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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 -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최대의 교훈
필립 체스터필드 지음, 권오갑 옮김 / 을유문화사 / 2001년 2월
평점 :
아버지와 떨어질 때, 어린 나에게 아버지는 이 책을 손에 쥐여주며, 나를 안아주셨다. 그리고 아버지께선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나셨었다. 아버지께선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 책은 아버지가 쓴 것이라고 생각하고 항상 지니며 읽어라.'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이해하기엔 너무도 어린 5살의 꼬마였었다. 그 당시 나는 이 책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되지 못 했다. 여전히 그림책이 익숙했던 그런 아이였었다.
그래도, 나는 이 책을 항상 지니고 있었다. 강원도에서 서울로 갈 때에도, 나는 이 책을 항상 가지고 갔었다. 이 책은 나에게 이해할 수 없었던 책이지만, 이 책은 나에게 아버지의 사랑 그 자체였었다. 여덟 살 무렵, 나는 이 책을 부단히 읽었다.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어른들의 세계였었고, 초등학생이 이해하기는 버거운 현실적인 교훈이었으나, 아버지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읽어나갔다.
9살이 돼서야 나는 이 책을 '의미론적으로' 처음 읽었다. 첫 회독 후의 기쁨은 말로 이루 설명할 수 없었다. 나는 이 책의 뒤 갈피에, 짤막하게 소감을 남겼다.
'받은 지는 꽤 지났지만, 나는 오늘 이 책을 받은 거나 다름없다.'
그랬다. 꼬꼬마였던 다섯 살의 내가 이해하기에는 이 책은 너무도 범주가 컸고, 이해하기 힘든 어들들의 관념이 많았다. 그것은 9살 이래로 계속되었다. 9살이 돼서야 나는 이 책의 진정한 진가를 알아보기 시작했으며, 이 책이 상당히 잘 저술된 책이라는 것을 어림풋하게나마 이해하고 있었다. 아홉 살 초등학교 2학년, 이제 슬슬 또래의 무리에서 작은 사회라는 것을 알아가고 체득하는 이 시기에 내게는 이 책은 보물단지처럼 다가왔었다.
그 뒤 나는 매년 이 책을 읽어왔다.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의미는 명료해졌으며, 교훈은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이 책을 읽을 때마다 형광펜으로 중요 구절들에 줄을 그어가며 읽었다. 사실 이런 부류의 책은 흔하디 흔했다. 뻔한 자기 계발서와 뻔한 힐링 서적이 난무하던 시절, 이 책 역시도 어떻게 본다면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는 책이지만, 그러나 이 책은 그런 가벼운 책들과는 다른 '자기 계발서' 였었다.
원제인 <Letters To His Son>에서 볼 수 있듯, 이 책은 누군가나 독자들을 의식하고 쓴 책이 아니다. 원래 이 책은 필립 체스터필드라는 영국의 정치가이자 문필가가, 자신의 아들에게만 써 준 작은 책자다. 출판을 염두에 두고 쓴 책이 아니었으며 따라서 이 책은 아버지가 인생을 살면서 느낀 진솔한 경험의 진액이 그대로 녹여있는 진국의 경험담이었다.
그것은 아들을 향한 사랑이었다. 다른 자기 계발서들과 느낌이 다른 이유는, 그것은 아버지가 아들을 향해 쓴 사랑이 묻어있기 때문이며, 진심이라는 마음으로 써 내려간 책이기 때문이다. 숱한 자계서들 이 자극적이거나, 혹은 가볍게, 독자들에게 관심을 받으려고 몸부림치는 그런 가식성이 없는 진솔함이 담긴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특별하다.
책은 인생사에 대한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처세와 인간관계, 배움, 우정, 삶의 의미 등등 여러 범주에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친절하게 인생을 설명하고 있었다.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라서, 아버지는 남들에게 보이던 가식적인 모습을 걷어내고, 솔직하고 담담하게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 글이 어려운 부분은 없다. 자상하고 친절하게 배려하며 아버지는 그렇게 아들에게 글을 쓰고 있었다.
이 책이 나올 때의 시대적 배경을 보자. 체스터필드는 영국의 중상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정치가이다. 당시 영국은 수상인 로버트 월폴이 집권하고 있었고 부유한 번영을 이뤄나가던 국가였다. 영국은 이 시기 부유한 시민과 근대적인 지주를 기반으로 하여 막대한 부를 창출했다. 이 부를 경제 발전에 적극적으로 쏟아부어 산업혁명을 일궈내어 제국주의의 기반을 마련했었다. 그렇게 영국은 세계로 팽창하고 있었고, 이 영국을 롤모델로 삼아 지금의 패권을 가지게 된 국가가 미국이다.
그러한 사회적 배경 아래에서 영국에서는 젠틀맨 정신을 발전시켰으며, 이 책은 유감없이 그런 영국의 귀족주의적 덕목들을 소상하게 밝혀내고 있다. 그래서 사실 책에는 귀족적인 냄새가 풍기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그런 소소한 단점들이 책이 가지는 장점을 덮을 수는 없고 생각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 책은 상당히 의미가 깊은 자기 계발서의 모태라고 할 수 있다. 이 젠틀맨 정신의 교과서를 영국의 사상가들은 대부분 모두 읽었다. 유명한 존 스튜어드 밀이나, 과학의 찰스 다윈 등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명사들은 이 책에서 깊은 영감을 얻었다.
한 가지 또 생각해 볼 점은, 현대 자기 계발서의 모토는 새뮤얼 스마일스의 <자조론>이다. 스마일스의 <자조론>은 온갖 좋은 덕목들을 청교도 정신으로 압축시켜, <자조론>에 투영한다. 노력, 근면으로 이야기되는 <자조론>. 그 <자조론>을 쓴 새뮤얼 스마일스 역시도 이 책을 읽었고 많은 영감을 받았던 배경이 있다. 그렇게 본다면, 현대 자기 계발서의 모태는 바로 이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대 자기 계발서와 스마일스의 <자조론>은 이 책을 따라오지 못한다. 그 이유는 바로 이 책의 진솔한 면과 가식이 없는 점. 출판을 염두에 두지 않고 오로지 자식에게만 사랑으로 가르침을 전하려는 체스터필드의 저술 동기를 자기 계발서들은 따라오지 못한다. 수많은 대중을 염두에 두고 쓴 책과 아들에게만 전하려고 한 책은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것은 현대 고전이라고 칭송되는 <자조론>에게도 적용되는 사례다.
나는 이 책에서 책을 읽는 방법과, 삶을 살아가면서 지식을 어떻게 습득해야 하나, 책으로 보는 지식과 경험으로 통하는 지식의 조율, 그리고 특히 인간관계에 대응하는 방법과 진실한 친구를 만드는 법과 알아보는 법을 배웠던 것 같다. 그것 외에도 배움에 대하여, 사교에 대하여, 노는 것에 대하여 등등, 책은 짧아도 상당히 깊은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남녀노소 따지지 않고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이런 종류의 책은 대체적으로 도덕적이고 옳은 이야기만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체스터필드의 책은 그렇지 않다. 한 가지 예로 독서가 중요하지만 책 더미에만 쌓여서 사교할 기회를 놓치는 것은 굉장히 잘못된 일이다고 하는 부분. 텍스트라는 책을 읽기보다 사회라는 책을 읽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부분. 그렇다고 해서 책을 경하하는 입장도 아니었다. 하루 30분 집중하여서 책을 읽도록 강조하는 부분과, 만년 노년이 되어서 자신은 책 더미에 쌓여서 보내는 여생이 아주 유쾌하다는 그의 입장에서 어디 하나에도 치우치지 않은 합리적인 사고를 볼 수 있었다.
사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너무 경박하고 가벼운 인간들과 교제하지 말거니와, 너무 무거운 학자들의 모임 역시도 힘이 빠지기 마련이니, 적당하게 사람을 보고 대처하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었으며, 겉만 뻔지름하고 속은 텅 빈 가식쟁이들을 구분하는 방법과, 특히 마음에 들었던 말은 '결점까지 칭찬하는 인간에게는 심적으로 접근하지 말라.' , '시시한 인간은 가볍게 대하되 적으로 돌리지 말라 - <논어>에서도 이러한 대목이 나온다.' , 그렇다고 하여 인간관계를 너무 수동적으로 생각하지도 말고 자신이 능동적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는 부분, 등등은 아주 곱씹을 만 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자본주의의 정점을 찍은 미국이 산업혁명으로 부를 창출하던 영국을 쫓았던 것과 같이, 우리나라도 미국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 우리만의 <내 아들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와 같은 정신적인 성숙을 보여줄 수 있는 책이 있는 것일까? 그저 모양이나 겉모습만 따라 하기 급급하지 내면이나 정신적인 부분 등등은 아직도 미숙하고 함량 미달이라고 생각한다. 중상주의가 만연하는 영국의 그 시대에서 정신적인 젠틀맨 사상이 발전했듯, 우리도 너무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만을 생각하지 말고 그 자본주의에 어울리는 우리만의 사상을 계승하거나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사상과 정신의 빈곤이 참으로 아쉽다. 이번에 책을 보며 그런 생각도 들었었다.
가끔 나는 생각한다. 나의 아버지는 왜 나에게 저런 글을 못 남겨주실까라는 아쉬움도 들었다. 그러나 세월을 살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아버지께선 아들인 나에게 저런 글을 남기진 못하시더라도, 좋은 책을 나에게 소개할 안목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고마움을 느꼈다. 그리고 설령 그런 안목이 없더라도 상관없다. 체스터필드가 아들에게 줬던 사랑이나 아버지가 나에게 줬던 사랑이나 비교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니까, 그것으로 나의 투정에 위안을 삼는다. 어쨌든 내 인생에서 이 책을 어린 시절에 만났던 것은 참으로 행운이었다. 덕분에 나는 '필립 체스터필드'라는 또 다른 아버지를 어린 시절부터 만났으니까 말이다,
모쪼록 자라나는 청소년이나, 아들, 딸들에게 선물하기에 좋은 책이 아닐까 싶다. 지금 보고 있는 판본은 구판본이다. 아버지가 나에게 이 책을 물려주셨듯, 나도 이 책을 미래의 내 자손에게 물려주고 싶다. 어쨌든 이 책은 나의 유년 시절과 지금에서도 많은 정신적인 영감을 줬던 훌륭한 도서다. 분량도 짧고 문체도 명료하며, 교훈적인 좋은 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