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격몽요결 - 올바른 공부의 길잡이
이이 지음, 김학주 옮김 / 연암서가 / 2013년 8월
평점 :

시험을 준비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참 힘든 일이다. 어느 날 시험 공부를 하다가, 공부가 너무하기 싫어서, 역사 책을 봤던 기억이 있다. 거기서 만났던 넘을 수 없는 인간이었던 율곡 이이. 무려 과거시험을 9번이나 장원급제하여 '구도장원공'으로 불렸던 율곡의 이야기를 읽으며, 이게 과연 인간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조선조 이런 캐릭터는 전무하다.) 지금으로 말하면 고시를 9번이나 1등으로 패스한 뭐 그런 비슷한 예가 아닐까? 아무튼 <격몽요결>은 그 인간 같지 않은 율곡 이이가 학문을 하려는 초학자들을 대상으로 쓴 공부에 대한 개론서라고 할 수 있겠다. 도대체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었길래, 아홉 번이나 장원을 급제했는지... 알고 싶어서 이 책을 들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지금 이 책을 다시 봤었다.
율곡의 저서 중 가장 유명한 책은 <성학집요>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준비되지 않은 왕인 선조가 등극하자마자, 왕의 자질을 알려주고 왕도적인 정치를 가르치기 위해서 편찬된 책이다. 그리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격몽요결>은 공부하고 싶은 평민들이 방향을 헤매지 않게 하기 위해서 지었다고 율곡은 서문에서 말한다. 전자가 군주의 수신과 치국에 대한 책이라면, 후자는 일반 사람들을 깨우쳐 주기 위한 초학서라고 보면 되겠다. 따라서 조선의 선비들은 이 책을 <소학>, <명심보감>과 같은 명저 훈육서의 반열로 높였었다. 뭐 조선 중기의 사상인 유학과 성리학 사상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는, 정석적인 수신서라고 보면 되겠다.
책의 목차를 살펴보면, 유학의 '수신 제가 치국평천하'의 사상이 떠오른다. 1,2,3,4 장은 각각 뜻을 세우고, 낡은 습관을 혁파하고, 자신의 몸을 닦고, 책을 읽는 법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즉 수신에 대한 이야기라고 보면 되겠다. 이어가서 5,6,7,8장은 제가에 대한 항목이다. 어버이를 섬기는 올바른 방법과, 장례에 대해서, 제사에 대해서, 그리고 집안에서의 예절 등을 설명하고 있다. 대체적으로 수신 항목에서는 좀 본받을 내용들이 많았지만, 제가 항목에서는 시대에 좀 동떨어진 제도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제사 제도나, 장례 절차 등등) 그리고 마지막으로 9,10장은 사람들과 사귀는 방법과, 사회생활을 하는 법등의 처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무래도 치국평천하의 대목은 군주에 치우친 의미라서 조심스럽게 사회 처세론 적인 서술을 하지 않았나 싶었다.(<성학집요>에 담아놨다고 생각해도 될 듯싶다.) 책은 이렇게 총 10 장으로 나눠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수신에 대한 1,2,3,4 장을 집중적으로 봤고, 제가에 대한 5,6,7,8 장은 대충 봤었다. 그리고 9,10장은 다시 집중해서 봤었다. 전문을 다 리뷰하기란 곤란하니 내가 특별하게 느꼈던 몇 대목만을 이야기해보겠다.
1장에서는 뜻을 세우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기존의 유학 사상은 성인을 흠모하고, 공경하며 우러러 본받자는 사상이 기본적이다. 하지만 율곡은 여기서 더 나아가 자기 스스로가 성인보다 못하다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스스로 성인 이상으로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존의 유학 사상들이 성인을 대하는 태도와는 조금 다르다고 느꼈던 부분이었다. 좀 더 적극적인 느낌을 받았었다. <격몽요결> 중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장을 꼽자면 2장을 꼽고 싶다. 2장의 제목은 혁구습으로, 낡은 9가지의 습관을 혁파한다는 뜻인데, 특별히 이 한 대목이 가장 와 닿았었다. 9가지 항목 모두가 나에겐 와 닿았고 느낌이 왔으나, 가장 감동했던 항목을 옮겨본다.
다섯째는 글씨 쓰는 데나 공을 들이고 거문고 뜯고 술 마시는 것을 일삼으며 한가히 놀면서 세월을 보내면서도 스스로는 맑은 취미 생활을 한다고 하는 것이다.
당시 이 책을 처음 봤을 때가 시험 기간이었고, 공부는 하기 싫은데, 율곡의 책을 보며 진정으로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겠다(?)라고 합리화하며 이 책을 보고 있었었다. 그러다 이 대목을 보고, 돌 맞은 듯 뜨끔했던 기억이 있었다. 살다가 보면, 내가 할 일에 대해서 회피하고 싶고 회피를 선택하고 대체 행동으로 위안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러다보면 선택된 대체 행동에 대해서 긍정적인 합리화를 할 때도 많았던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항상 저 문장이 생각났다. 비단 나 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들이 가지는 특성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저 문장이 나에겐 와닿았었다. 그런 회피적 대체 행동을 할 때 저 문장을 떠올리며 고민을 하고 반성을 많이 했었다. 율곡은 인간의 심리에 대해서도, 깊이 이해하고 있지 않았나 싶었고, 결국은 그 역시도 저런 습관이 있었지 않았을까 라고 조심스럽게 추측도 해 봤다.
혁구습의 아홉 문장은 모두가 다 의미가 있는 문장들이다. <격몽요결>을 읽지 않는다 해도, 한 번쯤은 2장만이라도 봤으면 느끼는 점이 있지 않나 싶다. (2장이 가장 짧으며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다 나오니 조심스럽게 추천해본다.)
독서에 대한 부분 역시도 기대를 하고 봤는데, 솔직하게 말해서 기대에 미치지 못 했다. 일반론적인 이야기와 더불어 유학 경전 테크를 제시하고 있었다.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책을 읽을 때 반드시 여려 권을 난잡하게 보지 말고 한 책을 읽고 나서 다른 책을 보라는 내용이 있었다. 많은 책을 욕심내서 많은 것을 얻기에 힘쓰며 급급히 서둘러 이것저것 보지 말라는 충고도 한다. 이 부분은 솔직히 개인차가 존재하는 부분이라서 그냥 율곡의 독서 방식이 이렇구나 하고 넘어갔던 것 같다.
나머지 제가에 대한 5,6,7,8장은 <주자가례>, <예기>, <효경>, <소학> 등에 나온 이야기들과 같고, 또 현대에서는 별로 효용성이 없는 듯해서 대충 넘겼다. 그냥 이 시대의 제도는 이렇구나 하고 간단하게 스쳤다.
마지막 10장에 있어서는 율곡의 현실론적 관점을 볼 수 있었다. 전문을 옮겨본다.
지금 사람들은 말로는 과거를 준비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 힘은 기울이지 않고, 말로는 성리학을 공부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손도 대지 않고 있다. 만약 과거 준비를 두고 따지고 추궁한다면 곧 '나는 뜻을 성리학에 두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힘을 기울일 수가 없다'고 핑계를 대고 또 성리학 공부에 대해 따지고 추궁한다면 곧 '나는 과거 준비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실상 공부를 할 수가 없다'라고 핑계를 댄다. 이처럼 양쪽을 자기 편한 대로 이용하여 어정쩡 날짜를 보내다가 마침내는 과거 보는 일이며 성리학 공부 두 가지 모두를 이루는 것이 없게 되는 것이다. 나이 많아지고 늙은 뒤 비록 후회한들 어찌할 수가 있겠는가?
여기서 말하는 성리학은 뭐 진정한 학문 수양에 해당되는 것이겠고, 과거 시험은 입신용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닐까 싶다. 율곡이 이 두 부분에 있어서 현실적으로 깊이 이해를 하고 있는 대목이다. 그래서 당시 선비들이 뜻 없이 양쪽을 오가며 변명만 하는 사태를 잘 꼬집어서 말하고 있다. 보통 대 사상가들의 경우는 성리학적인 순수 학문 쪽에 더 치중한다고 생각했는데, 율곡은 실제적인 입신에 대한 공부 역시도 중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었다. 역시 구도장원공의 주인공인가... 하고 납득이 갔었다. 아무튼 이 10장 같은 경우는 국가고시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 가볍게 읽어본다면 도움 되는 내용이 많아 보였었다.
쪽수도 얼마 되지 않고, 어렵지도 않은 책이라서 읽는 데는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고전 치고는 어렵지 않은 문장들로 구성돼 있어서 부담도 없는 편이고 내용 자체도 유가적인 사상에 입각해 교훈적인 내용이 많았다. 물론 이 책 내용이 모두가 다 좋은 내용은 아니다. 시대적으로 뒤떨어진 생각도 있고, 너무 이상적으로 치우친, 유교적 사관에 입각해서 책을 쓴 부분도 거슬리긴 했었다. 책을 보며 드는 의문점은 과연 이 엄격한 구절들을 율곡은 얼마나 지켰을까?라는 의문도 들었다. 그만큼 이상적이고, 실천하기 힘든 대목들도 많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문구들이 꽤나 많은 거울같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