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음어 - 신역
여곤 / 명문당 / 1998년 6월
평점 :
품절


한 지인께서 <신음어>를 읽고 계셨었다. 나이가 어린 분이신데도 불구하고, 이 책을 알아낸 것 하며, 이 책을 진지하게 독서하시는 모습을 보며, 나는 느낀 바가 많았다. 그 옛날 나 역시도 이 책을 보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바르게 살고자 노력했던 결의가 떠올랐으니까,

그때의 결의로부터 과연 나는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는가라고 되묻는다면 역시 부끄러운 마음뿐이었다. 그래서 나 역시도 이 책을 다시 펴 보고 다시 읽었다.

신음이라는 것은, 고통스럽거나 힘들 때 내는 소리다. 사람이 몸이 아프거나, 힘들 때, 대표적으로 내는 것이 신음이다. 아 물론 성적 쾌락에 휩싸일 때도 신음을 내긴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신음은 그런 신음이 아니니... 논외로 하자.   저자는 왜 신음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신음의 말을 이렇게 격언으로 남길 수밖에 없었는가? 그것은 저자가 살고 있던 명나라가 도의의 타락, 국가 자체가 흔들리고 있고, 관리들은 착복에 힘쓰고 있는 사태를 보며, 여곤 스스로가 너무나도 부끄럽기도 했고, 아픈 나머지 남긴 글이었다.

여곤은 성실한 관료였고, 학문에도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는 선비였다. 따라서, 유학의 사서오경을 보며 이상 국가를 꿈꾸며, 성현의 말을 실천하려고 했으나, 그가 살던 시대에는 이미 썩을 대로 썩어서, 성현의 말을 실천할 수 없었다.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여곤의 모습은 바로 강도 높은 자기비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그는 세상이 썩은 것에 대해서, 고민하고 고뇌하다가 결국, 스스로의 허위와 허세로 관념을 이어나갔다. 그의 책 <신음어>는 비판력이 상당히 높은 책인데, 사회 비판도 비판이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따라서, 그의 사상은 기존의 유학적 사고인 정주학적 관점만을 대변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양명학적 관점을 대변하고 있지도 않은 독자적인 관점을 보이고 있었다. 물론 크게 보자면 실천 중심적인 양명학적 사고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유학자이면서 기존 유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지 않았다.

여곤은 이 책에서 썩은 세상에서 올바른 수양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더 나아가서, 관료는 어떻게 해야 힘든 백성들을 구제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쓰고 있다. 썩은 세상에서 여곤 스스로 본분을 다 해 선정을 배풀고 있으면서도, 고통스러워하는 세상으로부터 여곤은 스스로 '관료'라는 것이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다고 고뇌하고 고민했다. (서문에 그런 심정을 절절하게 썼다.)

그런 그가 신음하며 한 자 한자 적어나간 격언들이 바로 <신음어>라고 할 수 있겠다. 아포리즘적(짧은 격언이나 경구 등으로 함축성을 갖춘 압축적인 표현의 글) 구성을 가진 책 치고는 굉장히 쉽게 써진 책인데다, 문장 자체도 현학적이지 않은 일상용어로 자신의 생각을 책에서 전개하고 있었다.

사실 책에서 때론 너무 강도 높은 비판을 자신에게 내밀고 있어서, 사상적 모순점이 보이는 부분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고위 관료로서 시세에 물들지 않고, 백성의 민의에 편에 서서 이런 글을 남겼다는 것은 그가 다른 관료들과는 다른 선각자였다는 점을 볼 수 있겠다.

즉 그야말로 중국의 <목민심서>라고 볼 수 있겠다. <목민심서>는 대체적으로 행정적 실무적인 수령의 행동 방침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이 <신음어>는 그런 행정적 실무보다도, 공직자가 가져야 할 내면 수양에 대해서 더 중점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두 책 모두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공통적인 점은 '애민정신' 이 돋보이는 고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깐깐하고 대쪽같은 성격, 자신에게 숨 쉴 틈 없이 수양을 실천했던 여곤조차도, 종국에 가서는 <신음어>에 이렇게 토로한다.

 30년이란 세월 동안 노력했지만 거짓을 추방하지 못한 것이 괘씸하다.

 이른바 '거짓, 위선'이란 언행에만 한정된 일이 아니다. 본심으로 민중을 위해 노력했는데 마음속 어딘가에 '베풀었다'라는 기분이 잔존한다면 그것은 위선이다.

 본심에서 선을 위해한다 하더라도 그 선행을 남에게 '인정' 받고 싶어 한다면 그것은 위선이다.

 도리적으로 보아 충분히 득이 된 일이라 하더라도 지엽말단적인 점에서 남과 다투며 아직 만족하지 못한다면 이 또한 위선이다. 사회 정의를 목표로 하며 전심전력을 기울이면서도 아직 일정한 견해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면 이것도 위선이다. 낮에 하는 일은 모두 선한데 꿈속에 세계에서 도리에 안 맞는 판정을 내리거나 하면 이 또한 위선이다. 90%쯤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면서 외부에 대해서는 마치 완벽한 것처럼 행동하는 것도 위선이다. 이런 것들은 남들은 모르고 있는, 자기 자신만이 아는 위선의 부분이다. 그런 만큼 더욱 용서하기 어렵다.

 

나는 이런 여러 가지 위선을 내게서 제거하지 못한 인간이다.

 

  


솔직한 내면의 반성이 돋보이는 구절이다. 이런 반성의 여곤조차도, 위선을 제거하지 못했는데, 하물며 내면 수양을 하지 않는 현대인의 마음은 어떨까 싶다. 나부터도 되돌아보면, 물욕과 사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내면이 보이기 마련이니까, 마땅히 경계하고 반성을 해야 할 부분이다.

예로부터 '나에겐 엄격하게, 타인에겐 관대하게'라는 격언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행하는 것은 정 반대로 행하고 있다. 그런 부분에서 여곤의 진솔함이 묻어 있는 <신음어>는 우리 현대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생각한다.

백성의 아픈 삶을 보며, 스스로 괴로워하다, 그는 스스로부터 바꿔 나가자고 결심하고, 수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바뀌지 않았고, 그는 신음했다. 그 신음을 담은 책이 바로 <신음어>였다.

두고두고 옆에 두고 볼 책이다. 어렵지도 않으며, 책 내용들도 굉장히 좋은 내용이 많은 책이다. 특히나 공직에 계시거나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은, <목민심서>와 함께 필독서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나 역시도 여곤의 자기비판정신을 본받아, 내 내면을 청결하게 하도록 노력해야겠다. 훗날 또 다시 이 책을 봤을 때, 그때는 이번보다 덜 부끄러운 삶으로 회상되길 바라면서, 분발해야겠다.

책의 번역본은 자유문고와 지금 사진으로 보고 있는 명문당 두 개가 있다. 참고로 명문당 책은 편역이라고 한다. 자유문고 번역본은 완역인지 모르겠다. 나중에 자유문고에서 번역한 책을 사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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