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 - 산동성주간
노병천 지음 / 양서각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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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해서 미뤄왔던 손무의 <손자병법> 서평. 올해가 가기 전 여러 번 읽었던 경험을 하나로 쏟아내어, 정리하고 싶었던 마음도 컸다. 수도 없이 읽고 또 읽은 책인데, 이제야 드디어 리뷰를 끄적여본다. 물론 나의 이 리뷰는 부족한 부분이 많을 것이고, 앞으로도 더 병법 사상에 대해 공부하며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은 중간결산을 하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내가 한간본 <손자병법>을 읽어 오며 느꼈던 점들을 최대한 추려 적어보려고 한다. 단 책의 이 부분에서 나는 손무의 사상을 이야기하기보단, 한간본에 대한 내 생각을 추려서 적으려고 한다. 자세한 손무의 병법 이론과 사상에 대해서는 따로 <손자병법> 서평을 작성해도 록 해 보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손자병법>이라는 텍스트를 검토하려면 세 가지 판본을 대조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로, 한간본이라 불리는 <산동성 죽간 손자병법>, 그리고 통행본 <손자병법>, 그리고 마지막으로 삼국지의 영웅 '조조'의 주석이 달린 <손자병법>이다. 우리가 흔히 보고 있는 <손자병법>은 이 중 두 번째에 위치한 책으로 11가 주석이라 불리는 <손자병법>의 원문을 뜻한다. 11가주 주석<손자병법>은 정형화된 통행본 <손자병법>에 조조를 필두로 한 11명의 대가들이 주석을 넣은 주석서를 뜻한다. 여기서 주석을 삭제하고 원문만을 옮겨 놓은 것이 통행본 <손자병법>의 모태라고 할 수 있겠다.

 

보통 우리는 <손자병법>이 하나의 문헌으로 내려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동양의 많은 텍스트들은 여러 사본과 여러 이본들이 존재하며, 시대를 거치며 원저자의 원문이 왜곡되거나 수정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손자병법> 역시도 이에서 벗어날 수 없다. 기존 내려오는 <손자병법>은 여러 가지 의문이 있었다. 과연 원저자인 손무가 실존 인물인가? 손자라는 것이 손무를 뜻하는 것인지 그의 후손인 손빈을 뜻하는 것인지 모호하기도 했으며, 어느 학계에서는 '조조'가 <손자병법>의 실제 저자라고까지 주장할 정도로, 여러 가지 설이 난무했다.

 

왜 이렇게 <손자병법>의 저자를 둘러싸고 학계의 공방이 치열한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손자병법>이라는 책이 문헌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굉장히 높은 가치를 지닌 책이며, 뛰어나고 조리 있는 전쟁이론의 책이라서, 이를 둘러싼 여러 의문점들은 중세와 근세 그리고 지금에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신동준 씨가 <손자병법>의 원저자는 조조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 부분은 상당히 근거가 떨어지는 것 같다. 실제 조조는 원문의 100배나 뻥튀기된 난잡한 <손자병법>을 대거 수정하여 지금의 13편으로 추려 놓은 공이 있다. 현행 <손자병법>의 원문은 그가 대폭 수정하며 손질한 원문일 가능성이 높으며, 따라서 다른 누구의 주석보다도 조조의 주석은 가치가 있다. 지금의 현행 원본을 수정하며 자신의 생각을 짧고 간결하게 주석을 달아놔서, 내용의 정리를 시도하였기에 그의 주석은 가치가 있는 주석이다. 실제로 조조는 실전 전쟁에 달인이었으며, 진중에서도 병법 이론을 공부하는데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즉 실전과 이론 둘 다 능통한 주석가였으며 주석가로서도 편집자로서도 자질은 굉장히 뛰어나다고 할 수 있겠다. 다른 문사들이 탁상공론으로 주석은 단 것에 비해, 그의 정리 방법은 군더더기가 없고 장황하지 않으며 핵심만을 추려서 주석을 가하고 있기 때문에, 손무의 사상을 읽어내는 데에 참고할 만한 자료이다.

 

그래서 일각에는 편집자인 조조가 손무의 이름을 빌려 자신의 병법 이론을 정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도 주장했으며, 따라서 <손자병법>은 실질적으로 조조의 저작이라고도 이야기하는데, 이에 대해서 태클을 걸 만한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1972년 전한 시대의 무덤에서 무더기의 죽간이 발간됐는데, 이 죽간들 중 특이한 사항은 병법 죽간이 많았다는 점이다. 거기에는 두 가지의 <손자병법>이 들어 있었다. 바로 손무의 <손자병법>과 손빈의 <손자병법> 두 가지가 나왔었다.

 

이 죽간들의 발간으로 두 가지 문제가 정리된다. 첫 번째는 통행본 <손자병법>과 한간본 <손자병법>의 대조를 통해, 학계는 조조의 <손자병법> 정리본이 한간본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을 발견했었다. 이 말은 즉, 조조가 <손자병법>을 정리했을 때에는, 참고할만한 정본을 바탕으로 하여, 난잡하고 원문이 부풀려진 <손자병법>을 정확하게 정리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물론 편명이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적인 편제와 기본적인 문체가 얼추 비슷한 부분으로 볼 때, 조조가 정리한 통행본 <손자병법>은 조조의 자의적인 견해보단 정확하게 원문을 살려 추려서 정리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기존의 의견은 삼국지의 악역 조조의 이미지 때문에 (촉한정통론) 조조의 학문적인 식견을 의심하며 심지어 그의 주석을 폄하하기도 했었는데, 실제로 조조는 그렇지 않았다. 그가 있었기에 지금의 통행본 <손자병법>을 정리할 수 있었으며, 그는 손무의 원문을 최대한 복원하는 쪽으로 책을 정리했다고 밖에 결론을 지을 수가 없다. 따라서, 저자가 조조라는 설도 설득력을 잃게 되고, 손빈이라는 설도 설득력을 잃게 된다. (손빈의 사상이 담긴 또 다른 <손자병법>이 동시에 나왔기 때문에...) 어쨌든 손무의 사상을 계승한 <손자병법>이라는 책은 전국시대 이래로 쭉 내려져 오고 있었다.

 

다만 과연 이 한간본 <손자병법>이 실제 손무가 지은 원본과 동일하다고는 확신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기 열전>에는 손무의 열전이 나오지만, <춘추>에는 손무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춘추>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손무라는 인물이 가공된 인물이라고도 주장하고, 일각에서는 실존하는 손무의 사상을 누군가가 정리한 책이 <손자병법>이라고도 하는데, 책의 원 저자에 대해서는 솔직히 문헌이 없어서 알 도리가 없다 손무가 가공의 인물인지, 손무가 실존했고 그가 쓴 병서인지, 손무라는 인물은 존재했지만 <손자병법>은 손무가 쓰지 않고 그의 이름을 빌린 누군가가 그의 병법 이론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분명한 사실은 전국시대 이래로 내려져오는 <손자병법>이란 텍스트를 조조가 최대한 올바르게 복원하였다는 점. 그리고 1972년 발견된 한간본 <손자병법>은 통행본 <손자병법>보다 훨씬 연대가 앞서기 때문에 진본에 가까운 문헌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위의 세 가지 사례를 정리하여서, 앞서 나는 <손자병법>이라는 문헌을 진지하게 탐독할 때엔 세 가지 텍스트를 고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간본 <손자병법>은 지금까지 출토된 <손자병법> 문헌 중 가장 시대적으로 앞선 문헌이므로 진본과 가장 가까울 가능성이 있어서 반드시 참고하여야 한다. 통행본 <손자병법> 역시 조조의 정리가 가미된 부분이 있지만, 고대 이래로 현재까지 원문으로 공인받은 문헌이므로 무시할 수 없다. 조조의 주석 역시도 <손자병법>을 가장 체계적으로 정리한 그의 생각을 담은 글로서, <손자병법>의 사상을 연구할 때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손자병법> 번역물들은 통행본 원문을 번역하고, 아전인수 격으로 얕은 경영 이론에 대입하는 식으로 번역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우리나라에서 조조의 주석을 가미하여 내놓은 <손자병법>은 두 가지 책이 있는데, 하나는 유동환의 '조조병법' 이란 책이며 또 하나는 신동준의 '무경십서 - 손자병법' 편이다. (유동환의 '조조병법'은 절판됐다. 신동준의 '대여대취'라는 책도 조조의 주석이 가미된 <손자병법>을 번역한 책이다.)

 

이 책은 국내에서는 최초로, 대중에게 한간본 죽간을 베이스로 하여 <손자병법>을 번역한 책이라고 책에서는 말한다. 다만 일단 불만을 이야기하자면, 이 책은 첫째로 한간본을 베이스로 한다고 했지만, 내가 읽었을 때 주된 책의 베이스는 기존 통행본 <손자병법>이었던 것 같았다. 그 예로, 한간본에만 보이는 '기정편'이 이 책에는 번역되지 않았으며, 다른 한간본 문헌들(합려와 손무의 궁녀 시범, 황제가 적제 청제, 백제, 흑제를 토벌하는 내용 등등) 역시도 번역되지 않은 것이 많다.

 

즉 통행본 체제에 입각하여서, 통행본의 해석과 한간본의 해석이 다를 때 한간본의 해석을 담아 놓을 뿐, 결국 이 책이 한간본의 모든 내용을 담고 있진 않았다. 통행본과 한간본의 차이는 편명과 단어의 차이가 많았는데, 그 부분들은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이 책만으로는 한간본이 어떤 체제로 구성됐는지 올바르게 확인할 수 없었다. 이 부분이 결정적으로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장점이 있다. 첫째로, 통행본의 체제로 한간본의 번역을 기술한 책이라, 통행본 <손자병법>을 번역한 책들과 비교하여 봤을 때, 한간본만의 어휘나 추가된 구절 등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 이를 통해 어느 부분이 후대에 변화를 주고 첨삭을 했는지를 살펴보기엔 용의하겠다.

 

두 번째로는, 책의 사이즈가 아주 적고 얇아서, 들고 다니기가 아주 간편하다. 다른<손자병법> 처럼 원문 이상의 뻥튀기된 사례 중심의 책이 아니라, 깔끔하게 원문만 번역한 책이라서, 군더더기 없이 고전의 원문만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책은 다이어리 사이즈에 200쪽 내외다.

 

어쨌든 그래도 아쉽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바람직한 <손자병법> 정본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간본 <손자병법>의 원문과 번역을 충실하게 번역하여 포함하여야 한다. 두 번째 통행본 <손자병법>의 원문과 번역을 충실하게 번역하여 포함하여야 한다. 세 번째, 조조의 주석을 반드시 표기하여야 한다. 네 번째, 작년 리뷰한 리링 교수의 <손자병법> 해설서 같이 통찰력 있고 철학적으로도 깊은 내공이 담긴 역자의 해설이 있어야 한다.

 

아니 적어도 네 번째까지는 내 욕심이긴 하지만, 세 번째 항목까지는 반영하는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국내에 <손자병법>에 대한 책은 난무하지만 내가 만족하는 <손자병법> 번역서는 아직도 없는 실정이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한간본 <손자병법>의 내용을 오롯이 알 수 있는 텍스트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부분이 심히 유감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은 상당히 의미 있는 책이나 앞서 말한 통행본의 입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어쨌든 이 책의 한계를 보완하여 한간본 <손자병법>에 내용과 체계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번역본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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