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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 선비들의 생활사 ㅣ 인간사랑 중국사 3
쑨리췬 지음, 이기흥 옮김 / 인간사랑 / 2014년 8월
평점 :
나는 개인적으로 인문정신이 살아있는 출판사를 굉장히 좋아한다. 그래서 눈여겨 보고 있는 출판사들이 꽤 있는데, 몇몇 예를 들자면, '글항아리', '한길사', '나남', 그리고 '인간사랑' 출판사 등등을 선호한다. '인간사랑' 출판사는 신동준 씨의 고전들이 대부분 출판되고 있는데, 나는 신동준 씨의 번역이 꽤나 마음에 들기 때문에 몇몇 저서들을 구매했고, 그 출판사인 '인간사랑'을 좋아하는 편이다. (기존 학계와 상반된 주장의 번역을 하시는데, 가끔 자의적인 해석도 보이시지만, 개인적으로 학문의 획일성을 자극하는 좋은 예라고 느껴진다.)
그런 인간사랑에서 교양서로 '중국 선비'들을 고찰한 책을 번역했다. 내가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 '올바른 선비정신'인데, 그런 내 관심에 부합되기도 했고, 우리의 문화라고 생각할 법한 선비정신을 중국에서는 어떻게 표현하고 적용되고 있는지 궁금증도 있었기 때문에, (사실 원류로 따지자면 중국이 선비정신의 원조가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의 선비정신은 중국의 문화를 많이 받은 가운데 독자적으로 발전한 사상인 것 같다.) 책에 대한 기대도 컸었다.
책은 두툼했다. 648페이지에 걸쳐 중국의 선비들에 대한 모든 것을 고찰하고 있었다. 선비의 정의에서부터 시작하여, 독서, 과거, 의식주, 유람, 사회활동, 모임, 취미, 여자 등등을 고찰하고 있었으며, 더불어 저자가 가르치는 과목이 '위진남북조사'가 있어서인지 따로 위진 남북조의 선비 생활에 대해서 독립적으로 다루고 있었었다.
일단 좀 비판하고 싶은 것이, 책을 폈을 때, 놀란 점이 머리말이 없다는 점이다. 물론 역자 후기가 있긴 하지만, 책을 펴자마자 튀어나오는 목차와 바로 책의 본문이 나오는 것에서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나는 책을 볼 때 머리말을 항상 먼저 보는 편인데, 인쇄상의 문제인지 아니면 머리말을 편집하지 않은 탓인지 (설마 저자가 머리말을 안 썼을 리가...) 아무튼 이 부분이 굉장히 아쉽다. 머리말이 없는 책이라면 역자 서문이라도 앞에 배치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이 부분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책의 제목에서 풍기듯, 고대의 선비뿐만이 아니라, 중세와 근세의 선비들까지, 춘추시대 이래로 청나라 시절까지 다양한 중국 선비의 모습들을 밝히고 있었다. 따라서 책 제목을 그냥 '중국 선비들의 생활사'라고 이야기하거나 시대성을 표시하자면 굳이 고대라고 칭하기보단 '중국 옛 선비들의 생활사' 였으면 어떨까 싶기도 했다. 아무래도 고대라는 구분이 지어진 단어보다는 옛날이라는 모호성이 있는 단어(고대 중세 근세를 포함하는 부분이기 때문에...)가 적합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책 제목에서의 '고대'는 시대적 분류의 고대라기보다는, 내가 의미한 옛날이라는 그런 의미로 써진 것 같지만.)
책의 부분들이 워낙 소상하고, 시대별로 선비들의 다양하고 엽기적인 (몇 가지 예로 들면, 친구를 만나고 싶어 멀리서 친구 집을 방문했다가 문 앞에서 마음이 바뀌어 집으로 돌아왔다는 부분) 모습들이 나타나져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선비의 모습은 다소 꼿꼿하고 격식 있는, 고루한 유학적 사고 관념에 입각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데, 이 책에 나온 중국의 선비들은 그런 모습도 있긴 했지만, 다소 자유분방한 모습들도 있었다.(특히 위진남북조 시대의 선비들) 나는 다소 선비라는 이미지와 유학적 이미지를 연결하여 생각했는데, 이 책은 그런 부분에서 도가에서 말하는 선비의 이미지도 제시하고 있으며 비단 유가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상에서 강조하는 선비 정신들도 포괄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물론 종국에 가서는 유학적인 모습의 선비들이 많이 설명되긴 했지만 말이다.
특히 마지막 장, 위진남북조의 격동의 시대의 선비들의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선비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으며, 자유분방하고 구속에 얽매이지 않으며, 파격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경향이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양한 시대의 선비들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저자의 논의에서 강조 받는 시대는 아무래도 '위진남북조'의 선비들이었다.
'위진남북조' 선비상을 읽으며 생각했던 것은 위진남북조의 영웅인 '조조'가 떠올랐다. 조조는 유학을 존중하면서도 자유분방한 도가의 학문도 익혔었다. 그의 치적에서 볼 수 있듯, 파격적이고 격식 없는 통치의 방침도 어쩌면 그런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중국의 선비들은 그 땅덩이만큼이나 굉장히 다양한 모습을 지녔으며, 많은 왕조를 거쳐왔듯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중국의 선비들은 다소 네임밸류가 있는 선인들만 기억했는데, 이 책에는 그런 네임밸류가 강한 선비들은 물론, 다소 생소한 선비들의 행적까지도 소상하게 밝히고 있었다.
내가 가장 유념해서 본 부분은 독서 부분과, 과거시험 부분, 그리고 음식에 대한 부분과(술 포함), 여자에 대한 부분이었다.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음식에 대한 부분이었다. 특히 중국의 여러 선비들의 음식에 대한 글들을 읽으며, 놀라웠던 점은
음식을 연구했던 선비들이 육식보다는 채식을 선호하고 과식보다는 소식을 선호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음식을 어떻게 먹어야 건강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찰들을 읽으며, 지금 현재에도 통용되는 지혜들이 그대로 녹아 있다는 것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더불어 가장 흥미 있었던 부분은 선비와 기생의 관계를 다룬 부분이었다. 예로부터 남녀 간의 로맨스만큼 풍부한 관심거리가 없듯, 중국 대륙에서의 선비와 기생의 이야기들도 풍부했다. 조선과 마찬가지로 뛰어난 중국의 기녀들 역시 높은 교양 수준을 갖췄으며, 선비들에게 육체적인 쾌락을 넘어선 정신적인 안정을 주려고 노력했었다. 뛰어난 선비들 역시도 색욕을 밝히기보단, 정신적 교제를 우위에 두고 기녀들과 시나 글을 주고받았었다.
재미있는 부분은 문예에 뛰어난 선비들의 시나 부가 기녀들의 가요로 전해져 유행가처럼 불렀다는 부분에서, 요즘 시대의 가요 열풍과 여중고생들의 팬클럽을 연상하기도 했었다. 책에서 아쉬운 부분은 선비와 아내, 선비와 첩에 대한 부분은 거의 없는데 반해 선비와 기녀에 대한 부분만을 다룬다는 점. 이 부분이 아쉬웠으나, 한편으로는 수긍한 부분이, 그 시절 선비의 결혼은 어쨌든 자신의 의지보다 타율적인 정략적인 결합이 많았고, 기녀와의 만남은 아무래도 자의적이고 적극적인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선비의 여성을 다룬다면 기녀를 다루는 것이 맞겠구나라고도 생각했다. 다만 아내에 대한 부분이나 가정생활 육아나 그런 소상한 부분도 밝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기녀와 다룬 부분이 또 재미있던 것은 기녀들과 선비의 시가 인용되고 있는데, 그 시들이 아름다운 구절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님을 위한 애절한 마음을 절절하게 노래한 기녀들, 그리고 점잔 빼는 이미지인 선비들이 솔직하게 애정을 토로하는 부분에서, 사랑이라는 것은 고하를 막론하고 뜨겁구나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만큼 이 챕터의 시들은 뜨거웠고 생기가 있었으며, 애절했었다. 다른 과거나 독서 취미 등등은 개인적으로 생각했던 부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서 아쉬웠었었다.
책은 대체적으로 중국의 선비들을 시대별로, 다양한 모습들을 잘 나타내고 있었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그런 다양한 모습의 선비들을 다소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부정적인 부분들도 다루고 있었다. 예를 들어보면, 기녀와 선비를 다룬 부분에서, 선비와 기녀가 아름다운 로맨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을 통하고 새로운 여인을 찾고, 이전의 기녀에게 이별을 고하는 매몰찬 선비들의 모습도 있었다.
책의 주된 서술 방식은 인용과 설명이었다. 설명은 다소 짧고 간결하게, 그리고 인용은 풍부하게 하여서, 솔직하게 말해서 좀 지루한 전개 부분도 있었다. 선비정신이나 선비 분야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다소 지루함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비교적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고전의 인용도 엿보였고(생소한 시도 많았다), 더불어 국내에서 알려지지 않은 마이너한 중국 선비들의 모습도 볼 수 있으며, 다양한 모습의 '선비'를 확인할 수 있었다.
동양의 계급에서 선비는 최상위를 담당하고 있는 계층이다. 士라는 계급은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대체적으로 문인에 속하였고 일본에서는 사무라이, 무인의 계급에 속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자국의 선비정신만을 연구했으며, 자국의 선비상에서만 교훈을 얻으려 노력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중국의 선비에 대한 연구는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따라서 중국의 선비를 다룬 이 책이, 반가우면서도 생소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 책을 계기로, 중국의 선비정신에 대해서도 대중에게 활발하게 소개되었으면 좋겠다란 생각을 했다.
어쨌든 다양한 중국의 선비의 모습 속에서, 버려야 할 부분도 있었으며, 엽기적이고 기괴한 부분도 있었으며, 본받아야 할 부분도 있었다.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대륙의 선비'의 모습을 다양하게 확인할 수 있어서, 굉장히 유익하게 독서했던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