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고전과 역사, 비판적 독법
천쓰이 지음, 김동민 옮김 / 글항아리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특정 출판사를 개인이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령, 비슷한 시리즈의 문학 전집을 모으고 있다는 이유라거나, 자신에게 딱 들어맞는 책의 표지를 만들어 낸다거나, 좋은 내용의 양서를 많이 낸다거나 등의 제각각의 이유가 있다. 나 역시 사람이라서, 편향된 마음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내가 주목하는 출판사는 다름 아닌 '글항아리' 출판사다.

 

글항아리 출판사는 인문과 고전, 역사에 대한 출판사로 문학동네의 하위 출판사다. 다소 높은 가격 때문에 사실 대중화되진 않은 출판사지만, 이 출판사를 주목하는 이유는, 이 출판사의 이름으로 달고 나오는 책들이 하나같이 다, '돈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좋은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출판사이니 어느 정도의 상업적인 부분을 배제할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기호에만 편향된 책을 펴내지 않고, 정말로, 좋은 양서들을 펴 내려고 노력하는 출판사기 때문이다.

 

그런 출판사의 책이라서 더욱 믿음이 갔던 책이다. 이 책 <동양 고전과 역사, 비판적 독법> 역시도 아주 좋은 내용과, 흠잡을 곳 없는 논의 전개 등이 돋보였던 책이다. 책이 나온 지 한 달이 다 돼가는데도, 이 책에 대한 짤막한 서평이 없다는 부분이 애석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과문하지만 내가 이 책에 대해서 느낀 점을 몇 자로 추려내볼까 한다.

 

책의 주제는 고전과 역사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에 대한 저자 천쓰이의 관점이 담긴 책이다. 저자의 책이 범상치 않다는 것은 서문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죽도록 책만 읽거나, 죽은 책을 읽거나, 책만 읽다가 죽지 마라'

 

말장난 같은 경구로 시작되는 서문이지만, 깊이 음미를 해 볼 만했고, 나 역시도 여러 가지를 돌아 볼 수 있었다. 이 간단한 경구를 통해 독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서문부터 비판적 독법에 대한 개괄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책을 읽는 이유, 근본적으로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해서, 저자가 생각하는 것은 '책을 읽는 이유란, 생활과 인생을 변화시키기 위해 읽는다.'라는 다소 의도적인 관점. 그 관점을 통해 독서에 대해서 설명한다.

 

딴죽 걸 마음은 없다만, 모든 책을 삶과 인생의 변화를 목적으로 읽는 것은 아니다. 책이라는 것에게서 교훈을 얻는다는 것만 주 목적으로 생각하고, 의미를 둔다면, 그것은 독서의 방향의 획일화라고 생각한다. 그럼 문학이 표현하는 모든 미사여구와, 아름다운 수식어는, 결국 어떻게 보면, 그런 통일된 획일적 가치관을 표현하기 위한 목적성을 띄게 되는 것이고, 그것은 본연적이고 순수한 아름다움의 표현과는 거리가 멀어지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독자의 입장에서도, 책이라는 것을 교훈적 가치에 입각하여 볼 수 있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독서 = 좋은 것이라고 인식된 것에는 어쩌면 이런 의도적인 교훈성만을 내포하고 있고 그것에 대한 대중의 무비판적인 수용을 나타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책을 읽는 것이 의도적인 교훈을 얻기 위한 목적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독서의 독법에는 그런 부분이 크겠지만 그것 외에도 재미적인 부분이나 단순한 흥미를 위해 책을 볼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만 한다. 저자의 독서 논점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부분은 이 부분이었다.

 

아무튼 저자의 논의는 서문에서 밝힌 것과 같이 이런 교훈적 독서를 하기 위해서는, 고전과 역사서를 비판적으로 봐야 함을 설명하고 있다. 가장 표현이 좋았던 부분은 이 부분이었다.

 

'책 읽기와 사람 읽기가 동시에 이뤄져야 하고, 역사 읽기와 현재 읽기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부분.'

 

책만 보다 보면 간과하기 쉬운 것이 바로, 책의 지식들만 머리에 가득 차서, 현재와 현재를 살아가는 세속을 보는 눈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이다. 책의 담론과, 세속의 속성을 비교해보자면, 책이라는 부분이 훨씬 더 이상적인 논의가 많다. 이것은 아무리 현실론적인 책이더라도, 실제 현실과 현실성이 높은 책, 두 가치를 놓고 비교했을 때는 누가 어떤 미사여구를 동원하더라도, 그것이 실제로 현실론적인 책이더라도, 실제 세속보다 더 현실적일 순 없다. 그러나 많은 독서가들은 이를 묵과한다.

 

천쓰이는 말한다. 독서 (교훈을 얻기 위한)의 가장 중요한 점은, 이론화된 책의 내용을 어떻게 현실에서 잘 구현을 하느냐, 그것이 바로 올바른 독서라고 설명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책을 볼 필요성도 있지만, 세상과 세속을, 인간 읽기가 수반되지 않은 독서는 죽은 독서이고, 세상을 통한 독서가 아닌 독서를 위한 독서가 되어버린다면, 그 독서는 결국 생명력을 잃는다는 논의를 이야기하고 있다. 깊이 있게 공감을 했다.

 

깊은 논의의 고전들을 읽었을 때, 우리는 감동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고전 독서는 그 감동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한다. 그것을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가는 생각하지도 않는다. 몇 차례 습작에서 이야기를 했듯,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한다. 좋은 책을 읽었다는 것, 그 이상으로 투자를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좋은 내용을 어떻게 내가 현실화를 시켜서, 어떻게 '나만의' 지식으로 숙성을 시켜야 하는가, 사실 책을 읽고 나서, 이런 사색의 시간이 더 중요하다. 특히 고전이나 역사서를 읽을 때는 이런 사색의 시간이 좋은 책일수록 길어질 수밖에 없다.

 

책 제목인 <동양 고전과 역사, 비판적 독법>이라고 하지만, 사실 예시로 들고 있는 주제들이 동양 역사와 고전에 대한 것일 뿐, 본질적으로 동양 고전이나 서양 고전을 읽는 방법에는 차이가 없다. 그래서 책은 동서양의 고전과 역사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독서 비평서'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 특유의 비판적 감성으로 독서에 대한 담론을 이어나가며, 기존 역사에 대한 부분들에서 진실이라는 과정을 어떻게, 캐내고 비판하며 볼 수 있는가, 역사라는 텍스트를 통해 어떻게 현세의 부분을 볼 수 있는가에 대한 내용, 그 내용이 바로 이 책의 주제라고 할 수 있겠다.

 

책은 3 부분으로 나뉜다. 1부 고전 진리의 해체적 독법, 2부 역사 진실의 재구성 독법, 3부 역사 현장에서 발견한 작은 비밀, 이렇게 3가지로 이뤄졌는데, 그냥 제목으로 보면 1부는 고전을 읽는 방법, 2부는 역사를 읽는 방법, 3부는 작은 비밀이라는 떡밥으로 독자의 관심을 야기하는 구성을 가졌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내가 책을 조감하고 읽어본 결과, 책의 모든 핵심은 1부에 다 담겨있다. 즉 이 책을 읽을 때는 처음 부분인 1부를 읽을 때 가장 집중을 하고 봐야 한다. 1부에서 천쓰이는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고, 고전을 어떻게 읽어야 하고, 심지어 역사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모든 이론을 다 말한다.

 

뒤이어지는 2부와 3부의 경우는, 앞서 말한 1부의 생각에 입각한 천쓰이 만의 비판적 독법에 대한 담론을 담은 것으로 특히 2부 역사 진실의 재구성 독법에서는 <사고전서>에 대한 내용과, 죽림칠현에 대한 내용을 가지고 어떻게 비판적 독법을 수행하는가를 저자의 관점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다소 실망을 했었다. 독서법이나 비판적 독법에 대한 원론적인 설명을 기대하고 책을 샀는데, 책의 앞부분만 그 내용이 담겨있고, 2,3장은 저자가 역사적 사실을 보며 비판적 독법을 한 독서록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2,3장을 찬찬히 살펴보며, 저자 천쓰이라는 사람이 앞에서 말한 비평적 읽기의 원론을 어떻게 적용하고 있고, 어떤 부분에서 역사가 감춘 진실 들을 캐내는 것인지에 대한 사고 과정의 흔적을 볼 수 있었으며, 특히 3장에서는 독서를 통해 썩은 현실에 대해서 조감하는 독법, 그 사유의 흐름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음미할 수 있었다.

 

즉 말하자면 1장이 <원론>이라고 보면 되고 2,3장이 저자의 비판적 독법의 <예시>라고 보면 되겠다. 수학으로 말하면 1장이 공식이 담긴 부분 2,3장이 연습문제 응용문제를 선생님이 풀어 놓은 모범 답안지.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물론 천쓰이의 모범 답안지 독법이 독서의 궁극적인 답은 아니다. 하지만, 저자가 책 곳곳에서 보여주는 비판적 견해, 작은 것도 지나가지 않는 부분 등을 볼 수 있었고, 그런 부분에서 나는 저자의 비판적 독서법에서 많은 부분을 배웠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사고전서>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 정말로 탁월했다. <사고전서>라는 문화적 사업 뒤에 숨겨진 사상적 탄압이라는 해석, 정말로 신선했다. 이 부분은 내가 지식이 없는 부분이라 올바른 판단은 할 순 없었지만, 저자의 사고 과정을 지켜보면서, 저자의 칼날 어린 비평적 주장에 대해 어쩌면 카타르시스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만큼 흥미 있었던 챕터였다.

 

수능 언어영역에서 비문학 독해 읽기 능력의 측정은 여러 부분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사실적 독해와, 비판적 독해 부분이다. 비판적 독해의 전제조건은 사실적 독해에 있다. 책이 전달하는 것들을 왜곡 없이 사실적으로 읽어 내는 것이 바로 사실적 독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사실적 독해가 잘 이뤄져야지 그것을 토대로 비판적 독해를 할 수 있다.

 

그런 부분에서 본다면 이 책은 독서 초보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은 아니다. 다만 어느 정도 독서가 익숙하고, 자신의 독서를 뒤돌아보며, 발전을 갈구할 때, 이 책은 많은 통찰을 주는 것 같다. 비단 동양 고전뿐만이 아니라, 서양 고전이나 여러 논설문 문장들을 볼 때, 비판적으로 봐야 할 때, 이 책이 생각날 것 같다.

 

책의 예시가 꽤나 깊은 곳까지 들어간다. 따라서 일반인들이 가까워하긴 힘든 '중국'의 예시들, 따라서 사실 책 자체가 대중성이 있는 책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것이 이 책의 아쉬운 한계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예시가 좀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려운 예시의 거부감을 조금이나마 극복할 수 있다면, 이 책은 많은 것을 주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저자 천쓰이 선생은 이 책으로밖에 만나지 않았지만, 굉장히 겸손한 분이신 것 같았다. 그가 쓴 책의 서문은 '한국어판 서문'이라고 나와 있었고, 자신의 이 작은 책이 한국에 소개돼서 더없이 영광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책 역시도 개인의 저작이고 볼품없는 책에 지나지 않지만 관심 갖는 사람이 설령 없더라도, 자신의 마음과 생각과 희망을 고민한 서적이기 때문에 아무런 여한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그의 서문에서, 나는 겸손함을 볼 수 있었다.

 

아무튼 여러 가지를 느낀 책 중 한 권이고, 어느 정도 고전과 역사에 내공이 있다면 강추하고 싶은 책이다. 좋은 양서를 만났을 때 느끼던 기분, 기분 좋은 만남이 주는 즐거움, 그런 즐거움을 물씬 느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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