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경백자
게훤 지음, 김명환 옮김 / 글항아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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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이한 책이다. 나는 고전 중 특히나 군사학 고전이 나오면 따지지 않고 바로 주문해서 본다. 군사 모략이나 계략 등이 재미있기도 하고 실제로 동양 철학 중 가장 현실적인 부분이며, 전쟁이라는 것이 사실 인생을 살아가는 것과도 어느 정도 공통점이 많기에 병서를 보며 여러 생각을 하지 않나 싶다.

 

 

기존의 우리 출판계에서는 병법서라고 하면 서양 쪽은 클라우제비츠의 병서 <전쟁론>에 중점적이고 동양 병법서는 <손자병법>을 중점적으로 번역한다. 두 책 모두가 가치 있는 책인 건 알겠다만, 너무 한 쪽으로 치우친 풍토가 아쉬웠었고, 저 영향력 때문에 다른 고전들이 대중에게 소개받을 기회를 박탈하는 것 같아서 아쉬움이 있다. 특히나 서양 병법서들은 거의 번역이 전무하고 근세 이후의 병서들만 번역하는데, 그리스나 로마 시대 때의 고대 병서들도 번역이 됐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반면 동양 병서는 너무 고대에 치우쳐서 아무래도 근세 이후의 명 청대의 병법서는 번역되지 않는다는 한계점이 있었다. 그런 부분에서 이 <병경백자>는 아주 반가운 책이었다. 지은이는 명-청 전환기를 살았던 게훤이라는 자로, 특히 주목할 부분은 이 사람이 수학에 능통했다는 것이다. 동양은 서양에 비해서 수학이 비교적 덜 발달했다. 서양은 고대 플라톤 이래로 수학을 중요시하는 전통이 있었고 모든 학문의 기초엔 수학이 있었다. 수학이란 부분은 이성적이고 체계적인 학문이다. 따라서 저자는 동양의 여러 사상과들과는 조금 다른 이성적인 면에 치우쳤으며, 실제로 그가 쓴 병법서인 <병경백자>에 수학적으로 군사를 계산하여 공격과 수비에 대한 부분을 서술한 것이 있었다. 이런 부분은 대략적인 수치로 서술해온 동양의 고대 병서에 비해 실증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책의 구성은 문자 그대로 100글자에 입각하여 병법을 풀이한 책인데, 비슷한 예로 명나라의 유기의 <백전기략>을 들 수 있겠다. <백전기략>은 백 가지의 모략이라는 뜻으로 백 가지의 모략을 서술한 것이 특징이라면, 이 책 <병경백자>는 100가지의 글자를 테마로 제시하고 그 글자에 입각하여 전쟁의 여러 면모들을 고찰하는 방식으로 서술했다는 차이가 있다.

 

 

동양 병법서의 특징은 일단 간결하다는 점인데, <병경백자>역시도 간결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사실 솔직하게 말해서 <손자병법>을 비롯한 여러 병법서들과 주제 면에서는 크게 특출난 부분은 없었다. '병법은 속임수'라는 주제에서 벗어나진 않지만, 고대 병서에서 보이는 미신적인 부분이나 형이상학적인 표현 등이 없고 다소 문체가 짧고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특히나 고대 병법서에 비해 어려운 표현들을 쉽게 설명하려고 서술하고 있었다. 가장 주목받는 부분은 '병법 읽기'라는 장이었는데 그는 여기서 주장한다. 모든 병법은 그 시대의 산물이기 때문에, 읽을 때 비판적인 자세를 요구하며, 틀린 내용은 수정하고, 현실 상황에 맞지 않은 부분은 고쳐서 바로 인식하여야 한다.라는 주장은 깊이 공감했다. 그가 이 <병경백자>를 쓴 이유도, 고대 이래로 흘러내려오는 병법서들의 정수를 모아서 다시 현시대에 맞게 재정립한 의도도 보였었다.

 

 

쉬운 예로 기본적으로 <손자병법>에 나오는 군략과 모략에 대한, 부분과 벗어나지 않으면서 그 추상적인 이론을 구체화시키는 서술을 했으며 <오자병법>에 보였던 병졸들 간에 편성에서 노비나 범죄자들로 구성된 병력을 만들어 그 부대는 공명심을 내세워 다스려야 한다는, 심리적인 기교론까지 포함하여 적고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손자병법>이 왜 그렇게 칭송을 받는가? 사실 <손자병법>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의 병법 이론을 한 곳에 모아 재정립하고 종합적인 고찰을 지닌 부분이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런 부분에서 <손자병법>은 동양 고대의 병법 이론의 정수를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찬가지 부분에서 본다면 이 <병경백자>는 고중세 이래로 흘러나오는 병법 이론들을 그 시대에 맞게 재정립한 종합적인 책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게훤 특유의 실사적인 시각이 돋보여서, 신선한 부분도 보이긴 하다. 아무튼 책을 읽어봤을 때, 특이사항보다는, 종합적으로 잘 요약했다.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더불어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게훤은 군략과 모략, 그리고 병력뿐만이 아니라, '말'에 대해서도 중요성을 인식했다. 이 부분도 되게 재미있는데, 동양과 서양의 차이 중 동양은 말에 대해서 아끼는 것이 능사라고 주장했고 서양의 경우는 수사학과 논리학이 굉장히 발달했다. 서양 사람들은 군인은 병법을 알아야 하고 문인은 말과 논리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말이라는 것은 문인의 칼과도 같다는 그런 주장을 했다. 즉 동양과 서양은 말의 중요성을 둘 다 인식했지만 동양은 그것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자제하는 입장이었고, 서양의 경우는 그런 중요한 말을 조리 있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게훤은 신기하게도 서양의 가치관적인 생각을 했다. 그는 전쟁에서도 말의 중요성을 알고, 말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 따로 기록할 정도로, 깊이 있게 생각했었다.

 

 

특이한 점은 그런 부분이며, 재미있는 것은 모략이나 계략 등의 이야기를 할 때, 미인을 이용하는 방법이나 적장을 꾀어낼 때 뇌물을 이용하는 방법 등, 선대에 하나씩 빠졌던 부분들을 모두 총괄하여 서술하고 있었다.

 

 

특히나 책 자체가 그렇게 어렵지도 않다. 전쟁의 진법과 같은 세세하고 구체적인 부분을 이야기하기보단 전쟁의 큰 흐름과 큰 방도에 대한 물줄기를 이야기하고 있는 점에서는 동양 전통의 병법서의 체계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책을 보다 보면 고대의 병법서에는 두루 뭉실하게 기교를 부려야 한다는 부분들을 <병경백자>에서는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가령 대놓고 군대를 이끄는 장군은 때론 적에게 허세를 부려 적을 혼란에 빠트릴 수도 있어야 한다.라고 명확하게 말하는 부분 등은 전대의 병서에서 두루뭉술하게 형이상학적 도교 사상을 차용하여 설명한 것을 좀 더 구체적이고 간결화하여 서술하고 있었다.

 

 

책이 굉장히 짧은 편이나, 굉장히 흥미가 있는 책이고, 재미가 있었다. 특히나 우리나라 옛날 독서계에서 병법서는 중국의 병서의 가치를 무시할 수 없고 특히 무경칠서라 위시되는 <손자> <오자> <육도> <삼략> <사마법> <울료자> <이위공문대> 7권의 책만을 경으로 높여 칭송하였다. 지금도 번역서들은 <손자>가 가장 많으며 많아 봐야 위의 무경칠서 7권과 <손빈병법>, 제갈량이 지었다는(모작일 가능성도 많음) <장원>,<편이십육책>, 그리고 명대의 유기가 쓴 <백전기략>, <삼십육계> 정도에서 벗어나지 못 했다. 그래서 사실 아쉽고 아쉬웠는데 이런 신선한 병서가 나왔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반가운 일이었다.

 

 

특히나 저번에 리뷰를 했던 <오자서병법>과 같은 책은 짧은 원문을 가지고 처세학적인 해설을 뻥튀기하여 쓴 책이라 신선함과 한계가 둘 다 있었는데, 이 <병경백자>는 오로지 순수하게 충실한 번역으로만 이뤄진 책이다. 내용적인 부분에서 차이를 보자면 <오자서병법>은 굉장히 역학적이고 음양학적인 부분을 차용한 병법서인데 반해 <병경백자>는 철저한 현실주의적 책이고, 미신이나 허황된 이론 등을 배격해야 한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다소 책 장수에 비해서 값이 높다는 점이 있지만, 글항아리 출판사의 책이 다소 가격이 좀 높은 감이 있지만, 양장본인데다 깔끔한 표지 등이 돋보여서 서슴 없이 책 가격을 지불할 수 있었다.

 

 

인생이란 것은 전쟁을 닮았지만 모든 부분이 전쟁과 같을 순 없다. 병법이란 것은 전쟁을 타파하기 위한 계략이며 모략의 일종이다. 모든 병법의 주제는 속임수다. 적을 어떻게 속여서 내가 이길 것인가. 모든 병법의 주제는 그렇다. 그렇기에 인생의 모든 부분을 그렇게 처세적으로 다룰 순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렇다고 해서 이런 처세를 모르고 살아갈 수도 없다. 세상은 도덕으로만 살 수도 없으며 모략으로만 살아갈 수 없다. 둘 다 적절하게 사용하며, 살아가야 하니, 병법에 지혜를 무용지물로 생각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병법에 나온 처세적 부분을 응용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도 병법서가 각광받는 이유는 선현들의 지혜가 아직도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데, 참고할 만한 부분이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했다.

 

 

 모쪼록 신선한 책이었고, 신간이지만 뜨자마자 바로 구매를 한 책이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이 병법서를 좋아하는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일반인이 보기에도 좋은 내용으로 이뤄진 책이 아닌가 싶다. 만족도가 아주 좋았던 책이며, 특히 권모나 모략, 병서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일독이 아닌 필독을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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