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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 우리를 웃게 하는 30가지 유형의 성격들
테오프라스토스 지음, 이은종 옮김 / 주영사 / 2014년 3월
평점 :
처음 보는 책이었다. 고대 고전들, 정평 난 책들은 어느 정도 다 알고 있는 책 들이었는데, 처음 보는 책이었었다. 역시 세상은 넓고 볼 책은 많았다. 이 책은 저자인 테오프라스토스에 대한 짤막한 지식 외에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미지의 텍스트였다. 하긴 짤막한 지식이랄 것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뒤를 이어 리케이온 2대 학장이 되어 학당을 번창시켰다는 것, 그리고 메난드로스의 스승이라는 점 그것 외에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테오프라스토스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학당장을 이어받고, 자연 과학에 몰두를 했다. 그는 새로운 이론을 밝히기보단, 자연 과학의 대중화에 힘썼다. 그래서, 그의 시대에 학당은 굉장히 성공했다고 한다. 자연과학에 몰두한 그였지만, 인간성을 고찰한 이 책 <캐릭터>가 대표작으로 인식되고 있다.
똑바로 된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을 가지지 못한 우리나라라서, 게다가 리비우스의 <로마사> 등등의 중요한 고전들은 아직도 번역되지 않은 우리나라라서, 이런 주목받지 못한 고대 저자의 저작이 번역된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반가운 마음에 역자와 출판사를 보니 익숙했다. 크세노폰의 <키로파에디아>를 번역한 이은종씨였고, 그 <키로파에디아>를 출판한 주영사라는 출판사였다. 물론 원전 번역이 아니고, 영역본을 이중 번역한 책이었다.
이전 번역본인 <키로파에디아>를 보면서 매끄럽게 읽어나가서, 이번에도 믿고 읽었다. 책은 간단했다. 120쪽의 짧은 분량이었으며, 사실 솔직하게 말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나는 이 책을 사서 보기보단, 그냥 서점에 가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 정도로 짧은 책이다. 하지만 나는 구매를 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내기에서 이겨서 선물을 받은 책이다.) 그 이유로는 첫 번째, 나는 책을 웬만하면 소장한다는 원칙이 있고, 두 번째, 일단 내용이 굉장히 흥미로웠기 때문이었다. 두고두고 볼 만한 내용이라서 소장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책의 내용은 간단하다. 캐릭터라는 책 제목에서 풍기듯, 인간성에 대한 테오프라스토스의 견해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그러나 일반론적인 선한 인간에 대한 고찰이 아니라, 부제를 보면 알 수 있듯 '우리를 웃게 하는 30가지 유형의 성격들'이라는 것처럼, 흔히 볼 수 있는 부정적인 속성들의 인간들을 30가지 유형으로 나눠 짧게 서술하는 책이었다.
그 30가지 유형은 다 읊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가식꾼,아첨꾼, 겁쟁이, 참견쟁이, 눈치 없는 사람,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 낭설꾼, 구두쇠, 멍청이, 퉁명스러운 사람, 미신에 빠진 자, 감사함을 모르는 사람, 의심병, 불쾌한 사람, 허영심,수다쟁이, 성가신 사람, 무뢰한, 상냥한 사람, 무례한 사람, 불결한 사람, 조야한 사람, 인색한 사람, 거만한 사람, 허풍쟁이, 과두정의 집정자, 험담꾼, 탐욕스러운 사람, 만학도, 악한 사람.
이 책은 인간의 부정성을 세분화하여 나눠 쓴 책이다. 그런데 상냥한 사람과, 만학도는 지금에서는 굉장히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원문을 확인할 길이 없어서 저렇게 번역되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번역서 대로 써 봤다.
어쨌든 우리에게 다소 긍정적인 어감으로 받아들여지는 상냥한 사람과 만학도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면을 주목하기보단 부정적인 면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았다.
상냥한 사람은 어쨌든, 줏대가 없고, 자기 의견이 정확하지 않는 부분을 논하고 있었고, 만학도에 대해서는 배움에 열중하기보다는 젊은 청년들의 사교 클럽에서 그 젊은이들을 탐하는 늙은이들을 꼬집고 있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늙은 사람들이 젊은 청년들과 정신적, 육체적 관계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풍습이었다. (즉 남색이 아주 보편적으로 유행했다. 소크라테스도, 알키비아데스와 그러한 관계였었다. 물론 정신적인 사랑의 측면이 강했지만.) 개인적 사견이지만, 아마 테오프라스토스가 꼬집고 있는 만학도들은 배움의 열의보단, 남색의 육체적인 쾌락만 탐하는 자들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책에서 나온 대로 여성과 함께 경쾌한 스텝을 맞춰 춤을 춘다는 대목도 있으니 어쨌든 배움에 목적을 두지 않은 만학도들을 꼬집고 있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지금으로 본다면, 늙은 고위층이, 주점에서 여인들을 탐하는 뭐 그런 부분도 연상됐다.
책에서 나온 30가지 유형은 선과 악의 가치로 나눈 것은 아니었다. 쉬운 예로 상냥한 사람과 같은 사람은 어쨌든 악의는 없는 사람이니까, 그런 선악의 가치판단은 아니더라도, 테오프라스토스는 살아가는 인간 유형 중 선악을 떠나 부정적으로 비치는 인간들에 대해서 짤막하게 서술을 하고 있었다. 서술상의 특징은 그 유형의 인간에 대해 고찰하는 데에만 그치고 있다. 그런 인간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혹은 그런 인간들을 봤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한 자신의 의견은 철저하게 이야기하지 않으며, 자신 스스로 비치는 30가지 유형의 인간들의 특성만을 깔끔하게 고찰하는 데에서 그치고 있다.
짤막한 본문을 읽으며, 분류를 나눈 부분에서 중복되는 유형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 책에는 그 사람 인간들이 하는 습성들을 예를 들어 많이 설명하는데, 그 예를 통해서 그 시대 고대 그리스의 생활이나 생활양식 등등을 유추해 보는 재미도 있었었다. 말하자면 텍스트 자체가 주는 인간성에 대한 고찰이라는 주제도 재미있었지만, 텍스트 전개에 사용된 비유나 예시를 통해, 그리스 시대 사람들에 대한 생활상도 상상해 볼 수 있어서 그런 부분도 좋았었다.
확실히 책을 보며 느낀 점은, 서양 사람들은 굉장히 세분화를 좋아한다. 이 부분은 동양의 윤리서 공자의 <논어>와 서양의 윤리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차이에서도 느낄 수 있다. 동양의 윤리는 뭔가 큰 틀을 제시하고, 전체적인 입장에서 세부적인 것을 조망하는 것 같이 느껴지는데, 아무래도 서양의 책들은 동양의 거시적 관점보다는 미시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사람의 덕목에 대해 정확하게 세분화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논어>에서 공자는 '인'이라는 추상적 개념으로 윤리를 설명하고 있는데, 역시 마찬가지로 <캐릭터>도 전형적인 서양 철학에서 나타내는 주제의 명확한 세분화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부분을 가장 잘 나타낸 것이 목차가 아닐까? 바로 인간을 웃기가 하는 유형을 30가지로 세분화하여 나눈 점 말이다.
내가 과문해서인지 모르겠는데, 여러 인간성을 고찰한 책들이 있고 고전이 있지만, 부정적인 인간 상만을 '전문적으로' 다룬 책은 이 책이 최초가 아닐까 싶다. 그런 부분에서도 책은 의미가 있었다.
다만 비판을 좀 해 보자면, 테오프라스토스가 명확하게 분류한 30가지 인간상이, 인류의 부정적인 인간상 유형을 정확하게 대변하고 있진 않다. 예를 들면 가식꾼에서 나온 부분들이 허풍쟁이에 나온 인간과 많이 닮은 점, 뭐 이런 자잘한 부분들까지 따지자면 이 책은 완벽하지 못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테오프라스토스의 고찰이 놀라운 점은, 고대에 살았던 인간들과 현대에 살았던 인간들의 인간성이 비슷하다는 점과, 결과적으로 기술 발전과 더 나은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이지만, 사실 인간성은 많이 나아진 부분이 없다는 점. 그 점을 저자의 논고에서 발견했다. 고대에 발견한 부정적인 인간성에 논고가 지금 이 시대에도 통용되는 부분들도 굉장히 많았다는 점은 시대가 바뀌어도 인간의 본질은 변하기 힘든 것이 아닌 것인가, 그런 회의적인 생각도 잠시나마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솔직하게 저 30가지 언급한 것들 중, 나 너 우리가 자유로울 수 있는 덕목이 몇 가지가 될까? 어쩌면 저 30가지 유형은 우리 자신이 모르고 있는 자아의 모습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책을 볼 때, 무의식적으로는 내 주변의 사람들을 대입해서 보거나 그랬지만, 의식적으로는 나 자신에 대입하여서 보려고 노력했었다. 그리고 솔직하게 고백하건대 이 책에 나온 논고에 나의 부정적인 인간성도 몇 가지가 드러났었고, 나는 그때 많이 부끄러웠었다.
작은 텍스트라고 해서, 짧은 텍스트라고 해서, 빨리 보는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다. 생각을 달리하고, 다른 관점으로, 작은 내용에서 무엇을 읽어내야 할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읽다가 보면, 오히려 작은 책이 독서 시간을 더 잡아먹는 경우가 있다. 이 책도 내게 그런 책이었다.
책은 사실 굉장히 평이하다. 문체도 어렵지 않으며, 여타 다른 철학자들의, 저서들처럼 복잡한 논고가 있는 책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생활상이나, 습관 등에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책에서 논의하고 있는 예시들이 와 닿지 않을 수도 있겠다. 역자는 최대한 주석으로 이 부분들을 보완하고 있긴 하지만... 한계는 있겠다.
살아남은 고전, 위대한 고전이라 칭송받는 책들의 공통점은 바로 '인간'을 고찰한 책들이 많다. 윤리, 정치제도, 경제, 문학 등등 모든 책이 다루고 있는 궁극적 주제는 '인간'이다. 이 책 역시도 마찬가지다. 인간을 다루는 책이기에 불완전한 논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에 그런 불완전한 인간이 그런 불완전한 인간 스스로를 보고 쓴 책이기에, 불완전한 매개체로 태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을 다룬 책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을 다룬 책은, 인간이 좀 더 나아지고, 완전에 도달하려는 인간의 노력을 상징한다고 본다.
테오프라스토스의 이 작은 책 역시도, 비록 한계가 있는 책이더라도, 작은 책과 얇은 부피 이상으로, 인간이 스스로를 탐구해가고 더 나아지려는 것, 그런 발전의 가치가 담겨있는 책이라고 생각됐다. 게다가 대중이 관심 가지지 않는 책을 발굴하여 번역하신 역자 분께(비록 중역이더라도, 학계가 관심 가지지 못한 책을 번역하신 부분에서) 개인적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