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룡의 눈으로 세상을 읽다 - 완역 제갈량문집
제갈량 지음, 장주 엮음, 조희천 옮김 / 신원문화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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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사람을 읽어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 사람을 평가해 놓은 역사서? 후대 사람들이 고증해 놓은 평전? 물론 다 참고할 만 하다. 나는 관심 있는 위인을 만날 때에는 현대적으로 해석된 평전과 역사적인 기록을 검토해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위인이 남긴 글을 살펴본다. 그 사람이 쓴 글이라는 부분은 그 사람 모든 면을 나타내주진 않는다. 글이라는 것은 때론 저자를 포장하거나 합리화하기 위해 지어질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의 마음을 진솔하게 표현하기 위해 작성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가 남긴 글만으로 저자를 알아낼 수는 없지만, 종합적인 사료를 통해 저자의 글을 판단해 볼 수는 있지 않나 싶다. 그래서 글이라는 것은 중요하다. 어쨌든 그 저자가 스스로 남긴 발자취이기 때문에,

 

제갈량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세간의 평을 보면 제갈량에 대해서 넷상으로 갑론을박 논쟁을 하는 경우가 많다. 제갈량의 칭송하는 논객도 있고 제갈량은 거품이라고 비판하는 논객도 있다. 그런 두 입장은 서로 간에 의미 없는 논쟁만을 일삼고, 스스로의 주장만을 고집하고 있다. 그런 소모적 논쟁보다는 차라리 제갈량이 쓴 글을 읽고 역으로 판단해 보는 것이 좋지 않겠나 싶다.

 

이 책은 청대에 장주가 편집한 <제갈무후문집>을 기초로 하여, 현대까지 내려오는 모든 제갈량의 글들을 완역한 책이다. 완역뿐만이 아니라 상세한 주석과 상세한 배경 설명이 일품인 책으로, 삼국지에 대해서 다소 서사적 흐름이 약한 사람이라도 쉽게 볼 수 있지 않나 싶다. 책은 굉장히 친절하게 서술됐다. 물론, 제갈량에 대해서 아예 지식이 없는 사람이 이 책을 보기엔 무리다. 대략적인 삼국지에 대한 흐름 정도만 알아도 이 책을 보는데 지장이 없다고 생각된다.

 

사실 제갈량은 승상 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글을 많이 썼던 것으로 유추된다. 그는 긴 병서를 남겼고, 완벽주의자인 그가 병서뿐만이 아니라 치국에 대한 이야기나 개인 수양에 대한 이야기 역시도 남겼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모두가 유실됐고 여러 책들에 분산된 제갈량의 글들을 모두 모아서 편찬한 책이 이 책의 원본이다. 사료가 많지 않고 여러 인용이 많은 관계로 이 책에는 위작이 많이 내포되어 있다.

 

구성은 4권으로 구성됐는데, 1권의 내용은 제갈량의 개인적인 서신을 담았고 2권은 제갈량이 작성한 국가 공문서와 행정 문서 등을 담았다. 3권은 치국에 관한 저서인 <편의십육책>을 4권은 병법서인 <장원>이 담겨있다. 오해는 하지 말자, 책은 한 권인데, 장별로 나눈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옛날 사람들의 기준으로는 한 책이 지금보다 더 얇을 수밖에 없어서 명칭이 권으로 나뉜 거지 지금 출판된 책은 1권짜리로 저 4개의 글들이 모두 수록되어있다. (쉽게 말해 1권짜리 책이고 4챕터로 구성됐다고 보면 된다. )

 

<편의십육책>과 <장원>은 사실 위작 시비가 분분한 책이다. <편의십육책>은 대체로 나라를 다스리는 치국에 대한 내용이 전반부에 있고 후반부엔 군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장원>은 역대 병서들과 별다른 차이는 없으나, 눈여겨볼 부분은 뒷부분에 이민족에 대한 것을 다뤘는데, 우리나라를 지칭하는 동이족도 포함됐다. 그것 외에는 특출난 부분은 없었다.

 

즉 서신과 공문서인 1,2권이 제갈량에 모습을 잘 살펴볼 수 있는 부분인데, 글을 보고 느낀 점을 요약하면 제갈량은 완벽주의자였다. 그리고 제갈량이 탄핵한 이들을 봤을 때, 그 역시도 정적 싸움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부분은 제갈량 역시도 권력 싸움을 행했다는 사실적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서신을 가장 많이 보낸 상대는 아무래도 오나라에 종군하고 있는 제갈근이다. 국가는 떨어져 있더라도 우애가 깊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며, 아들과 외조카를 훈계하는 글이 3편이 남아있는데 이것을 통해 엄한 아버지의 모습도 연상됐다.

 

더불어 원리원칙 주의자라는 부분도 보였다. 법정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법정이 너무 법이 엄격하니 좀 느슨하게 하자고 편지를 보냈는데, 제갈량이 초강력 하게 그럴 수 없다고 개국 초가 법제를 다스리는데 중점을 둬야 한다는 부분에서 제갈량의 엄격한 법제 사상도 볼 수 있었다.

 

완벽주의자의 관점으로 봤을 때, 제갈량의 공문 중 재미있는 것은 병사들이 쓰는 무기 도끼에 대한 제작법까지도 일일이 다 하교하고 지시를 했다. 제갈량이 죽었던 것은 과로사인 이유가 크다. 작은 일과 큰일을 모두 도맡아서 한 그였는데, 그런 부분이 책에서도 보였다. 목우와 유마에 대한 설계 글도 있었고, 운송에 대한 이야기 등,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작은 일까지 그의 손으로 도맡아서 처리됐다는 것을 느꼈다. 이러니 부정부패가 아무래도 적을 수밖에 없었겠지만 개인 스스로는 굉장히 피곤했을 것이다.

 

엽기적인 부분은 선제(유비)가 죽기 전 유선에게 내린 교지가 있는데, 여기서 웃지 못할 이야기가 나온다. 제갈량이 공무를 보면서도 <육도>, <관자>, <한비자>, <신자>를 유선을 위해, 필사를 했다고 한다. 그래 <육도>와 <신자>까지는 이해한다. 그러나 <한비자>와 <관자>는 분량이 엄청난 고전이다. 특히나 제자서 중 <한비자>는 쪽수와 분량으로 치면 랭킹 1위에 맞먹는 분량을 지니고 <관자>도 마찬가지다. 공무 보기도 바쁜 와중에 이런 필사까지 했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초인적인 멘탈을 지니고 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그의 국가를 위한 애국심과 나라를 위한 충정이 이와 같았고, 성실한 부분도 볼 수 있었다.

 

 재미있는 부분은 조식(조자건, 조조의 3남) 과의 서신 설전도 있는데, 조식은 한고조는 어리석고 신하들이 뛰어났으며, 광무제는 군주가 능력이 뛰어나고 신하들이 한고조 대의 신하에는 미치지 못했다고 주장했는데 제갈량이 이에 대해 반박한 글이 있었다. 쉽게 말하면 한고조는 신하의 치적을 드러내는 스타일이고 광무제는 그런 스타일의 군주가 아닌 스포트라이트를 자기가 다 받는 스타일이다. 광무제를 보필한 신하가 한고조의 신하보다 못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라는 논지를 밝혔는데, 상대적으로 나도 제갈량의 의견이 맞지 않나 싶었다.

 

학술적으로는 제자서들의 논지를 조목 조목 비판한 논제자서가 있으며, <음부경>에 주석을 단 부분도 있는데, 논제자는 모르겠지만, <음부경>의 주석은 솔직히 위서일 가능성도 보였다. 아무튼 이런 모습으로 볼 때 제갈량 역시 다른 저술가와 마찬가지로 선대의 고전에 주석 작업도 하고 학술적 글도 쓰는 문인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형인 제갈근과의 서신에서는, 나라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있으며, 자식에 대한 이야기도 주고받았다. 제갈량은 제갈근에게 자신의 아들이 재량은 있지만, 너무 일찍 숙성하여 (교만하여) 뜻을 이루지 못할까 봐 걱정한다는 글을 남겼는데 이런 부분에서 자식 걱정의 아버지의 마음은 영웅도 한결같음을 확인했다.

 

더불어 우리가 잘 아는 육손에게도 남긴 서신이 있는데, 육손을 두고 족하라고 표현하며 친근함을 내세우기도 했으며, 손권을 비롯한 오나라 대신들과도 서신을 주고받은 것이 있었다. 사마의에게 답하는 글도 있는데, 별다른 것은 없고 친구인 맹공 위에게 자신의 안부를 전해달라는 짧은 글 밖에 없었다. 답하는 글이라는 것은 서신을 사마의가 먼저 썼다는 이야기인데, 역사의 라이벌끼리 서신 교환을 했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다.

 

책의 가장 백미는 자식에게 남긴 짧은 편지다.

 

아들인 제갈첨은 이런 아버지의 교육에 힘입어 위나라 군사들과 싸우다 명예롭게 죽으니, 그 아버지의 그 아들로 대를 이은 충성의 피가 촉한을 적셨다고 할 수밖에 없다.

 

책은 아주 상세하며, 고증에 대한 부분도 놓치지 않고 잘 서술하고 있다. 각주에도 충실하며, 설명도 충실하고, 책도 양장본이라, 소장 가치가 있었다. 특히나 제갈량의 글을 통해 많은 의문을 해소할 수 있었으며, 제갈량의 내면을 알아내는데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첫 번째 글은 아들에게 훈계한 글의 전문이고 두 번째 글은 외조카에게 훈계한 글의 전문이다. 명문이라서 두고두고 새겨들을 만한 글이다. 우리가 신선으로 알고 있는 제갈량은 이런 조언을 했던 한 아버지, 한 삼촌, 한 인간이었다.

 

 

"대저 군자가 행하는 바는 고요한 마음으로 심신을 수양하고 소박함으로 덕행을 도야하는 것이다. 욕심을 비우고 마음을 깨끗이 해야 뜻을 이룰 수 있으며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해야 원대한 포부를 이룰 수 있다. 학문에서는 마음이 편안해야 하고, 배우지 않고서는 많은 재능을 가질 수 없으며, 포부가 없이는 학문을 이룰 수 없다. 방종하면 정신을 분발시킬 수 없고 조급하면 심성을 수양할 수 없다. 세월을 따라 나이를 먹게 되고 의지는 세월가 더불어 사라져가니 마침내 정력이 쇠하고 학문도 이루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세상에 용납되지 못하고 슬픔 속에서 빈궁한 가문이나 지켜야 할 것이니 그때 후회한들 어이할 것이냐!"

 

 

"대저 뜻이란 높고도 원대해야 하며, 선현들을 양모하여 사사로운 정과 사악한 욕심을 끊고 의심과 고집을 버려서 성현들의 뜻이 자신의 몸에서 뚜렷이 구현되도록 하고 진지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환경에 잘 순응하고 번잡하고 자질구레한 일에서 벗어나야 하며 널리 남에게 물을 줄 알고 원망과 회한을 삭일 줄 알아야 한다. 비록 잠시 벼슬을 하지 못하여 현달하지 못한들 고아한 정취에 무슨 손색이 있으며 성공하지 못할까 봐 근심할 것이 무엇이랴. 만약 뜻이 단단하지 못하고 의기가 강개하지 못하여 하는일 없이 평범하게 세속에나 빠져 있거나 사사로운 정에 얽매여 있다면 영원히 평범한 세속에 매몰될 수도 있으며 미천함을 모면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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