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략 임동석 중국사상 65
황석공 찬, 임동석 역주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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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다시 펴 본 <삼략> 병법서다. 흔히 말하는 <육도삼략>인데, 원래는 두 권의 책을 칭하는 것으로 정확하게 말하자면 <육도>와 <삼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중국의 7대 병법서 안에 들어가는 문헌이며, 상당히 짧은 문헌임에도 무경으로 인정받아 무인들에게 중요시됐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삼략>은 대부분 <육도>와 함께 합본으로 번역하여 출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왜냐면 사실 <삼략>의 원문이 굉장히 짧기 때문이다. 제목 그대로 <삼략> 3가지 모략이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되겠고 책의 체계 역시 상략, 중략, 하략으로 구성되어 있다. 짧은 텍스트라서 사실 마음먹고 본다면 두 시간 안에 볼 수 있는 책이다. (물론 깊이 있게 보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삼략>은 다른 병법서들과 비교했을 때 가장 큰 특징이 있다. 바로 정치와 전쟁의 관계에 대해서 정치를 비중 있게 다루는 부분이다. 사실 이 책은 병법서라기보단, 국가경영 철학을 담고 있는 경영서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그 정도로 책에 전체적인 군주의 정치에 대해서 논한 부분이 많다. 물론 다른 병서들 역시도 치국에 관한 부분과 올바른 군주의 도에 대해서 짤막하게나마 언급을 한다. 그러나 <삼략>은 구체적으로 정치를 논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드러난다.

 

<삼략>에서 논하고 있는 정치의 도는 철저하게 유가 중심적인 논의였다. 인의와 덕치를 강조하는 대목들이 상당히 많으며 이 부분은 춘추전국 시대의 유가 학파의 영향을 많이 반영한 부분이 보였다. 같은 무경칠서의 <사마법>과도 일통하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마법> 역시도 유가의 사상을 최대한 많이 반영한 병법서이기 때문에, 두 책은 상당히 사상적으로 닮아 있음을 느꼈었다. (<사마법>에서는 상대의 농사 추수 기간일 때에는 배려해서 군대를 일으키지 말자고 하며 적이 상을 입었을 때에도 공격하지 말자고 할 정도로 인의와 명분을 강조하고 있는 병서다.)

 

<삼략>은 또 특이한 것이 책 중반부에 서술 동기가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는 점이다. 중반부에 이르러 책에선 이야기하는데 상략에서는 예와 상을 설치하는 것과 간웅을 변별하는 방법, 성공과 실패를 드러나는 방법을 이야기하며 상략을 잘 밝히면 능히 어진 이를 임용하여 적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한다. 중략의 경우는 덕행의 차이와 권변의 심찰을 다뤘으며 중략을 깊이 알면, 장수를 제어하고 무리를 통괄할 수 있다고 한다. 하략의 경우는 도덕을 진술하고 안위를 살피며 적현에 따른 허물을 명확히 하여야 함을 다루고 있는데, 이를 통해 성쇠의 근원을 밝히고 치국의 기틀을 심찰할 수 있다고 한다. 위의 대목에서 느끼는 것은 이 책은 병법사라기 보다는 확실히 치국의 도에 더 중점을 둔 정치사상서와도 같다고 느낄 수 있겠다.

 

거기다 이 책은 유가의 정치사상만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노자가 <도덕경>에서 강조한 유약강강(부드러운 것이 능히 굳센 것을 이기고, 약한 것이 능히 강한 것을 제압한다.) 라는 도가 철학도 채용하고 있으며, 그런 부분에서 유가적 덕치를 연결시켜 절묘하게 치국에 대해 무조건적인 강함을 강조하고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삼략>이 병법 특유의 속임수 지향주의를 내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병가의 가장 큰 특징은 '속임수'라고 할 수 있겠다. 싸움은 자고로 어떤 속임수가 다 허용이 된다는 것이 병가의 가장 큰 사상적 특징이다. <삼략> 역시도 정치에서 인의를 강조하지만, 중략에서 보듯, 궤휼과 기모(속임수 계책)을 쓸 수밖에 없다고 설토하고 있으니, 사상적 모순이 보이는 부분이지만, 병가 특유의 권모를 중시하는 부분도 볼 수 있었다.

 

병가 특유의 벙법론을 보자면, <삼략> 역시도 부하들의 심리를 잘 이용하라는 부분이 나오는데, 특히 책 서두에서 아군의 영웅심을 촉발시키라는 부분에서 볼 수 있으며, 사기를 높이는 방법으로 예시를 든 것, 어떤 이가 좋은 술을 주자 장수가 이를 강물 상류에 쏟게 한 뒤 강 하류에서 부하들과 함께 마셔서 사기를 올렸다는 부분, 무릇 한 동이 술이 강물 전부를 술맛이 나게 할 수는 없지만, 삼군의 사졸들이 모두 죽음으로 장수의 고마움에 보답했다는 부분에서 병가 특유의 고도의 심리론을 볼 수 있었다.

 

뻔하긴 해도 가장 리더가 귀감으로 삼아야 하는 부분도 고찰하고 있는데, 장수는 사졸들보다 먼저 목마르다고 해서도 안되며, 군사 막사가 완공되기 전에는 절대 부하들에게 피곤하다는 말을 해서는 안되며, 군대 아궁이에 밥이 지어지기 전까지 절대 배고프다는 말을 해서도 안된다. 비 온다고 우산을 먼저 펴서도 안되며, 여름에는 부채를 들고 있어서도 안된다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사졸들과 편안함과 고난을 같이 해야만 군대의 사기가 오르고, 장군을 존경으로 바라본다는 이야기는 2000년을 지난 지금에서도 유효한 덕목이다.

 

확실히 <오자>, <울료자>와 같이 법가주의적 병법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병가 특유의 심리학과 권모학이 녹여 있는 책이었으며, 유가와 도가의 영향을 받은 부분들도 보였다.

 

재미있는 점은 <삼략>에서 계속되게 인용되는 <군참>이라는 병법서를 보며, 과연 이 시대에도 내려져 오는 병법 텍스트가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그것은 병가라는 철학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은 점도 유추해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군참>이란 병서도 보고 싶은데 아쉽게도 유실됐다고 한다.)

 

흔히 같이 거론되는 <육도>와 비교를 해 보자면, <육도> 역시도 첫 장인 문도에서 정치에 대해서 논고가 있긴 하지만 나머지 다섯 챕터에서는 전형적으로 전쟁 모략 이야기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진법에 대해서 무기에 대해서 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즉 <육도>는 자세한 미시적 전쟁 이론서라면 <삼략>은 육도보다 짧긴 하지만 치국의 도에 더 중점을 둔 거시적 국가경영 병법서라고 할 수 있겠다. 참고로 이 <삼략>의 정신은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과도 많은 유사성이 있고, 사무라이 정신의 형성에 많은 영향을 줬다고도 한다.

 

유가 사상이 공맹(공자와 맹자), 도가 사상이 노장(노자와 장자)로 통칭되는 것에 비해 병가는 손오(손자와 오자)라고 통칭한다. 물론 병가의 집대성은 <손자병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손오와 육도삼략의 차이를 보자면, 손오가 이야기하는 부분은 철저하게 전쟁 중심적인 관점이다. <손자병법>은 거국적인 전쟁의 틀과 거국적인 전쟁의 돌아가는 판도와 형세를 추상적으로 이야기하는 병서라면 <오자병법>은 세부적인 전술론과, 부하들을 심리적으로 다루는 부분, 그리고 무장에 대한 부분들을 고찰하는 부분이 특징이다. <육도삼략>은 그런 손오병법에 비해 관점이 더욱더 포괄적이다. <삼략>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전쟁을 넘어선 정치의 도까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루고 있는 논고의 포괄성으로 보자면 <육도삼략> 쪽이 더 넓다고도 생각했었다.

 

<육도>와 <삼략>의 공통점은 장량에 있다. 유방의 책사인 장량이 얻었다는 병서가 바로 <삼략>이라고도 하며 <육도>라고도 한다. 사마천의 <사기세가>에서는 <태공병법>이라고 기록됐는데, 후세 사가들은 <육도>일 가능성과 <삼략>일 가능성, 그리고 <소서>라는 책일 가능성, 아니면 가공된 사례 거나, 텍스트의 분실 등등도 이야기하고 있다. 어쨌든 두 책은 그렇게 장량의 전설과 통한다는 점도 공통점이겠다.

 

어쨌든 논고는 짧고, 깊이 생각할 부분은 생각보다 없는 부담 없는 고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손자병법>보다는 읽기가 편했으며, 뻔한 덕목이나 뻔한 이야기가 있는 책이기도 했지만, 귀감을 살 만한 구절들이 많은 좋은 책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다른 병서들과 번갈아가며 주기적으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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