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식당 - 요리사 박찬일의 노포老鋪 기행
박찬일 지음, 노중훈 사진 / 중앙M&B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침에 자고 일어나 한 챕터를 읽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보는 음식의 글은 나를 배고픔으로 몰아가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짬짬이 읽다 보니, 다 읽게 됐었다. 책의 이름은 <백년식당> 요리사 박찬일이 쓴 식당 리뷰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을, 신간인 이 책을 굳이 내 돈 주고 산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나 역시 블로그를 하고 있고, 나 역시 식당 리뷰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솔직하게 말해서 식당들을 리뷰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물론 대충 사진 몇 장으로 때우고, '맛있었다.' , '우와 짱' 이런 식의 수식어로 치장한다면 한결 수월하다.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르듯, 나는 그런 리뷰를 지향하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먹은 것들에 대해서 생생하게 표현하고 좀 더 입체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싶었다.


인터넷에 난무하는 숱한 리뷰들과는 차별화하기 위해서, 매번 고심하고 고심했다. 그래서 글 쓰는 요리사인 박찬일의 신간을 참고하려고 이 책을 구매했었다. 두 번째 이유는 그가 소개하는 식당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다. 나 역시 한 사람의 맛객이므로, 맛있는 식당들에 대해서 굉장히 관심이 많고 찾아가서 먹어보고도 싶은 그런 식객이기도 하니까,


세 번째는 오래가는 '식당의 조건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책은 우리나라 전국의 오래된 노포들을 취재하고 있었다. 여러 맛집을 다룬 책과는 달리 18개의 노포를 다루고 있었다. 왜 이 책에 소개된 노포들이 살아남았는지 살아남은 조건은 무엇인지, 과연 좋은 식당의 조건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보고 싶었다.


책을 읽으며 많은 것을 느꼈다. 첫 번째로 해박한 박찬일 요리사의 지식이었다. 물론 그는 요리사고 이 분야에 전문가이지만, 그가 쓴 18개의 탐방기를 읽다 보면 혀를 내두른다. 위로는 고전의 문헌에서부터 아래로는 재료의 맛과 질에 대해서까지, 그리고 다른 나라의 비슷한 음식들과 비교와 차이까지 해박한 지식을 동원하여 썰을 풀고 있었다.


두 번째로 내가 느낀 것은 실제적으로 음식의 맛을 묘사한 대목은 적었다. 18개의 음식점을 리뷰하며 342쪽을 소모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저자는 가게의 음식만을 설명하고 있지 않았다. 주인과의 심도 있는 인터뷰를 통해서, 재료에 대해서, 그리고 식당의 역사에 대해서, 시대상에 대해서도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즉 '음식'만을 위한 리뷰가 아니라 '노포 그 자체'를 리뷰하고 있었다. 노포의 세월과, 노포의 역사, 음식의 재료와 공수, 서비스 등등 여러 가지 다방면적으로 식당을 소개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 부분은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했었다.


나 역시 식당으로부터 초대를 받고 리뷰하러 가는 경우도 몇몇 있는데, 이때 나의 리뷰의 포인트는 음식에 집중을 했었었다. 그러나 사실 음식을 메인으로 한 리뷰는 한계가 있다. 맛있는 부분을 묘사하는 것에는 아무리 길게 쓴다 한들, 한계가 있다. 따라서 나도 초대받아서 리뷰를 하는 경우에는 음식의 맛도 리뷰하겠지만, 가게 주인과 대화를 많이 나눠서 가게를 운영하는 철학과 재료의 공급 등등 그런 부분도 심도 있게 설명해야겠다 느꼈었다.


내가 책을 읽으며, 오래가는 음식점, 노포들의 공통점을 추려 봤는데 다음과 같다.


1. 가게의 철학이 있으며, 가게만의 철학을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2. 가게의 중심은 지키되, 시대적으로 변동된 음식 취향을 참고한다.

3. 주인이 편하게 쉬지 않는다. 특히 포스 있는 집들은 주인이 요리를 담당하고 있다.

4. 종업원들을 쉽게 자르지 않는다. 그만큼 주인의 덕이 돋보인다. (20~30년 같은 가게에서 일하는 분들도 많다.)

5. 최상의 재료를 사용하고 있으며, 재료 공급처를 쉽게 바꾸지 않는다.

6. 선대의 맛을 보존하려고 애쓴다.

7. 가게가 허름하더라도, 음식은 굉장히 깔끔하게 손질하여 낸다.

 

사실 우리나라 요식업은 그 역사가 짧다. 그래서일까, 이 책에 소개된 가게들의 역사만 읽더라도, 근현대의 여러 역사들이 맞물려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이 노포들을 기록한 이 작은 에세이는 읽기에 따라서, 음식으로 본 근현대사라고 칭해도 무리가 없지 않나 싶다.


그리고 숱하게 나와있는 맛집 소개서들은 몇 백 개의 음식점을 그저 팸플릿처럼 소개하고 있었는데, 이 책은 딱 18개의 업체만 소개하고 있었다. 그것도 그냥 소개하는 것이 아닌 가볍게 스쳐서 알려주는 것이 아닌, 맛깔지게, 역사성 있게, 음식의 지식을 동원하여 해박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그래서 스토리가 있는 에피소드가 살아있는 이 책의 썰이 좋았다.


특히나 술 먹고 내가 단골처럼 해장하던 청진옥에 대해서도 이 책을 통해 잘 알게 됐었다. 아버지가 주로 갔던 용금옥에 대해서도 알았고, 고향인 대구의 유명한, 상주식당의 추어탕과, 육개장 맛집 옛집식당도 굉장히 반가웠다. 그 외 내가 모르던 열차집이라는 곳과 부산의 맛집들, 특히 서면의 마라톤집은 꼭 가고 싶은 집으로 찍어놨었다.


확실히 요리사인 박찬일이라 그런 것일까, 부담 없고 편안하게, 그러면서도 깊이 있게, 그리고 글 만으로도 꼬르륵거리게 잘 써논 것 같았다.


책의 편집도, 마음에 든다. 손 때가 잘 묻기 쉬운, 마모되기 쉬운 종이로 겉지를 만들어서 남들은 책이 상하지 않을까 걱정하는데, 나는 오히려 이런 편집이라서 '백년식당'이라는 콘셉트에 더 어울리지 않나 싶다. 책의 겉지가 좀 마모되면 어떠랴, 백년식당 이라는 이름처럼, 다소 좀 흐트러지고 닳더라도, 어울리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아쉬운 점은 내가 알고 있는 오래된 집들이 대거 없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지역적으로도 강원도와 전라도의 오래된 맛집들이 없다는 점도 아쉬웠다. 이 부분은 필자도 아쉬움을 토로한 부분인데, 나도 읽으면서 다소 아쉬웠다. 후에 속편을 발행한다면 더 많고 다양한 집들을 소개해줬으면 하는 기대감도 있다.


너도 나도 식당을 하는 시대, 그래서 흔해진 것이 요식업이지만, 맛집 블로거들에 의해, 맛집에 대한 위상도 높아진 것이 지금의 식당업의 현주소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식당 일이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그런 부분을 이 책을 통해서 읽어낸 것 같았다. 단지 여기에 소개된 집들이 궁금해서 이 책을 사는 이유도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을 보는 독법은 다양하다. 나처럼 책을 읽으며 나의 리뷰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특히나 요식업을 하시는 분들의 눈으로 보자면, 왜 이 노포들이 살아남고 인정받는가에 대해서 공부할 수 있는 부분들도 많다.


분명 노포라고 해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오래된 것이 살아남으려면 역사성도 중요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역사성에 못지않은 깊이다. 한결같이 내려오는 깊이와 역사성 이 둘을 갖췄을 때, 우리는 그 집을 진정한 노포라고 칭할 수 있겠다. 숱한 식당은 많지만 '역사'와 '깊이' 둘을 가진 식당은 흔하지 않다. 그런 부분에서 저자가 소개하는 이 집들은 '깊이'와 '역사'가 서려 있는 집들이다.


책의 제목처럼 우리나라에도 '백 년이 된 역사와 깊이가 서린 식당'이 많아지길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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