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정 - 정명공주와 광해군의 정치 기술
박찬영 지음 / 리베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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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차줌마라고 불리는 차승원이 주연으로 나오는 사극 '화정'이 절찬리에 방영되고 있다. 화정의 주인공은 광해군의 이복동생으로 알려진 정명공주다. 드라마는 가장 정치적인 시기를 광해와 선조, 인조의 시각이 아닌 정명의 시각으로 그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17세기 조선을 이해하는 관점은 대체적으로 남성 군주 중심적인 해석이 주류를 이뤘다. 가령 선조 vs 광해군, 광해군 vs 인조, 혹은 누가 더 무능한가라는 관점으로 인조 vs 선조 등등의 시각으로 이 시기를 해석해왔다. 드라마는 종래의 남성주의적인 시각을 깨고, 정명공주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이 시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사극 '화정'의 시각은 다른 사극이나 역사물에 비해 참신했다.  
 
화정(華政)은 정명공주(이하 정명)가 쓴 서예 작품이다. 정명은 어려서부터 서예에 능통했는데, 그러한 능력은 명필이었던 아버지 선조와 인목대비로부터 물려받았다. 아버지 선조는 글씨에 굉장히 빼어난 실력을 자랑했었고, 어머니였던 인목대비 역시 붓글씨가 일품이었다. 그런 능력을 이어받은 정명이 남긴 작품이 바로 화정(華政)이다. 정명이 남긴 글씨의 뜻은 빛나는 다스림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 책 역시도 드라마와 같이, 그런 정명공주의 작품을 제목으로 하고 있었다.


드라마와 책의 차이라면, 드라마는 상당히 각색된, 내용으로 정명의 삶을 전개했지만, 동일한 제목의 이 책은 역사적 사실만을 다루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겠다. 책은 선조를 시작으로, 광해군, 인조, 효종, 현종, 그리고 숙종 때까지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모두 정명이 살아온 세월이었다. 사연이 많은 그녀는 조선의 1/5를 경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이 시기는 국가가 혼란했던 시절이었다. 사림은 분화되고 왕권은 흔들렸다. 왕위를 이은 왕들은 취약한 정통성을 극복하기 위해, 과도하게 애를 썼다. 욕망과 권력이 춤추던 세월이었고, 그런 권력 다툼과는 별개로, 대외적인 국난을 몇 차례나 치렀다. 안도 밖도 썩어있던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서 권력을 쥔 그들은 그들만의 리그에 집중했고, 민심은 뒷전이었다. 암울한 시대였었다. 그런 풍파의 세월을 정명은 나름의 처세술로 견뎌왔었다. 책은 그런 정명의 눈으로 시대를 해석해보자는 입장이었다.


사실 책을 읽을 때는 많이 기대를 했었다. 종래의 군주 중심의 시각이 아니라, 정명의 시각으로 역사를 해석한다는 것에서 신선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책을 보면서 조금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정명의 시각으로 역사를 해석하기엔, 정명의 모습을 기록한 사료가 너무나도 소략했다. 저자가 주로 내세우고 있는 정명의 사료는, 화정이라는 글귀, 그리고 막내아들에게 정명이 당부했던 말, 그리고 호란 때 강을 건널 때 재물을 버리고 백성부터 태우라고 했던 이야기 이 세 개가 전부였다. 저자는 이 세 가지 기준을 가지고 이것들을 정명의 가치라고 의미 부여하며, 그러한 가치에 따라 혼탁했던 조선 시대를 해석하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너무 소략한 사료를 가지고 혼탁하고 복잡한 시대를 해석하려고 하니, 아무래도 과도한 주장처럼 보이는 부분도 많았다.


나는 여기서 저자가 내세운 정명의 입장을 비판해보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자가 정명의 시각이라고 말한 세 가지를 하나하나 검토할 수밖에 없다. 저자가 전면적으로 내세운 정명의 처세는 앞서 말한 대로 화정이라는 글귀, 그리고 막내아들에게 정명이 당부하던 말, 호란 시기, 강을 건널 때 재물을 버리고 백성부터 태우라고 했던 이야기들이다. 이 셋을 비판적으로 검토해보고자 한다.  

 

 책은 기존의 목표한 의도를 쫓아, 정명의 시각으로 당대의 인물과 역사를 해석하는 부분도 많지만, 대체적으로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교과서적인 해설을 보인 부분도 많았다. 뭐랄까 정명의 이야기가 주가 되기보다는 일반적으로 저자가 교과서적인 해설을 하며 시대의 단면을 설명하고 마지막 결론부에 이르러서야 갑자기 뜬금없이 정명의 처세를 바탕으로 '빛나는 다스림'에 비춰, 역사를 혹은 역사적 인물을 평가한다'라는 식으로 전개되는 부분이 많았다. 그 정명의 빛나는 다스림이라는 가치로, 저자는 이순신을 비판하고 소현세자를 비판하고, 광해군을 비판한다. 물론 비판 기준이 정당하다면 그 기준으로 비판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비판 기준으로 내세운 정명의 '빛나는 다스림'이 모호하다면? 이러한 비판들이 올바른 비판이 될 수 있을까? 화정이라는 글귀도 그렇다. 화정이라는 뜻은 빛나는 다스림이지만, 그 글자가 어떤 배경으로 쓰였는지, 정명은 어떤 생각으로 썼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저자는 저자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그것은 저자가 자의적으로 부여한 의미일 뿐, 정확한 것은 불분명하다.


책은 문단이나 단락 말미마다 정명의 빛나는 다스림에 비춰 설명하고 평가한다는 말이 계속해서 나온다. 저자는 정명이 쓴 화정이라는 단어에 많은 의미 부여를 한다. 화정이라는 글자에 빛나는 다스림이라는 해석을 시작으로, 나를 다스리는 것으로 시작하여 남을 다스린다. 내가 아니라 상대를 움직여 목적을 달성한다. 등등으로 확장하여 화정을 해석해내지만, 글쎄 내가 책을 읽고 살펴본 정명의 행실과 저자가 해석하는 화정의 뜻은 일치하지 못 했다. 책 속에서, 보인 정명의 행실은  '결정적인 순간에 침묵으로 일관한다.'라는 것 외에는 빛나는 다스림이라던지, 나를 다스린다던지 하는 부분은 발견하지 못 했다.  


실제 정명의 처세를 잘 살펴보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항상 침묵으로 상황을 돌파한다. 억울한 상황이 되어도 변명하지 않으면서 묵묵하게 상황을 견뎌낸다. 확실히 문제의 상황에서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것보다야 훨씬 좋은 처세다. 동양은 예로부터 말을 줄이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겨왔으니, 그런 기준으로 보자면 정명의 처세는 굉장히 뛰어나다고 할 수 있겠다.


정명은 막내아들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내가 원하건대 너희가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들었을 때 마치 부모의 이름을 들었을 때처럼 귀로만 듣고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기까지는 참 훌륭하다. 그러나 다음 구절을 보면 의아하게 생각되는 부분이 있다.


'다른 사람의 장점과 단점을 입에 올리지 않고 정치와 법령을 망령되이 시비하는 것을 나는 가장 싫어한다. 내 자손들이 차라리 죽을지언정 경박하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말이 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다른 사람의 장점과 단점을 말하지 않는다. 정치와 법령을 쓸데없이 시비하지 말라. 그럼 아닌 것을 보고도 아니라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가? 정치의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는 것이 경박한 말인가? 그저 침묵만이 최고의 가치인가?


 물론 침묵은 최고의 처세술일 수 있다. 정명 스스로도, 침묵의 힘으로 광해와 인조의 질투로부터 견뎌왔으니까, 하지만 침묵보다도 더 좋은 화술은, 아닌 것을 아니라고 '적절하게' 표현하고 말할 수 있는 대화법이 아닐까? 어쩌면 이 혼탁한 시기에 필요했던 것은 아닌 것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지혜가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정명은 그 시대의 지도자 계층에 위치하는 사람이다. 그런 계층의 사람이 혼탁한 시대에 밑도 끝도 없이 침묵하는 것은 그저 일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발전할 수 있다. 특히 사회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은 이에 앞장을 서야 한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받아들이고 그것을 개선해 나갈 때에 사회는 발전한다. 아니라는 말을 침묵하기보다, 아니라는 말은 올바르게 표현하는 것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위정자가 아닌 길로 가는데,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그 사회는 죽은 사회나 다름없다. 그럴 때 침묵은 너 나 우리, 나아가 국가를 죽이는 것이다. 물론 아닌 것을 아니라고 하면, 개인적으로 불행할 수 있겠다. 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 있겠다. 현세 권력을 쥔 자들로부터 불의의 피해를 입을 수도 있겠다. 어쩌면 정명이 이렇게 행동했더라면, 그렇게 오래 살지 못 했을 수 있겠다.


하지만 그렇게 행동했다면 정명의 화정(華政) 빛나는 다스림은 더 확실하게 후손들에게 각인됐을 것이다. 지금처럼 모호한 의미의 작품으로 남겨지지 않고, 좀 더 선명하게 남았을지도 모른다. 정명 공주 그녀도, 지금처럼 모호한 역사의 파편으로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정명의 침묵은 자신의 국가의 발전에 기여하기보단, 개인의 생존 처세에만 집중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정명이 호란 때문에 피난 갈 시절, 자신의 재화를 버리고, 백성을 먼저 태우라고 지시한 부분을 가지고 저자는 굉장히 칭찬한다. 물론 이 부분은 굉장히 뛰어난 처세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정명은 돈보다 사람을 우선시하는 지도층이라고 칭찬한다. 그러나 책을 자세히 본다면, 또 다른 모습의 정명을 볼 수 있다. 인조반정 당시 인조는 자신을 왕으로 추대해준 인목대비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정명에게 과도한 상을 내린다. 100칸짜리 집을 하사하고, 집에 들어가는 재료를 지원한다. 이 때문에 백성들은 끝없이 수탈 받았다. 진정으로 정명이 애민정신이 있었다면, 그러한 경제적인 혜택을 거부해야 하지 않을까? 나라가 힘든데, 왕족 한 사람의 집을 위해, 그렇게 백성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을 정명은 결국 침묵으로 일관했다. 당시 도성에서는 정명의 집 때문에 성화가 많았다고 책에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명은 '침묵하고, 그러한 혜택을 말없이 다 누렸다.' 그뿐일까, 도성 내 집뿐만 아니라, 정명의 가족은 전국구 단위로 땅을 하사받았다고 하는데, 그 땅이 몇 천 평에 이른다고 한다. 그녀가 과연 백성을 사랑하고 진정으로 애민정신이 있다면, 왕실의 일원으로써, 그러한 혜택들에 대해 거부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왕실 가족 한 개인을 위해 그 많은 땅이 과연 필요한가? 그 시기가 어떤 시기인가? 나라는 전란으로 혼란스러우며, 왕실은 반정으로 인해 뒤숭숭한 분위기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고통받는 것은 힘없는 백성들이었다. 그녀가 과연 백성들을 위한 지도층이었다면, 과도한 혜택에는 거부하는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 정명이 쓴 화정이라는 글씨, 그 빛나는 다스림에는 과연 진정한 애민이 있단 말인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정리해보면 저자가 내세우는 정명의 시각, 화정 즉 빛나는 다스림은 정확하지 않은 모호함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결국 역사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정명의 처세는 그저 일신의 안위를 보존하기 위한 침묵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녀가 애민을 가지고 있다는 부분도 위와 같이 한계가 있다.

 

그래도 책을 읽으며 알게 된 사실이 많았다. 덕수궁의 암울한 역사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고(이 책을 읽다 보면 왜 덕수궁 돌담길을 연인과 걷지 말아야 하는지 알게 된다.), 무엇보다 광해군과 정명은 이복동생이지만 기회가 올 때까지 잠자코 숨죽여 기다리는 스타일도 닮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역시 이복동생이긴 하더라도 같은 피를 타고나서 그런 것일까? 닮아있는 부분이라 생각됐다. 다소 비판적으로 서평을 썼지만 이 책이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책은 장점도 확실히 가지고 있다. 선조 ~ 현종 때까지 복잡한 조선의 시기를 단순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역사에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앞서 지적했던 정명의 입장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부분은 아쉬움이 많았지만, 그런 아쉬움과는 별개로 복잡한 역사를 평이하게 서술하는 저자의 서술법은 돋보이는 것 같다. 따라서 드라마 화정을 더 깊이 있게 즐길 분들은 이 책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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