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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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일을 저자는 해냈다. 이순신이라는 성웅을, 이순신이라는 강인함의 상징의 영웅을 실존적 고뇌에 찬 인물로 묘사할 생각을 그 누구도 하지 못 했다.
 
우리들의 이순신은 그래야만 한다. 외롭고 힘든 일이 있어도, 꿋꿋하게 큰 칼에 버텨내며, 의지와 용기를 북돋아 줘야 하는 존재 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강해야만 했고, 그래서 그는 현세의 우리들에게 약한 모습은 보여줄 수 없었다.
 
칼의 노래의 이순신은 그렇지 않았다. 길이 보이지 않는 전쟁터에서 절망했고 슬퍼했고, 고뇌했다. 충절, 용기, 의지, 전략, 도덕 등등 그에게 수식되는 용어는 많았다. 그런 그여서, 그를 볼 때마다 한편으로는 비인간적이라는, 완벽에 가까운 인간으로 생각됐다. 그래서 나는 이순신이 솔직하게 싫었다.
 
저자는 그런 '영웅주의' 이순신을 걷어내고, 이순신의 고뇌와 이순신의 절망, 이순신의 울음을 그려냈다. 소설 속 이순신은 절망하고, 성욕을 느끼며 여인을 품었으며, 답이 없는 상황 속에서 답을 찾기보단 죽음을 찾고 있었다. 절망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을 발견하기보단, 절망 속에서 어차피 죽어야 할 운명임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무(武)가 스러져 죽을 곳을 찾고 있었다. 그것은 이순신의 내면에 있는 칼의 울음이었고, 칼의 울림이었다. 이겨서 살아야겠다는 생의 의지보다, 이 전쟁 속에서 나의 죽을 곳을 찾아나갔다.
 
그는 절망한다. 자신의 주군에게 종묘사직의 상징성을 원하는 주군에게 그 주군의 장난감을 바치지 못한 자신의 무력감에 절망했다. 백성들의 고뇌를 보며 지켜주지 못한 무력감 속에서, 그는 또다시 절망했다. 아버지로서, 셋째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에 울었으며,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찾아뵙지 못한 지난날을 회상하며 슬퍼했다.
 
백성은 통곡하고 있었으며, 임금도 울었다. 그리고 시대도 울었다. 백성은 수탈당한 비애에 못 이 겨울었고, 임금은 사직과 종묘의 상징적 권위의 실추 때문에 울고 있었다. 백성의 울음은 백성의 칼이었다. 임금의 울음 역시 정치적인 칼로 묘사되고 있었다. 그 사이에 이순신이 있었다. 방황하는 이순신의 내면 그러나 그러한 절망을 느낄 사이도 없이, 싸움에 대비해야만 했던 한 무장의 비애가 잘 녹여있었다.  
 
영화 '명량'에서 보여준 그러한 강인한 이순신의 모습은 '없다.' 명량 대전을 앞두고 제장 회의에서 그는 전략을 구사하기보단... 제장들에게 명령한다. '일자진으로 맞이한다.' 12척의 배를 가지고 있는 그가 고뇌를 하고 전략을 짜 내어 제장들의 두려움을 희망으로 바꾸지 않았다.
 
다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그뿐이다. 그 방법 뿐이다.'
 
여기에 이순신에겐
'만약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 말이다.' 라는 모습은 없었다.
 
 
빨려 들어갈 듯한 배경 묘사와, 다소 현학의 미가 돋보이는 문체였지만, 찰랑거림을 유지하고 있었다. 백의종군을 끝내고 명량과 노량에서 죽기까지의 그 시기, 이순신의 내면을 그린 소설.
 
암울한 배경과 백성의 고된 모습, 그리고 끝끝내 이순신을 견제하면서 그에게 기대는 선조의 교지, 강인했던 이순신의 겉모습이 아닌, 흔들리는 이순신의 내면,
 
흔들리는 이순신, 그것은 성웅의 모습이 아닌, 우리 모두의 모습이었다. 김훈은 이 소설에서 이순신을 그렇게 피와 살이 있는 '인간적 고뇌'의 존재로 묘사했다.
 
나는 이 소설을 꽤 많이 읽었다. 학창 시절 이 소설을 보며 다소 어려웠던 문체에서 쉽게 공감을 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머리가 자라고 나서 읽었을 때는 굉장히 빨려 들어갈 듯 단숨에 읽어나갔다. 그리고 이번에 읽을 때는 천천히 이순신의 의식의 흐름에 조용히 몸을 맡기며 읽어나갔다.
 
그 시절 이순신이 어떤 심정이었을지는 후세 사람들, 아니 현세 사람들도 아무도 모른다. 다만 우리는 그가 남긴 <난중일기>에 이런저런 사료들을 통해 추측을 할 뿐이다. 그래서 이순신을 해석할 수 있는 여지는 다양해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이순신은 '만병통치약'과 같은 존재였다.
 
책은 소설이다. 따라서 각색이 있는 부분도 있지만, 나는 김훈의 '이순신'이 내가 알고 있는 성웅 '이순신' 보다 더 좋다.
 
흔들리며 절망하더라도, 끝내 길을 찾고, 왜적을 향해 칼을 겨누고, 끝내 자신이 찾던 죽음터에서 죽음을 맞이했던 이순신. 그러한 이순신에게서 나와 같은 따뜻한 피가 흐른다는 것을 느꼈으니까 그래서 난 이 소설이 좋다.
 
 
누가 감히 이순신을 이렇게, 묘사할 수 있겠는가,
 
저자의 용기와, 저자의 시각, 그리고 저자의 문체에, 깊이 존경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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