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몽영, 삶을 풍요롭게 가꿔라 - 임어당이 극찬한 역대 최고의 잠언집
장조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고전 중 잠언집 장르는 동서를 불문하고 굉장한 베스트셀러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가의 최고 경전인 《논어》 역시도 이런 잠언집 장르에 속하며, 비단 《논어》 뿐만 아니라 《노자도덕경》, 《명심보감》, 《채근담》 의 고전도 짧은 경구와 성찰을 담은 잠언집 고전에 속한다. 일본에서는 《언지록》, 서양에서는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지혜서》, 이탈리아 귀치아르디니의 《리코르디 - 회상집》, 파스칼의 《팡세》, 쇼펜하우어의 《인생론》 등등도 이러한 장르에 속한다. 그럼 왜 이러한 잠언집 장르가 대중에게 잘 읽히는 '베스트셀러' 였을까? 되묻지 않을 수 없겠다.

 

잠언집 고전들의 특징은, 잡다스러운 논의나 어려운 형의상학적 문구를 지양하고, 짧고 간결한 문구로 삶의 성찰을 드러내고 있다. 짧고 간결하며, 단순한 문장이지만, 그 안에 함축된 내용은 깊고 풍성하다. 그러한 잠언집은, 지식이 없는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책을 이해하기 위해 배경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 읽다 보면 자신의 삶에 경험을 투영하여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에, 동서를 막론하고, 이러한 장르적 형태를 취해, 자신의 논의를 전개한 고전들이 많았다. 이러한 잠언서들을 어려운 용어로 '아포리즘'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지금 서평을 쓰려고 하는 《유몽영》 역시 이런 아포리즘 잠언서라고 할 수 있겠다. 《유몽영》은 청대에 발간된 잠언서로 장조라는 문인이 자신의 생각과 더불어, 당대에 널리 퍼진 명문들을 모아 엮어낸 책이다. 책은 《유몽영》 본서와 이 책의 속편이라 할 수 있는 《유몽속영》까지 번역했다. 《유몽속영》은 장조가 쓴 책이 아니라 청대 말기에 문인 주석수가 쓴 책이다.

 

고전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대중적이고, 흔히 알려진 고전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그보다 더 즐거운 것이 '새로운' 고전을 접하는 것이다. 《유몽영》은 그런 부분에서 우리 사회에 대중에게 흔히 알려진 책은 아니었다. 사실 나도 이 책을 접할 때 읽어보지 못한 고전이라 상당히 기대가 많이 됐었다. 잠언집의 최고봉인 《채근담》에 견줄 만한 책이라고 하며, 중국 유명한 문학가인 임어당이 극찬한 잠언서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임어당은 이 책을 영역하여 서구권 문화에 알리기 위해 노력했으며, 자신의 저서 《생활의 지혜》라는 책 역시 《유몽영》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해설에 나와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유몽영》이 왜 그렇게 중국인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는지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고 독서를 했었다. 그리고 나름의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우선 이 책은 다른 잠언서들과는 다르게, 굉장한 격조와 품위를 자랑하고 있었다. 잠언서의 특징은 삶의 지혜가 통찰적으로 녹아있는 문구가 많다는 점이다. 《유몽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책도 보는 각도에 따라서, 처세서로 분류해 볼 수도 있지만, 얕은 처세서나, 딱딱한 교훈서로 분류하기엔, 문체 자체가 굉장히 아름다운 격조를 보였다. 왜 중국의 문학가인 임어당이 이 책에 매료되었는지, 알 법 했다.

 

책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것은 독서와, 자연물이다. 특히 꽃과 산수에 대한 비유가 굉장히 많이 나오는데, 나는 꽃이나 식물에 대해서 지식이 없어서 저자의 논의를 깊이 있게 체득하지 못 했지만, 글에서 풍기는 그 격조 높은 품위의 포스는 유감없이 느꼈다. 저자는 화훼와 식물, 그리고 꽃에 대해 상당히 지식을 가지고 있던 것 같았다. 보통 동양의 잠언서들은 세속을 멀리하고 자연을 가까이하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지만, 이 책은 구체적으로 꽃과 식물에 초점을 두고, 자신의 생각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었다. 이런 책의 서술은 책의 문장을 한층 더 부드럽게 만들어주고 있었으며, 교화라는 측면에서 잠언서가 가지는 딱딱함을 한층 더 말랑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유교적 가치를 담은 잠언서들인 《명심보감》, 《논어》 등등이 다소 인과 예 충, 효에 집중하여, 직설적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면, 《유몽영》은 그것보다는 다소 말랑하고, 부드럽게 이론을 전개하고 있었다.

 

같은 청대에 유행했던 《채근담》과 비교를 해 보자면, 공통점과 차이점도 보이는데, 《채근담》은 유교, 불교, 도교, 3교의 속성이 모두 절충되어 나타난 책이다. 동양을 지배했던, 사상이 모두 녹아내린 책을 한 권 꼽으라면 단연코 《채근담》이라 할 수 있는데, 《유몽영》 역시도, 유, 불, 선 3가지 사상이 모두 혼합되어서 나타나고 있었다. 다만 《채근담》에 비해서 《유몽영》이 가지는 두드러지는 특징은 바로, 꽃이나 여자, 산수의 풍경을 이용하여, 서술한 부분이다. 《채근담》과 《유몽영》 모두 다른 잠언서들에 비해 일상적이고, 평이한 서술을 보이지만, 둘을 놓고 비교해봤을 때, 《채근담》은 《유몽영》에 비해 좀 더 교화적인 내용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채근담》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격언들은 대체적으로 교화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반면 《유몽영》은 교화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이 들어 있지만 그것 외에도 저자 자신의 일상적인 생각이나, 사견 등등을 이야기하는 부분도 있다. 따라서 두 책만 놓고 비교해봤을 때 좀 더 일상적이고 소탈한, 책을 꼽으라면 단연코 《유몽영》을 꼽고 싶다.

 

혹자들은 《유몽영》이 자연과 꽃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많아서, 대체적으로 도가의 신선사상이나, 탈세속적인 삶을 노래하는 책으로 생각할 법도 하다. 그러나 《유몽영》은 탈세속을 노래하되, 세속적 가치도 쉽게 져버리지 않는 절충주의적 관점으로 삶을 바라보고 있다. 청대의 잠언집들은 이전 시대의 유교 중심적인 잠언서들과 다르게, 유교 제일주의를 외치지 않고, 유교와, 불교, 도교의 다양한 사상을 합친 내용이 많다. 앞서 봤듯 《채근담》 역시 이러한 예에 대표적인 책이며, 《유몽영》 역시 이러한 부분에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부분은 이민족이라 할 수 있는 청나라 왕조가 개창된 사회 배경의 영향이 컸다. 중국 본토를 지배하던 사상은 유교 사상인데, 이 유교사상은 한족 이데올로기의 가장 막강한 사상적 뒷받침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중국 대륙을 한족이 지배하는 왕조가 들어설 때, 상당히 폐쇄적이고 유교적 도학 적치를 강조하곤 했었다. (대표적으로 명나라와 송나라, 한나라) 이에 반해 이민족 국가가 들어설 때에는 유교를 중시하되, 다양한 사상을 포용하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당나라가 도교와 불교에 관대했다는 점) 명이 멸망하고 들어선 청나라 역시 만주족, 이민족의 국가이므로, 이전 왕조인 명에 비해 사상적으로 훨씬 더 자유로운 분위기가 사회에 만연했다. 따라서 이 시대의 저술 《채근담》과 《유몽영》은 유, 불, 선 3가지 사상이 절묘하게 녹아있게 된다.

 

이러한 자유분방한 학풍은, 현실과 이상을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 유, 불, 선 세 가지 사상을 절충하는 중용적 성격은, 현실과 이상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 너무 지나치게 현실적이지도, 너무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이지도 않는, 현실을 고려한 이상주의를 추구하게 되는데, 《채근담》과 《유몽영》 역시 이러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유몽영》은 탈세속을 아름답게 표현하되, 세속적 삶을 절대로 경하하지 않았다. 다음의 문구를 보면 알 수 있다.

 

'고상한 얘기를 하며 산림에 묻힌 자는 시정과 조정 얘기만 나오면 문뜩 마뜩해하지 않으며 입을 다문다. 사정이 그렇다면 《사기》와 《한서》 등의 책들도 모두 없애고 읽지 말아야 할 것이다. 대개 이런 책에는 거의 옛날 시정과 조정에 관한 얘기들뿐이기 때문이다.'

 

정곡을 찌르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산림에 묻혔으면 아예 조정일이나 사회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끊을 것이지, 왜 이전 시대에 기록된 '정치'나 '사회'의 담론을 보느냐?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이런 부분에서 저자는 은거하는 것은 뭐라 하지 않지만, 세속의 일을 절대로 등한시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런 대목에서 《유몽영》은 절대로 탈세속의 가치를 우위에 두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유몽영》은 앞서, 일상생활을 많이 반영한 잠언서라고 했다. 따라서 이 책을 읽다 보면 당대의 사회생활에 대해서 유추해 볼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은데, 한 가지 눈에 들어오는 점은 《수호전》에 대한 인용이 많은 점이다.  책에서는 《수호전》에 대한 인용이 굉장히 많이 나왔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저자 장조는 《수호전》을 매우 좋아했다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청대 사회에서 《수호전》은 굉장히 많이 인용되고 보급된 책이라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지금 우리 사회로 말할 것 같으면 《삼국지연의》 급의 책이 아닐까 싶다.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정치나 경제 문제를 이야기할 때, 혹은 남자들이 술자리에서 흔하게 인용되는 책으로는 《삼국지연의》가 많으니, 《수호전》은 청 사회에서 이와 비슷한 위상이 아닐까 싶다.

 

'주사위 점수로 벼슬이 오르내리는 승관도 놀이는 덕을 중시하고, 축재를 꺼린다. 어찌하여 사람들은 일단 벼슬길에 오르기만 하면 문득 이와 반대로 한단 말인가?'

 

이 대목을 보고, 청대 사회에서 유행했던 놀이에 대해서도 엿볼 수 있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부루마블' 과 같은 보드게임인데, 이 당시에는 벼슬 이름을 가지고 주사위를 던지고 논 놀이 같다. 여담이지만 이순신에 대한 책을 보며 비슷한 대목을 발견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관작을 가지고 주사위 놀이를 한 것이 있는데, 이 놀이를 만든 사람이 조선 태종의 재상 하륜이다. 하륜은 고관대작들에게 관직 이름을 외우게 하기 위해 벼슬 이름을 두고 주사위 놀이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재미있는 점은 이순신 장군 역시도 이 놀이를 군중에서 병사들과 즐겼다고 한다. 청대에서도 비슷한 류의 게임이 성행했던 것 같다. 사실 지금도 '호텔왕 게임'이나 '부루마블' 등등의 룰이 비슷하지 않은가? 청대와 조선에 유행했던 주사위 게임도, 아마 관직 이름의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한 룰의 게임이 아닐까도 생각했었다.  

 

책의 가장 큰 축으로는, '꽃을 포함한 식물' , '미인' , '술과 산수' , '독서' , '처세' 등등이 있다. 앞선 꽃과 미인 술과 산수는 풍류적인 도가적 이미지가 생각나고, 독서는 호학적인 유가적 이미지가 생각난다. 책이라는 것은 아무리 거리를 둔다 하더라도 저자와 긴밀한 관련을 맺기 마련인데, 그런 부분에서 저자인 장조는 꽃과 풍류를 즐기며, 미녀를 좋아했고, 술을 좋아했으며, 특히 독서를 좋아했던 것으로 보인다. 책의 격언 중 상당수는 독서에 대한 자세와 방향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독서법에 대한 이야기도 상당히 많이 있다. 경전과 사서를 읽는 법에서부터, 책을 구매할 때는 게걸스러워도 된다. 사는 것보다 읽고 이해하며 뜻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등등 여러 가지 독서에 대한 자세도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게 뛰어나고 아름다운 문재(文才)를 지닌 장조였지만, 그의 일생은 다소 불행했다. 입신을 꿈꾸며, 과거 준비를 한 그였지만, 형식적인 과거 틀에 맞는 글을 짓는 것에 거부감을 느껴 끝내 과거에 합격하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책에는 은연중에 과거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만연했다.

 

'글로 명성을 떨치는 문명(文名)은 급제, 검소하고 절박한 행보로 덕성을 닦는 검덕은 재화, 맑은 행보로 한가한 삶을 사는 청한은 장수(長壽)에 견줄만하다.'

 

'차라리 소인의 욕설 대상이 될지언정 군자의 멸시 대상이 돼서는 안되고, 틀에 박힌 과거 시험관의 배척 대상이 되어 낙방할지언정 여러 선배 명사들이 알아주지 않는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위의 대목에서 저자 장조의 과거시험에 대한 생각을 볼 수 있다. 결국 《유몽영》은 급제하지 못한 장조의 문명(文名)을 상징한다고 보면 되겠다. 비록 살아생전에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훗날 임어당과 같은 문필가가 《유몽영》을 높이 샀으니, 죽은 장조는 현세의 아픔을 위안 받지 않을까도 싶다.

 

더불어 저자인 장조는 '달'을 굉장히 사랑했다. 《유몽영》 책에서 달에 대해 굉장히 긍정적으로, 아름답게 서술했는데, 관련 대목을 옮겨와본다.

 

'달도 햇빛을 반사해 그림자를 만든다. 천공에서 만들어지는 달의 그림자는 햇빛을 받아들인 결과이고, 밤에 그림자가 만들어지는 것은 달이 햇빛을 받아 땅에 베푼 결과이다.'

 

이 외에도 달을 묘사하며 아름다움을 칭송한 구절들이 많지만, 특히 이 대목은 받아들이는 달과, 베풀어내는 달의 모습을 묘사하며, 삶의 태도를 은연중에 비유하고 있다.

 

《유몽영》의 본문과 문구가 다소 조곤하고, 여성스럽다면, 역자의 주석은 사뭇 현실적이고 강한 남성적 필력을 자랑하고 있다. 역자인 신동준은 책의 해설에서 자신의 지식을 가감 없이 이야기하고 있으며, 제자백가서를 섭렵하고, 조선왕조사를 공부한 탓에, 책의 주석에서 비슷한 사례와 문구들을 풍부하게 풀어내고 있었다. 저자의 시각은 대체적으로 현실주의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힘과 힘의 논리에서 고전을 풀이하고 있는데, 뭐랄까 조금 자의적인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유몽영》이라는 책을 현실론적으로 풀이하는 시각이 돋보인 부분도 있었다.

 

모쪼록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잠언서지만, 격조 높은 문학성을 겸비했으며, 너무 딱딱하고 교화적인 내용을 드러내기보단, 중간중간 꽃과 술, 미인과 달, 산수에 대한 부분도 이야기하며 쉬어가며 이야기하고 있다. 교훈적인 이야기도 많으며, 독서에 대한 문구에서 내 독서법을 돌아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강하고 남성적인 필력이 아니라, 여성적이면서 섬세한 필력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책은 다른 고전들, 잠언서들에 비해 여유로운 분위기가 흐른다. '느림의 미학' 색다른 감동이다. 원래 잠언서는 빨리 읽는 책이 아니다. 책의 여유로운 분위기처럼, 느리게 그리고 깊이 생각하며 읽는 장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가까이하며 때때로 마음의 여유를 견지하고 싶다. 알지 못 한 책에서 받는 감동, 이것이 바로 새로운 고전을 읽는 맛이다. 임어당이 극찬할 만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