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서치요 - 3천년 리더십의 집대성
샤오샹젠 지음, 김성동.조경희 옮김 / 싱긋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각 시대의 명군들에겐 그 명군들의 정신세계를 지탱한 서적이 있기 마련이다. 가령 예를 들어보면, 조선 왕조의 경우, 태조와 태종, 세종의 머릿속에는 <대학연의>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의 치적을 밝히는 일은 그들이 애독한 서적들을 살펴보는 것으로도 알 수 있겠다. 고려 시대 광종의 경우는 <정관정요>를 애독하였다고 하며, 그 <정관정요>는 고려의 중요 제왕학 교제가 됐었다.

예나 지금이나 리더십 강의는 중요했다. 특히 동양에서는 뜻이 있는 군주들은 어떻게 통치를 해야 할까를 두고, 많은 논의가 있었고, 효율적이고도 바람직한 리더십을 연구한 학문이 바로 제왕학이다. 지금 시대에서 성행하고 있는 리더십에 대한 책들의 뿌리는 태고의 인간이 집단과 국가를 가지게 되면서부터 자연스레 발달했었고, 지금도 성행하고 있다. 예전에는 제왕학이란 학문이 군주나 국본인 세자를 위한 학문이었다. 그러나 시대는 발전했고 이미 절대적인 신분계급제는 타파됐으며, 이제는 누구나 능력만 있다면 리더를 꿈꿀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바야흐로 리더십의 시대라고 할 만 하다.

<군서치요> 역시도, 그 시대의 리더십을 고민한 책 중 하나였었다. 이 책은 당 태종 이세민이 집권하면서 그의 명으로 편찬된 제왕학의 책이었다. 당 태종 이세민은 어린 시절 현무문의 변을 통해 정권을 찬탈한 뒤, 제왕에 올랐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아버지 고조와 함께 전선에 앞장섰으며, 당나라 개국의 큰 공을 이룩했었다. 그러나 나라의 건국 뒤에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형제들과의 권력 다툼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싸워왔었고, 칼로써 형제들을 무찌르고 그렇게, 권력투쟁이 승리하여 권력의 정점에 섰다. 그는 수나라의 몰락을 지켜보며 느꼈었다. 권력이라는 것은 집권하기보다 유지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칼을 빼 들은 그여서, 통치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깊이 독서를 할 수도 없었다. 그런 그가 왕이 되자마자 자신의 통치를 위한 제왕학서를 편찬하라고 당대의 명신(위징을 포함한)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그렇게 하여 완성된 당나라 태종의 제왕학서가 바로 <군서치요>라는 책이었다.

보통 우리는 당 태종 이세민 하면 <정관정요>를 떠올린다. 물론 <정관정요>는 당 태종의 행적을 기록한 책이며, 당 태종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사료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관정요>라는 책은 당 태종 사후에 오긍이라는 사관이 사료를 참고하여 만든 책이다. 즉 당 태종이 집권할 시기에 당 태종이 애독했던 책은 바로 <군서치요>라고 할 수 있겠다.

내용상 <정관정요>와 <군서치요>를 살펴보자면, <정관정요>가 당 태종의 행적들을 중심으로 밝힌 역사적 성격의 제왕학서라고 한다면 <군서치요>는 중국 고대의 여러 제자서들과 경서, 그리고 역사서들에서 군주의 통치에 도움이 될 만한 구절들을 집대성한 철학적 성격(이론 중심적)의 제왕학서라고 할 수 있겠다. 즉 <정관정요>는 당 태종의 행적들만을 살핀 역사서라고 보면 되겠고, <군서치요>는 중국의 고대 이래로 내려져오는 철학과 역사를 통치론으로 집대성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군서치요>는 중국 당나라를 대표하는 제왕학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이와 비슷한 책이 떠올랐다. 바로 송나라에서 만들어진 유가적인 제왕학서 <대학연의>가 떠올랐다. 두 책은 경(철학)과 사(역사)가 만났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대학연의> 역시 유학의 이론서들과 <사기>와 <한서>, <자치통감> 등의 역사서들을 혼합시켜서 군주의 통치를 논하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책의 성향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가령 예를 들면 <대학연의>는 철저하게 유학 중심적인 제왕학서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대학연의>에 인용되는 경전들을 살펴보면 대체적으로, 유가 서적들이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군서치요>를 살펴보면 유가에서 극도로 꺼리는 제자서 들을 대거 포용하여 집대성하고 있다. 바로 법가의 <한비자>, 도가의 <노자>, 병가의 <손자>, <울료자> 등등 유가를 포함한 40여 가지의 제자서를 분류하여 군주의 통치에 도움이 될 만한 부분들을 모두 인용하여 밝히고 있었다.

물론 <군서치요> 역시도, 기본은 유학 중심적인 사고가 깔려있다. 당 태종 이세민 역시도 유학을 존중했고,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도 유학을 중시하는 분위기였다. 유학이 추구하는 인과 예 의 지 등등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학연의>가 완강하게 유학적 사고를 고집하고 강요하는 느낌, 그리고 타 사상에 대한 비판을 논한 부분 등에서 보이듯, 다른 사상에 대한 관대하지 않은 부분이 <군서치요>에는 없었다. 유학을 존중하되, 다른 제자학에 대해서도 군주의 통치에 도움이 되는 구절들은 사상을 가리지 않고 기록하여 남기고 있었다. 즉 <대학연의>에 비해 사상적 편협함은 보이지 않았다는 부분이 느껴졌었다.

이 부분은 <군서치요>가 나온 당나라와, <대학연의>가 나온 송나라의 사회적 분위기도 반영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당나라의 경우는 어쨌든 북방 민족이 건국한 이민족의 국가였다. 당 태종 이세민은 유학을 존중했지만, 도교를 국교로 선택할 만큼 도교에 대해서도 호의적인 군주였었다. 즉 사회 분위기가 사상적 편협함이 송나라보다는 덜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한족이 세운 송나라의 경우는 전형적인 유교 지향적 사고 관념을 보여주고 있고, 정자와 주자를 비롯한 학자들이 성리학을 개척했었다. 그 과정에서 타 사상들은 모두 배격됐었고 성리학만이 유일한 국학으로 인정받았다. 그 이론에 입각하여서 <대학연의>가 편찬됐었다.

또 다른 차이점은 <군서치요>의 편찬자들은 여러 명이었던 것에 비해, <대학연의>의 저자는 진덕수 한 사람이다.

<군서치요>가 또 중요한 점은 풍부한 제자서의 인용 덕분에, 지금 원본이 손실된 책들의 중심 내용이, <군서치요>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사료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책인데 우리나라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당나라를 깔보는 시각도 있었을 것이었으며, 결정적으로 <군서치요>에는 사료적인 가치를 의심할 만한 의문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사실 중국에서 원본이 없어진 책이다. <군서치요>는 <대학연의>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방대한 저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책에 논의된 권수는 40권이라고 하는데, 이 책이 중국 본토에서는 오랜 내전 끝에 없어졌었다. 그럼 어떻게 이 책이 전해질 수 있었느냐? 책이 제작되고 일본에 전수한 적이 있는데, 그 때문에 이 책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일본에서는 역대 천황들이 이 책을 보며, 제왕학을 익혔다고 했으며, 도쿠가와 이에야스 역시도 이 책을 굉장히 중시했다고 나온다.

일본에 전파된 <군서치요>는 세월이 지나 일본에서 역으로 전파되어 중국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책 몇 권이 소실됐다.) 아무튼 그런 기구한(?) 운명의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진본이 없어진 책이라서, 사료적 가치에 대해서는 학자들에게 논쟁을 불러일으킬 공산이 컸다. 나 역시 이 책의 존재를 <정관정요>에서 발견했었는데, 국내에는 번역되지 않은 제왕학서라 기억에 사라졌는데, 이렇게 책을 만나게 되니 기쁘기 그지없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유학을 존중한 국가였다. 따라서 유학 중심적인 <대학연의>를 제왕학의 교제로 선택했고 다른 사상은 인정하지 않았는데, 지금도 번역되는 동양 고전 책들을 보면 아무래도 유학 중심적인 번역이 많다. 이 부분도 참 아쉬운 부분이다. 다양한 사상의 고전들을 번역해야겠고, 유학의 중요성은 인식하되, 유학에 집착하는 관념은 버려야 하지 않을까도 생각했다. 바로 <군서치요>와 같은 주옥같은 고전들도 원전 번역이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책을 보며 생각했었다.

아쉬운 점은 이 책은 <군서치요>의 원전이 아니다. 샤오쟝센이라는 엮은이가, 방대한 군서치요를 일반인들이 보기 좋게 주제별로 나눠서 재편집하여 해설을 가한 '안내서'와 같은 책이다. 책을 읽어보니 최대한 <군서치요>의 철학을 잘 알려주려고 노력했지만, 아무래도 원전을 다 밝혀놓은 것이 아니라 아쉬운 마음도 있었다. 책은 요약 안내서이지만 쪽수가 535쪽 양장본으로 상당히 두툼한 책이었다. 그만큼 원전이 방대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어쨌든 바쁜 현대인이, 방대한 고전인 <군서치요>를 읽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아니 솔직하게 말해서, 국내에서는 이 책 외에는 <군서치요>를 볼 수 있는 책이 없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조금 욕심이 나서, 책의 원전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과연 번역할 사람이 있을지도 의문이겠지만...)

책의 해석이 조금 중화주의 사상 중심적인 시각이 보여서 조금 거슬리긴 했지만, 그런 부분을 스킵하고, 본다면 상당히 도움이 되는 부분들이 많았다. 그리고 내가 보지 못한 문헌들의 내용도 많이 있어서 그 부분들을 확인하는 과정도 재미있었다.

다만 이렇게 <군서치요>라는 책을 편찬한 당 태종 이세민도, 현신들이 먼저 죽자, 말년에는 꽤나 독단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실정을 저지르기도 했다. 게다가 가장 결정적인 것은 후계구도에 대한 취약성도 나타났다.

당 태종과 조선 태종은 참으로 닮았다. 부왕인 태조를 도와 개국의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과, 아버지를 따라 종군하여 전쟁 경험을 두루 겪은 점, 형제들과의 권력 투쟁에서 승리하여 용상에 올랐던 점, 그리고 나라의 초석을 다진 점 당 태종은 <군서치요>를 바탕으로 정치를 했고, 조선 태종은 <대학연의>를 바탕으로 통치를 했다.  참으로 닮은 부분이 많다. 하지만 당 태종과 조선 태종의 차이점은 앞서 말했듯 후계 구도다. 당 태종 사후 당나라는 급격하게 왕권이 약화됐지만, 조선 태종은 세종이라는 군주를 배출했다. 당 태종은 말년에 고구려 원정이라는 무리수를 뒀지만, 조선 태종은 자신이 할 일을 정확하게 알고 그 임무를 충실하게 했다. (사담으로 이방원은 역사상 과거 급제를 한 유일한 공인 능력 인증 군주라는 점도...)

 아무리 이런 통치학의 책을 발간하고 익혔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실천하기란 어렵다는 것을 당태종 이세민을 통해 확인할 수도 있겠다. 아무리 좋은 글을 집대성하고, 통치에 도움이 되는 사상을 엮는다 한들, 끝까지 실천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세상에 좋은 글은 차고 넘치지만, 그 좋은 글을 한결같이 실천하기란 참 힘든 법이다. 이 부분이야말로 리더가 될 사람들은 깊이 숙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책은 완역이 아니라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래도 국내에서 발간하지 않은 <군서치요>, 그 <군서치요>의 요체를 밝힌 핵심 안내서를 만날 수 있다는 부분에서, 기쁨도 있었다. 하루빨리 완역본이 발간되길 기대하고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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