으로 뒤떨어지지 않으며 감정 표현에 있어서도 다른 시대의 시보다 뒤지지 않는 특징을 가졌다.


 그럼 《당시삼백수》에 주로 나온 감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앞서 말한 《시경》처럼 현실적인 부분이었을까? 아니면 《초사》와 같은 개인의 고뇌와 번뇌, 비애를 노래하는 것이었을까? 전자와 후자의 내용이 고루 분포됐지만, 아무래도 후자의 입장이 더 두드러졌다. 《당시삼백수》에서 가장 유명한 두보의 예를 들어보자. 두보의 시는 인간의 감정 표현을 아주 섬세하게 표현하는 작품이 많은데, 대체적으로 번민과 비애, 그리고 울분을 표현한 것이 많았다. 이런 부분에서 두보는 당나라 시대의 굴원이라고 할 만 하다. 비단 두보의 시뿐 만 아니라 다른 시인들의 작품도 이러한 울분의 감정이 나타나있다. 그럼 어떤 것에 향한 울분인가? 바로 현실 사회와 직결되는 울분이였다. 그 시대에도 문란한 정치 상황이나, 인재가 고루 쓰이지 못하는 상황, 그리고 지도층의 사치, 올바른 관료들은 배격되고 간사한 자들만 입신하는 상황 등등이 있었고, 이러한 상황을 당나라 시인들은 노래로 빗대어 남겼다. 이러한 감정 표현이 매우 섬세하고도, 공감을 불러일으켰기에 사람들은 당나라 시를 최고로 치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인문학을 구성하는 분야는 크게 세 분야다. 첫 번째 철학, 두 번째 역사, 세 번째 문학이다. 철학은 인간을 나아가는 데에 등불 같은 역할을 했다. 역사는 어떤가? 역사는 인간이 걸어온 길을 회고할 수 있는 거울과 같은 역할이다. 그럼 문학은 무엇일까? 반영론적 관점에서 볼 때 문학은 사회 현실을 그 자체를 대변하고 있다. 현실을 표현할 때 우직하고 돌직구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문학가들은 좀 더 완곡하게, 그리고 좀 더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또는 좀 더 희화화하기 위해 허구를 섞어 표현한다. 이것이 문학이다. 시라는 장르 역시 마찬가지다. 예로부터 동아시아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시로 표현하는 것을 높은 가치로 여겼다. 그래서 지식인층은 시를 배웠으며, 술자리를 가거나 벗을 만나거나, 풍류를 즐기거나, 슬픔을 당하거나 할 때 자신의 감정을 시로 표현했다. 오늘날 사람들은 선조들이 시로 현상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 쓸데없는 포장과 허위의식, 그리고 지나친 풍류로만 생각하지만 이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앞서 말했듯 시는 풍류와 감정 표현이라는 부분도 있지만, 그것을 넘어 지금 직면한 현실을 좀 더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역할도 한다. 사회 현상을 말할 때 무조건 직설적인 표현보다 때로는 완곡한 표현이나 절제의 표현이 생동감을 가지는 경우가 있는데 시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이런 예에 속한다. 선조들은 시를 지을 때 이런 사회 반영론적 관점을 중요시했다. 그리고 이런 사회 반영론적 관점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시가 바로 당나라 시대의 노래이기도 했다.


 사실 나는 인문학의 세 분야 중 역사를 가장 좋아하며, 철학은 그다음이고, 문학을 가장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문학의 장르 중에서 시에 관해서는 예외적으로 시집을 몇 권 보긴 했지만 즐겨 보진 않았다. 《당시삼백수》를 읽으며 이런 내 생각을 돌아보게 됐다. 이들의 세상에도 정치는 부패했으며, 인사 문제는 여전히 있었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최순실 사태처럼 말이다. 당나라 시대의 부조리를 시로 읽었지만, 어쩌면 내가 읽은 것은 오늘날의 부조리가 아닐까? 어쩌면 이들의 시에 담긴 울분은 이 시대의 촛불집회가 아닐까?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고, 울분의 노래에 공감했을지도 모른다. 책은 굉장히 공들여 번역한 것 같다. 사실 신동준 역자분의 다른 고전 번역본을 봐 왔지만, 이번 《당시삼백수》는 역대급으로 주석이 풍부했다. 해설 설명이 아주 자세하고 각 연마다 중요한 단어와 중요한 부분들을 상세하게 해설해놔서 정말로 편하게 작품을 음미할 수 있었다. 다만 초판본에 한해 오타가 부분 부분 있었는데 크게 신경쓸 부분은 아니지만 조금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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