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법 임동석 중국사상 63
사마양저 찬, 임동석 역주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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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법서라고 다 같은 사상이나 전략과 전술만을 이야기하진 않는다. 각 병법서마다, 추구하는 사상이 조금씩 다르기도 하고, 어느 병서는 전략적인 부분을 어느 병서는 실제 전술적인 부분을, 어느 병서는 군법에 관한 부분을, 등등 책마다 강조하는 것이 다르기 마련이다. 무경칠서로 이야기되는 병법서들 역시도 마찬가지다. 7권의 책은 병가라는 철학 특유의 권모를 중시하는 부분도 있지만, 세부적으로 우위에 두는 철학은 각 책마다 다 다르다.

 

<사마법>은 그 중 사상적으로 가장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텍스트는 굉장히 짧은 책이며, 소실이 많아서 분량도 얼마 되지 않는 병법서다. <사마양저병법>, <사마병법>이라고도 통칭되는 이 병법서는 제나라의 명장 사마양저가 지었다고 하는 병법서다. 흔히 병가를 집대성한 손무의 외가가 사마양저라고 끼워 맞추는 소설 등이 있는데, 밝혀진 바는 없으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억측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분명한 사실은 손무 이전 세대의 사마양저는 그 당시 시대에 병가의 선각자였음에 틀림없고, 손무 역시 그의 저술이나 사상에서 많은 영감을 받은 것 같았다.

 

<사마법>의 사상적 특이성은 '의전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부분이다. 즉 인위와 도덕, 명분을 앞세운 전쟁을 선호하고 첫 장의 제목 '인본'에서 보듯, 인과 예를 중시하여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명분주의 전쟁을 지향하고 있다. 사상적으로 유가 사상에 깊이 연관을 받은 것 같이 느껴졌다. 쉬운 예로, 몇 가지 들어보자면, 적이 상을 당했을 때에는 공격하는 것은 도의에 어긋난다. 겨울과 여름에는 군대를 일으키지 않았는데 이는 아군과 적군의 백성 모두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의를 두고 다투었고 이를 두고 다투지 않았으니 이로써 용을 밝혔던 것이다. 앞의 구절들에서 볼 수 있듯 유교적 덕목 명분주의에 입각한 병법서라고 할 수 있겠다.

 

책을 보며 송 양공의 고사가 생각났다. 송나라가 초나라와 싸울 때, 송 양공은 먼저 전쟁터에 도달했다. 초나라 군사들이 강을 건널 때 제장들은 공격을 가해야 한다고 했다. 원래 병법에서 물가를 지나는 병력을 강을 건널 때 공격하면 승산을 잡을 수 있다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법에서는 습지나 물을 만날 때는 신속하게 지나치라고도 경고를 했다. 그러나 양공은 그것은 '의'에 어긋난다 하여 초나라 군사들이 전열을 가다듬을 때까지 기다려주고 결국 초나라와 싸워서 패배하며 자신 스스로도 목숨을 잃고 만다. 지금의 가치로 보면 참으로 어리석어 보이는 행동이지만, 그 당시에서는 송 양공을 뛰어난 군주라며 칭찬한 사람들도 많았었다. 대표적으로 맹자 역시도 양공의 의를 행한 행적을 칭송한다.

 

그러나 이 부분은 명분적인 '의전론'의 한계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전쟁이란 명분이 중요하다. 전쟁을 일으키는 동기적인 부분에서 명분이 없다면 목적 없는 전쟁으로 비치기 마련이고, 그렇게 된다면 부하들의 사기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렇지만, 실제 전투에 들어갔을 때, 명분을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느냐는 관점에서는 역대 병가들은 현실을 중요시했다. 전쟁에 돌입한 즉시, 장군은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우리는 병법 이론이 기업 경영과도 상통한다고 하나, 경영과 병법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런 극도의 현실 추구의 정도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에는 엄연한 윤리와 도덕이 있고, 불문율에 그런 부분들을 지키며 경쟁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전쟁이란 그런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랬다간 내가 죽는다. 인간에게 있어서 생존이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가장 우선시되는 덕목 중 하나다. 따라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로 일궈내는 것이 전쟁이며, 이겨내서 전쟁 초에 내세웠던 명분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 전쟁이다.

 

그런 부분에서 보자면, <사마법>의 의전론은 지금 시대와, 어쩌면 춘추전국 약육강식 시대에서 한계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전쟁의 동기를 인간의 야욕에서 찾아낸 <오자병법>의 사상과도 상반되는 부분이다. <사마법>에선 군대를 일으킬 때에는 의와 예에 입각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두 사상은 상당히 상반적인 부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마법>이 병가 특유의 권모를 경하하고 있지 않다. 책 중반부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무릇 전투에서 가장 훌륭한 것은 근본(모책)을 사용하는 것이며, 그다음에는 지엽적인 공전과 징벌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장수는 책략을 잡고 은미함을 지켜야 한다. 본말은 오직 권변으로 승리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전쟁을 '의전론'으로 시작하더라도, 실제 전투에서 장군은 책략을 은밀하게 사용하며, 결국 전쟁의 승패의 본말은 권모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결국 병가 사상들이 강조하고 있는 권모숭상이 나타나 있는 부분이라 생각했다.

 

<사마법>은 평화를 지향하는 병서지만, 평화 시에 전쟁을 항상 유념하고 신경 써야 하며 군사 훈련들도 갖춰야만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 부분을 보며 조선이 생각나기도 했다. 조선 초에는 상당히 강력한 군사정책을 시행하여 부국강병의 초석을 닦아놨는데 성종 이래로 태평성대가 열려, 나라의 국방이 저하되기 시작됐으며, 국방력 약화의 방점을 찍은 것이 임진전쟁과 병자전쟁 정묘전쟁이다. 전쟁을 지향하는 것도 안 좋지만, 지양하는 것 역시도 경계해야 한다. 나라의 근본은 경제력과 국방이라는 점은 지금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사마법>의 초반이 '의전론'에 무게를 뒀다면 <사마법>의 중반은 군법에 대한 이야기가 강조되고 있으며, <사마법>의 후반에 이르러야 현대적으로 의의가 와 닿을 수 있는 장수의 리더십에 대하여 거론되고 있다.

 

<사기열전> 사마양저열전을 보면, 사마양저가 얼마나 군법을 중시했는지 나와 있다. 당시 사마양저는 제나라 경공에게 발탁되었는데, 한미한 출신을 가지고 있어서 군대를 통솔하기에 위엄이 서지 않았다. 고민한 양저는 경공에게 한 가지 청을 하는데, 경공이 아끼는 부하 한 사람을 보내 달라고 해서 자신의 군율에 위엄을 싣게 해 달라고 말했다. 그랬는데, 문제는 경공이 아끼던 신하가 늦게 도착한 것이다. 송별연에서 술을 거하게 마시다가 합류한 시간에 늦게 도착했는데, 양저는 이 군주의 신하를 목을 참수함으로써 군법의 지엄함을 보였다. 경공은 뒤늦게 부하가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에 급히 사신을 보내 양저에게 참수를 취하하라는 명을 전달했으나 양저는 '장수가 밖에 있을 시에는 군주의 말을 다 따르지 않는다.'며 단호하게 전장으로 나아간다. 

 

위의 예를 보듯, 사마양저는 굉장히 군법을 중요시했다. <사마법>이라는 제목 자체에서도 풍겨 나오듯, 법이라는 대목에서 군법에 대한 부분들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라고도 생각했다. 책에서의 군법은 고대 이래로 행해지던 군법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었다. <사기열전>에서 보이듯, 이 당시 군법은 상당히 문란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사마법>은 특히 다른 병서보다 군법의 지엄함과 군법의 예를 소상하게 기술하고 있으며, 군의 위계를 강조하는 항목들이 상당히 많았었다.

 

특히 문무양권에 대해서, 책에서는 문권은 무권을 간섭하지 않으며, 무권 역시도 문권을 넘봐선 안되며, 그렇게 문무 양권은 각자 맡은 바에 충실해야 한다는 대목. 이 대목. 이 대목은 후대 병가들에게 숱하게 재해석되어, 손무를 비롯한 여러 후학들은 '설사 군주의 명이더라도 현장에 나간 장군에게 명을 내릴 수 없으며, 장군 역시도 상황 판단에 입각하여 군주의 명이더라도 따르지 못하는 것은 따르지 않아야 한다.'라는 개념까지도 도출시키지 않았나 싶다.

 

승패는 병가지상사라는 이념도, <사마법>에서는 나온다. '무릇 전쟁에서 군사의 숫자로 많고 적음에 따라 승리하기도 하고 패배하기도 한다.'라고 명시하는데 중요한 부분은 장군이 전쟁을 하다 실수에 따라 패배할 수도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승패를 떠나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는 것을 일러 정칙이라 한다.'라는 대목을 보건대, 같은 실수를 장군이 반복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장수의 계책 하나로 삼군이 이기기도 하며 지기도 하니, 장군의 묘계는 그만큼 중요하다고도 역설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독 반복되고 있는 병법으로는, 사지에 몰린 적에게 통로를 내 주고 도망갈 길을 열어주라는 부분과, 병졸들에 대한 교육 역시도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 특히 병졸의 교육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출신 지역이 다른 병사들은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그 성격은 각 주에 따라 다르다. 이들에게는 교육을 통하여 습속을 이루도록 해 줘야 한다. 그 풍습도 각 주마다 다르니 도로서 이를 교화시켜야 한다.'라는 부분에서 병사의 다름을 인정하고 교육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고, 이 부분은 다원화된 사회에서 부하 인재를 육성할 때에 참고할 부분이라고도 생각했다.

 

어쨌든 '의전론' 사상이 들어간 명분주의 병법서라서 한계가 있기 마련이지만, 고대 중세 이래로 <사마법>은 상당히 중요한 텍스트였다. <사기열전> 사마양저열전에서도 사마천은 양저의 병법이 널리 알려져 있어서 병법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한다고 이야기했는데, 그만큼 사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병법책이다. 같은 <사기열전> 손무오기열전에서는 사마천이 손오의 병서는 집집마다 다 가지고 있는 병서이니, 라는 대목. 즉 이 당시에 <손자병법>, <오자병법>, <사마법> 3가지의 텍스트는 사회적으로 상당히 중요시된 문헌이라는 점을 알 수 있겠고, 사관인 사마천의 기록으로 짐작건대 병법서로서 중요한 권위를 가지고 있었음을 짐작하는 부분이다.

 

거기다 삼국지의 영웅 조조는 <손자병법>을 재구성하며 <사마법>을 인용한 주석을 썼다고 한다. 조조는 <손자병법>과 <사마법> 두 책의 주석서를 남겼다고 하는데, 지금 현존하는 것은 <손자병법> 뿐이다. 어쨌든 전쟁영웅 조조가 중시할 정도로 <사마법>은 주목받은 텍스트가 아닐까 싶다.

 

원문은 155편이라고 <한서 예문지>에 기록되어 있는데 지금 현전하는 것은 5편으로, 상당히 많은 유실이 있는 병법서다. 유실이 많은 책이라 사실 책의 논고가 뒤죽박죽이고 문체도 상당히 거칠었으며, 내용의 연속성에도 아쉬운 부분이 많은 책이다. 어쨌든 사마양저는 손무 이전 시대에는 가장 뛰어난 장군임엔 틀림없었다. 책을 보면서 <사마법>이 병가를 집대성한 <손자병법>에 영향을 준 부분들이 상당히 많은 점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런 소소한 비교 포인트도 독서의 즐거움이라면 즐거움이겠다... (누군가가 보기엔 상당히 머리 아프겠지만...)

 

어쨌든 발굴을 통해 유실된 부분들이 발견됐으면 싶고, 연구와 논증을 통해 책이 좀 더 보완됐으면 했었다. 아무튼 양이 너무 적은 텍스트라서 아쉬움을 가지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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