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로파에디아 - 키루스의 교육
크세노폰 지음, 이은종 옮김 / 주영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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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철학의 첫 장을 연 사람은 바로 소크라테스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소크라테스는 글을 한 줄도 남기지 않았다. 그렇지만 소크라테스는 살아남았다. 바로 플라톤이라는 제자의 저술 덕분에, 우리는 선각자 소크라테스를 알게 됐으며, 소크라테스의 위대함을 알게 됐다. 그래서 플라톤의 여러 저술은 서양철학의 시초라고 할 만한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플라톤의 저서를 기점으로 철학사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사실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고찰한 것은 플라톤뿐 만이 아니다. 바로 소크라테스의 다른 제자 크세노폰도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책으로 남겼기 때문이다.

 

플라톤과 동시대를 살아간 크세노폰, 그 역시 소크라테스의 애제자였고, 스승에 대한 모습을 <회상>이라는 책으로 남겼으며, 플라톤의 대화편과 같은 제목인 <향연> 역시도 남겼다. 그뿐만 아니라, 크세노폰은 여러 저술을 남긴다. 군사학, 승마, 역사서(헬레니카), 법제, 경영론(농지에 대한) 등등 다방면적이고 실용적인 저술을 남긴다. 플라톤이 인식론과 형이상학적 주제를 가지고 철학을 발전시켰다면, 크세노폰의 글들은 그런 주제보다는 다소 형이하학적 고찰로 세상을 바라봤고 그런 시각으로 저술을 써 왔었다.

 

이 책도 그런 크세노폰의 저서 중 한 권이며, 가장 대표적인 고전으로 칭송받는 책이다.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이 책을 꼽아, '서양에서 최초의 리더십을 다룬 책'이라며 극찬을 했다고 한다.

 

책의 내용은 키루스 대제에 대한 전기라고 할 수 있다. 익숙하지 않은 인물인 키루스 대제는 페르시아 제국을 강건하게 만든 제왕이었으며, 그의 치적 덕분에 페르시아는 동방의 패자로 거듭날 수 있었다. 1897년 영국인 고고학자는 에사길라 터에서 이런 글귀를 발견했다.

 

'나는 키루스다. 세상의 왕, 위대한 왕, 강력한 왕, 바빌론의 왕, 수메르와 아카드의 왕, 세계만방의 왕, 얀산의 위대한 왕, 테이스페스의 증손자, 얀산의 위대한 왕 키루스의 손자, 얀산의 위대한 왕 캄비세스의 아들 키루스다.'

 

이 오만하고, 나르시시즘에 극에 다다른 글귀의 주인공은 키루스 대제였다. 그는 페르시아 왕국을 대제국으로 만든 위대한 왕이었다. 바빌론 지방을 정복하고 포로로 끌려온 유대인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냈던 관용이 있던 왕이었다. 그는 그리스 역사서들과 구약 성서에도 나올 정도로 명성이 자자한 군주였었고, 그가 있어서 페르시아가 제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크세노폰은 여기서, 페르시아의 위대한 군주를 고찰한다. 이 전기를 통해, 페르시아의 군주의 어린 시절부터 치적을 모두 검토하고 죽음과 결론에 이르기까지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키로파에디아>라는 책 제목은 우리말로 하자면 '키루스의 교육'이라고 한다. 제목에서 풍기는 것처럼, 크세노폰은 강력한 리더가 됐던 키루스의 원인에는 '교육'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책 제목과는 다르게, 어린 시절 교육에 대한 논의는 1권에만 그친다. 책은 총 8권으로 이뤄졌는데, 어린 시절과 교육에 대한 부분은 1권에만 국한되어 있다. 나머지 2권부터 8권까지는 키루스가 왕위에 올라 어떻게 리더십을 발휘하고 제국을 일궈내는지에 대한 부분이 그려져있다.

 

다만 재미있는 사실은 이 책에 나오는 키루스 대제는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지 않다. 이 부분은 크세노폰의 저술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크세노폰의 다른 저작 <아나바시스 - 페르시아 원정기>에서도 똑같은 패턴으로 등장한다. <아나바시스>는 크세노폰이 용병으로 갔다 되돌아온 자전적 회고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소위 지금 말하는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같은 성격의 책. 그 과정을 크세노폰은 사실적인 내용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다소 과장된 부분도 있었다. <키로파에디아>도 허구가 섞여 있다. 물론 이 허구의 관점은 지금 서양 역사에서 통사로 받아지고 있는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근거해서 평가한 것이다. 헤로도토스의 <역사> 역시 사실 좀 신빙성이 떨어지는 부분도 있는데 어쨌든 지금 학계에서는 <역사>에 나온 사실을 진실로 규정하고 있다. 혹여 <역사>가 거짓일 가능성, 그런 부분에서 본다면 어쩌면 <키로파에디아>에서 그리는 키루스 대제가 사실의 모습일 가능성도 있겠다.

 

일단 그런 면에서 보자면 <키로파에디아>는 역사서도 영웅의 전기도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완전한 소설도 아닌, 그야말로, 사실을 바탕으로 한 각색된 역사 소설이라고 규정할 수 있겠다.

 

플라톤의 책과 가장 대비되는 것이 크세노폰의 저술은 대체적으로 '리더십'과 '올바른 자질의 지도자'에 대한 고찰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많다. <아나바시스>에서도 그러한 부분이 나오며, 특히 이 <키로파에디아>는 직접적으로 키루스 대제를 통해 우리 한 번 올바른 리더십에 대해 생각해 보자고 저술 동기까지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어쨌든 서양에서는 이 두 가지 책을 리더십을 배울 사람들은 꼭 읽어야 하는 명저의 반열에 올려다 놓고 있다.

 

올바른 통치자에 대한 논고는 플라톤 역시도 자신의 저서에 정의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국가>를 꼽을 수 있겠는데, 다소 <국가>의 주제가 중구난방, 여러 부분을 고찰하고, 위정자의 대한 부분을 강하게 꼽기보다는, 철학에 대한 고찰, 인식론에 대한 부분, 영혼에 대한 부분 등등 여러 부분으로 주제가 나뉘어서 설명되고 있다면, 크세노폰의 책은 한 가지 주제에 입각하여서 일관되게 흘러가고 있었다.

 

사실 그리스 입장에서 보자면 페르시아는 닮고 싶지 않은 족속들이다. 정치체제도 다르고, 거기다 페르시아와 대규모 교전도 해 본 입장이기 때문에 굉장히 페르시아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이런 글을 쓰는 크세노폰도 많이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플라톤이 전제 군주를 옹호하는 듯한 철인정치를 이야기 한 것처럼, 크세노폰 역시도 민주정에 대해 회의적인 감정을 가졌을 법 하겠다. 아마 이 부분은 자신의 스승 소크라테스를 죽인 것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오점을 확인하지 않았을까 싶고, 그러한 대안으로 크세노폰 역시 옆 나라 페르시아 제국의 키루스에 대해 주목하지 않았을까 싶다. 실제로 크세노폰은 아테네에서 추방된다. 스파르타의 체제를 따르는 반동자라고 지목되어서 추방됐는데, 크세노폰이 스파르타 체제를 옹호하고 이상으로 뒀다는 점도, 잘 살펴보면 민주주의보다는 전제적인 통치에 더 옹호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겠다.

 

<키로파에디아>를 읽으며 느꼈던 점은 키루스 대왕은 다소 인자한 국왕이라는 거리가 멀었다. 냉정한 판단을 주로 하고, 올바른 명성에만 집착하지 않았다. 때론 냉혹하게 때론 비정한 모습도, 때론 부하들에게 모순적인 모습도 보이곤 했다. 동양으로 말하면 왕도와 패도를 적절하게 섞어서 사용하는 그런 군주였었다.

 

가장 뛰어난 부분은 군사적인 재능이 뛰어났던 점이다. 아무래도 고대의 왕들 중 명군들은 군사적인 계책이나 묘계에 뛰어났는데, 키루스 대제 역시도, 군사들의 심리를 잘 알고 전략과 전술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대부분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크세노폰은 주목했겠다. 수사학이 판치는, 소피스트들이 판치는 허세와 허영의 도시 아테네에서 실용보단 명분과 허영에 집착하는 민주정의 맹점을, 키루스의 인생을 통해 확인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는 아테네를 넘어 그리스 전역을 점령하여 강력한 제국으로 만들 수 있는 리더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키루스가 받은 교육 중 가장 인상에 깊은 것은, 부왕인 아버지께서 키루스에게, '부하보다 너는 더 인내하고 부하보다 너는 더 양보하는 마음으로 남 위에 서야 한다.'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공부뿐만 아니라 건강한 신체 활동 역시도 중시하였다. 가장 먼저 배우는 덕목은 지식이 아닌 '정의' 와 '자기절제' 능력이었다.

 

키루스는 말이 많았고 수다스러운 아이였지만, 나이가 들수록 과묵하고 말수가 없어졌다.

 

교육을 통해 키루스는 강압적인 충성보다 자발적인 충성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 고민 속에서 때론 냉혈적인 군주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때론 인자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무조건적인 인자함이나 무조건적인 냉혈한의 모습은 키루스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다.

 

크세노폰의 저작은 당시에 조망 받진 못 했어도, 숱한 사람들에게 영감을 줬다.

 

한니발을 이긴 명장,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이 책을 평생 가지고 소장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는 이 책을 통해, 키루스 대제를 모방하려고 애썼고, 닮으려고 애를 썼다. 그 결과 그는 위기의 로마를 구했었다. 자마에서 그는 한니발의 군대와 맞서, 승리하였고, 무한한 영광을 조국에 선사했었다. 그 스키피오의 업적 속에는 <키로파에디아>가 있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이 책을 언급한다. 올바른 군주가 되기 위해서는 이 책을 봐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저서에서 키루스 대제의 모습을 이상적인 군주의 모습으로 칭찬했다.

 

책은 다르지만 크세노폰의 <아나바시스>는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 원정을 감행할 때, 참고했던 도서였었다. 물론 알렉산더는 이 책을 지리서로 활용했다고 하지만, <아나바시스> 역시, 지도자에 대한 논의가 많은 책이라, 알렉산더는 그 부분들을 숙고했을 가능성도 있겠다.

 

거기다 후대에 몬테펠트로 공작이 '군주의 거울' (군주의 필독서)이라는 이름으로 6가지 책을 언급했다고 하는데, 그 중에 <키로파에디아>가 들어 있다. 나머지 책들은 다음과 같다. 투퀴디테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플루타르크의 <영웅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마키아벨리의 <카스트루초 카스트라카니의 생애>, 카스틸리오네의 <궁정론> 거의 대부분이 현실론적인 책들이 많다. 이 들 중, 가장 시대적으로 앞선 책이 <키로파에디아>다.

 

플라톤의 이상론적 군주와는 조금 다른 모습의 지도자이지만, 플라톤의 철인보다는 지극히 더 현실적인 모습의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지금 서구가 자행하고 있는 무조건적인 패권주의들도 생각했다. 기본적 방향은 키루스 대제와 같을지라도, 서구의 패권주의 안에는 자발적인 복종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힘과 힘으로의 강압적인 이해관계만이 남아 있다. 키루스 대제는 현실적인 군주였지만, 인정이 없는 군주는 아니었다. 책에서 온 백성들은 키루스 대제를 제왕 중의 제왕으로 묘사하고 진심으로 따르고 있었다. 그 모습과 지금 서구의 패권주의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었다.

 

어쨌든 서구에서 '리더의 덕목'을 다룬 책으로는 가장 오래된 책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올바른 군주에 대한 일반적인 이론을 정리한 책이라면, 이 책은 그 <군주론>에 걸맞는 적절한 예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두 책을 상호 보완적으로 읽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크세노폰의 저작이 많은 한계(사실성)가 있음은 분명하지만, 어쨌든 그의 저서는 숱한 영웅들의 귀감이 됐다. 내가 읽었을 때도 좋은 내용들이 많았고, 그 오랜 고대에서 이런 현실론적인 시각의 저술을 한 크세노폰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다.   

 

또 한가지 책의 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자면, 이 책은 그리스 원전번역본이 아니다. 영역본을 바탕으로 해독한 책이다. 따라서 조금 아쉬움이 있긴 했는데, 읽으면서 매끄럽지 않은 부분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천병희 선생님의 고전 시리즈와 뭔가 표지 디자인이 비슷하다. 의식하고 낸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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