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 -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현자
김상근 지음 / 21세기북스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양의 문제적 정치사 상가 마키아벨리를 조망한 평전이다. <군주론>의 저자로 유명한 마키아벨리는 내게 있어서 고등학교 때부터 관심을 끌었던 인물이다. 그때는 <군주론>에 심취하여서 기숙사에 두고 항상 애독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군주론>을 진지하게 독서하기보단, <군주론>이라는 어감이 주는 위엄과 포스에 압도되어, 그냥 겉멋으로 글만 읽어내려 가지 않았나 싶다. 진심으로 마키아벨리에 대해 생각하며 독서한 것은 20대에 들어서였다.

 

시중엔 마키아벨리의 평전이 많이 나와있다. 특히나 <로마인 이야기> 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 역시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라는 평전을 썼었다. 그러나 이 책은 사실 좀 편향적인 책이고, 무조건적인 마키아벨리 칭송적인 책이라 선택하지 않았다. 일본인들이 내세우는 실리주의 관점으로 볼 때 분명 마키아벨리는 하나의 롤모델로 제시하기 좋으니까, 서구인들이 쓴 평전도 있었다. 그러다 르네상스 개론서를 많이 펴 낸 김상근 교수가 마키아벨리에 대한 평전을 발견했고 선택했다.

 

책은 양장본이고 굉장히 퀄리티 있게 잘 만들었다. 사진 자료가 컬러로 첨부되어서 사실 평전이라기보단 여행서와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편집은 좋았던 것 같다. 마키아벨리는 서구 사회에서 숱한 오해를 받아왔던 위인이다. 특히나 그의 저작 <군주론>은 시대의 금서로 지정되어 사람들의 매도를 당했다. 그러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겉으로는 <군주론>을 비난했지만 침실에서 모셔놓고 애독을 할 정도로 권력에 대해 뛰어난 성찰을 보여준 책이었다.

 

<군주론>은 <손자병법>과 함께 내가 가장 많이 애독했던 책이다. 그런데 이 <군주론>을 보기 위해서는 마키아벨리의 시대적인 부분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군주론>은 마키아벨리가 헌정하는 군주에게, 어느 정도 자신의 시대적 흐름을 이해한다는 가정 하에 쓴 책이라, 시대적 상황을 모른다면 책이 재미가 없고 따분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 선대 역사에 대한 지식 등을 섞어서 인용하는 책이라서 가벼운 책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다른 형이상학적 철학서들과 같이 복잡한 서술을 보이진 않는다. 시대적 배경과 어느 정도의 로마와 그리스의 역사를 안다면, 편하게 볼 수 있는 책이 <군주론> 이다.

 

그래서 <군주론>을 이해하려면 마키아벨리의 시대와 인생을 이해하는 쪽이 편하다. 왜냐하면 마키아벨리는 숱한 역사서의 법칙으로만 책을 쓴 것이 아닌 그 시대의 영웅들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대해 본 경험론으로도 책을 썼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격변의 시대는 난세의 시대였다. 난세는 영웅을 부르는 법이고, 여러 영웅들이 등장하고 몰락했다. 마키아벨리는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그들을 면밀하게 관찰했다. 그 영웅들, 시보나롤라, 체사레 보르자를 비롯한 프랑스의 루이 12세, 율리우스 2세 등등 여러 군주들의 행동들을 면밀히 관찰했다.

 

더불어 그런 군주들을 수행하거나 관찰하면서, 고전 역시도 빼놓지 않고 탐독했다. 그런 인문적 성찰과 더불어 경험이 숙성된 책이 바로 <군주론>, <로마사논고>, <전술론> 이라는 고전들이다. 각각 정치, 역사, 군사에 대한 저술이다. 이 책 3권은 마키아벨리의 3대 저서로 불리는 책이다.

 

흔히 마키아벨리를 이야기할 때 따라붙는 수식어인, 권력주의, 기회주의자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다. 확실히 그의 정치 철학은 기존의 서양의 정치 철학과 다르다. 그는 교조화된 기독교에서 강요하는 도덕적인 부분으로 정치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가 살면서,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정치의 속성은 악한 부분이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의 정치론을 뒤집어서 생각했다. 군주는 선한 사람보다는 악한 사람이 되는 게 좋고, 용서하여 후환이 되는 적은 아예 깡그리 박살내버리는 것이 좋다. 군주는 여우의 머리와 사자의 심장을 가지는 것이 좋다.라는 다소 듣기 거북한 현실적인 논의들을 주장하며 <군주론>을 집필한다.

 

이런 주장은 확실히 기존의 기독교적 교리와는 상반되는 논의였다. 당시 기독교는 지동설을 천동설로 주장하여도 진실로 인정받을 만큼 권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기독교에서는 인간을 선한 존재로 바라보고 주장했다. 마키아벨리는 시대적인 흐름을 거부하고 오로지 현실적인 가치로서의 정치학을 이끌어냈다.

 

동양도 비슷한 전례가 있다. 유가와 법가의 대립이 그것이다. 법가와 마키아벨리즘은 일란성 쌍둥이만큼이나 닮은 사상이다. 지독하게 현실적인 사상, 성악설로 바라보는 인간 본성, 군주는 피도 눈물도 없어야 한다는 부분 등. 백가전쟁, 사상 전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를 한 것은 시황제의 법가사상이다. 현실적으로 이긴 것은 법가에 기초로 한 시황제였다. 유가의 승리는 후대에 한족들이 정립한 사상일 뿐, 현실적인 사회에서 이긴 사상은 법가다.

 

마키아벨리 역시 그것을 통찰했다. 기독교의 교조화된 인간적 해석으로부터, 선대의 전통 키케로의 <의무론> 이래로 내려오던 서구의 인간 도덕을 그는 거부했다. 동양과 지독하게 닮았다. 우리 동양 역시도 유가는 유학으로 발전되고, 유교!로 종교화되며 학문적 사상에 종교적 색채를 곁들여 반발할 수 없는 권위를 내리고 그것이 절대적인 사상인 것 마냥, 숭상했다.

 

현대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다.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정당화된 사회고, 그러한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 속에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긍정이 내포되어 있다. 서구 사회는 이를 빨리 간파하고 수용하여서 발전하였고, 동양은 그러지 못했었다. 결국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사회의 모습은 서구화된 사회다. 우리는 분명 마키아벨리보다 더 먼저 현실론적 정치 이론을 주장했다. 법가가 그것이다. 마키아벨리와 한비자의 시대적인 부분을 본다면 대략 2000년이나 앞서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법가에 대해서 조명하지 못하고 금기만 했다. 원조라고 해서 우리가 더 우월하다고 주장하면 안된다. 동양은 오히려 이런 부분에서 부끄러워해야 한다.

 

서구 사회를 보라. 물론 마키아벨리에 대해서, 숱한 비난과 비판이 있었지만, 그들은 그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발전시키고 재해석하고 비판하며, 발전해나갔다.

 

마키아벨리는 그래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구 사회의 정치 패러다임을 가장 먼저 다르게 인식하고 바꾼 선각자. 그것이 바로 마키아벨리다.

 

책은 마키아벨리를 약자의 수호 성자로 해석하는데,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마키아벨리는 약자였다는 사실만큼은 맞는 사실이다. 그는 정부로부터 숱한 고문을 당했다. 물론 모함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꿋꿋하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할 만큼 강단 있는 남자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실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공무에 최선을 다하고 피렌체를 위해 그는 목숨을 바쳐서 일했던 사람이다.

 

마키아벨리와 같은 권모술수에 능한 저자들은 생각 외로 인생 자체는 성실하고 교과서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이 많다. 한비가 그러했고 마키아벨리가 그러했다. 한비와 마키아벨리는 사상도 닮아 있으면서, 정치 철학도 닮았고, 인생 자체도 많이 닮았다. 약자였던 그들은 결국 군주를 위해 책을 저술하고 인정받기 원하지만 세상은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들은 의외로 굉장히 성실한 모습을 보이고, 더불어 국가에 대해 충성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한비가 <한비자>를 지은 이유는 군주가 자신의 정치이론을 바탕으로 전국시대를 끝내주길 원하는 간절한 순수함으로 글을 썼다. 마찬가지로 마키아벨리도 <군주론>을 자신의 이탈리아 대륙의 통일을 갈망하며, 강대한 군주를 고대하며 쓴 책이었다. 둘의 저서가 비록 좀 모략적이고 가벼워 보이고 이기적인 부분이 보여서 저자들 역시 약아빠진 인간으로 보기 쉬운데 그들은 지나치게 성실하고 충성스러운 한 평범한 지식인이었다.

 

그들은 지나치게 순수했다. 그래서 그런 권력의 본질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세상은 그런 그들의 순수함을 이해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탄압했다. 깨우친 지식인이나 선각자들은 사실 불행한 인생을 사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가치는 설사 옳더라도, 기존 사회의 가치와 부합되지 않는다면 매도당한다. 소크라테스가 그랬고 플라톤도 그러했다. 공자가 그랬고 맹자가 그랬다. 마키아벨리가 그랬고 한비자가 그랬다. 어떻게 보면 선각자라는 사람들은 비운의 운명을 타고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들의 시대를 넘어선 깨우침과 그들의 말이 써진 고전 덕분에 우리 사회는 한층 더 발전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플라톤과 공자는 결국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것을 저술로 남긴다. 마키아벨리도 그랬다. 파직당하고 무직이 된 그는 매일 4시간 동안 관복을 입고 서재에 가서 철학서들을 탐독한다. 어찌 보면 참 안타까운 부분이다. 그리고 리비우스의 로마사에 논고를 달아 <로마사논고>를 저술한다. 자신의 지혜와 지식을 누군가는 알아주길 바라면서 그들은 글을 썼다. 그래서 그들의 글은 고전으로 격상됐다.

 

위인들과 고전을 남긴 저자들의 인생은 치열하다. 마키아벨리는 지독하게 현실적이고, 악마 같은 주장을 했다. 그리고 그것을 책으로 남겼다. 그것은 강대국에 밟히고 있는 이탈리아 반도에 대해서 약자인 그가 토로한 절규였다. <군주론>으로 강력한 군주를 고대하며, 외세에 휘둘리고 찢어진 이탈리아의 반도를 통일하는 군주가 나오길 고대했다. <전술론>을 저술하여 용병에 의지하지 않고 자주국방을 하자는 논의도 토로했다. <로마사논고>를 통해 마지막 남은 희망의 끊을 놓지 않으며 청년들에게 역사를 교훈으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길 주장했다. 내가 책을 보며 느낀 것은 그렇게 노력하던 한 불우한 지식인의 인생이었다. 힘없는 지식인의 비애와 국가마저 약하고 분열된 부분을 토로하는 부분. 우리나라의 여러 모습과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인생은 불운했지만, 그 스스로는 굉장히 해학적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한 것 같다. 말년에 보이는 저술 희극 등은 마키아벨리가 불우한 인생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해쳐 나가는가에 대한 자세가 보였다. 더불어 책을 읽다 보면, 자신의 친구에게 매춘녀와의 하룻밤 등을 소상하게 희극적으로 밝히는 부분에서 좀... 가벼운 면모도 보였다. 아마도 웃음이 많은, 어쩌면 많이 웃으려고 노력했던 사람일지도 모를 일이다.

 

<군주론>이 각광받고 있고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따라서 너도 나도 <군주론>을 보는데 그 책을 보기 전에 마키아벨리의 평전을 읽기를 권해본다. 비단 이 책뿐만이 아니라 다른 책이더라도,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적절한 분량에 컬러풀한 사진 배경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책의 내용도 자의적인 해석이 있긴 했지만, 괜찮았던 평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