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만 보는 바보 진경문고 6
안소영 지음 / 보림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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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

 

  한동안 밀렸던 여행기 쓰느라 책 글을 못 썼다. 읽은 책은 좀 되는데, 연말이고 이래저래 바쁘다는 핑계로 책 글 포스팅을 못한 듯싶어, 주말을 맞이하여 정리할 겸, 끄적여본다. 오늘 소개할 책은 <책만 보는 바보>라는 책이다. 이름부터가 독서가들의 구미를 당기게 하는데, 조선 말기에 애독서 가로 살아간 이덕무와 그의 지인들에 대한 책이다. 책의 콘셉트는 아동용 도서다. 그러나 솔직히 이 책을 아동용 도서로 볼 수는 없는 듯싶다. 내용이 그렇게 유아틱하게 각색되지 않은 점도 있고, 생각 외로 부담 없이 이덕무의 삶에 대해서 읽어내기는 충분하지 않나 싶다. 거기다 책의 두께도 288쪽인데, 이 정도면 보통 장편 소설에 해당되는 내용이라 볼 수 있다. (물론 유아용 책이라 글씨는 좀 크다.)

 

  책의 주인공은 이덕무로, 조선 정조 때의 문인이다. 이 책은 이덕무를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하여 서술하는 책인데, 소설이라고 볼 수 없는 이유가 기존의 이덕무가 남겼던 저서들과 기록들을 섬세하게 참고하여 복원한 역사를 바탕으로 한 글이다. 특별하게 어려운 부분도 없고 특별하게 배경 지식도 필요가 없어서 무난하게 독서할 수 있지 않나 싶다. 더구나 책 중간중간마다 나오는 예쁜 일러스트 들은 지루할법한 내용을 지루하지 않게 해 주는 영향도 있는 듯싶다.

 

 

(활자가 좀 큰 편이다. 그리고 옆 부분처럼 그림이 있어서 지루하지 않게 독서할 수 있었다.)

 

 주인공 이덕무는 한 마디로 책덕후라고 할 수 있다. 어려서부터 책이란 책은 가리지 않고 다 읽어왔다. 서자 출신으로 태어나서, 신분적 차별을 받은 그에게 한 가지 애환을 달래는 것이라곤 책뿐이었다. 그에겐 처음부터 스승도 없었으며, 오로지 책만을 보며 세상을 바라봤다. 병약하고 소심한 성품을 지닌 그에게 있어서 독서란 힘들이 지 않고 향유할 수 있는 취미이자 전부가 아닌가도 싶었다.

 

 신분적 차별 때문에, 군주에게 임용되지도 못했고, 서자 출신이라서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도 못 했다. 거기다가 힘써 글을 읽었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하고, 또 온전한 양반의 신분에 끼워주지 않으면서, 시장에 나가 좌판을 벌여 놓고 장사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또 다른 핏줄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는 것 역시도 세상은 비웃으며 허락되지 않은 그에게 있어, 책이란 돌파구이자 애환을 달래는 부분이 아닌가 싶었다. 날이 추워서 바람이 방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지 못하여 <논어>를 병풍으로 쓰고, 이불이 없어서 <한서>를 이불로 덮고 자는 그의 행색에서 딱한 마음과 애잔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누군가에게서 진귀한 고서를 받으면 뛸 듯 기뻐하며 빌려 읽고, 필사를 할 때에도 종이를 아껴 쓰려고 글씨를 굉장히 작게 쓰면서도 정자 그대로 또박또박 썼다는 대목에서는 그가 얼마나 독서에 대해서 애정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다시 한 번 느끼게 됐었다. 마치 지금에서 말하면 절판본 도서를 찾아서 제본을 하거나 하는 기분과 비견되지 않을까?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답답했던 부분도 있었다. 나 같았으면 처자식이 그렇게 굶어 죽는데, 세상의 평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냥 소작농으로라도 일을 해서 밥을 먹여 살렸을 것 같다. 그러나 이덕무는 끝내 그러지 않고(심지어 자식이 밥을 못 먹어서 죽기도 했다..), 세월을 책으로 달래기만 한 부분에서, 그 역시도 기존 사회의 선비 관념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해서 아쉬움이 있었다.

 

 재미있는 부분은 그가 가지고 있는 독서에 대한 생각인데, 그는 특히나 소설이나 잡기류 책들을 경멸했다. 유학이나 경전류의 책을 최고로 올리며, 그다음이 주자학 그다음이 제자서 등 이렇게 그 시대의 보편적인 관념을 벗어나지 못 했던 점도 보였다. 이런 보편적인 생각의 부분은 이덕무의 친구들인 박제가와 유득공과는 굉장히 대조적이었다. 박제가는 이덕무와는 전혀 반대의 다혈질적인 스타일이고 돌출적인 사상가였다. 유득공 역시 이덕무보다는 조금 자주적인 면이 돋보였다. 그리고 이덕무의 처남이자 드라마 주인공으로 유명했던 백동수와의 이야기도 나온다. 더불어 북학파를 이루고 있는 홍대용, 박지원 그리고 이서구 등은 명문가 출신으로 어느 정도 신분적인 부분이 보장됐지만, 이덕무와, 박제가, 유득공은 서자 출신으로 관직에 임용되기까지 엄청난 인고의 시간을 버텨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끊어지지 않는 우정에 대해서도 많은 감명을 받았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하루는 이덕무가 배가 너무 고파서 <맹자> 한 질을 팔아서 쌀과 음식을 사서 처자식들과 먹었다. 그러나 책을 아끼는 그로는 굉장히 괴로웠으리라, 그래서 유득공에게 하소연을 한다.  '맹자께서 양식을 잔뜩 갖다 주시더군, 그동안 내가 당신의 글을 수도 없이 읽어 주어 고마웠던 모양일세'라고 하자 유득공이 바로 집에 가서 <춘추좌전>을 뽑아 들고 팔아서 술을 사 온다. 그리곤 이렇게 말한다. '그래요? 그럼 나도 좌씨에게 술이나 한잔 얻어먹어야겠습니다. 그래도 허물 없이 그의 글을 꽤 읽었지요.'라며 이덕무와 술을 마신다. 술기운이 돈 그들은 세상을 한탄한다. '일 년 내내 맹씨와 좌씨의 책을 읽어 봐야 우리가 대체 무엇을 구할 수 있겠는가? 제 식솔의 굶주림 하나 구제할 수 없다는 것을'이라며 자조하는 이덕무. '그렇지요 다장에 팔아 한때의 굶주림을 면한 우리가 차라리 현명하지요. 맹씨와 좌씨도 잘 했다고 할 것입니다.'라며 대답하는 유득공. 그러나 그들은 그 위안이 비겁한 위안이란 것을 알고 있었었다. 실제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그들에게 비판의 마음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런 날카로운 감정보다도 책을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그들의 마음을 동정하는 마음 역시도 생겼던 대목이었다.

 

 이랬건 저랬건, 이덕무가 죽고 박지원은 그의 문집 <청장관전서> 서문에 이렇게 쓴다. '평생 동안 읽은 책이 2만 권이나 된다.'

이 말은 내게 있어서는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왔으며, 나의 게으른 독서력을 뒤돌아보게 만든 부분이기도 했다.

 

 어쨌든 이런 이덕무는, 결국 정조의 명에 의해서 원하던 벼슬을 하게 된다. 박제가와 유득공 역시도 낮은 벼슬이지만 벼슬을 하게 되고, 중국 청나라까지 여행을 같이 떠나기도 한다. 이덕무가 청에 대해 비판적이고 중화주의적 시각을 가졌다면 박제가는 청국을 다녀온 뒤 <북학의>를 내놔서 그의 독자적인 생각을 정리한다. 유득공 역시도 역사 쪽의 불멸의 고전인 <발해고>를 남긴다. 이덕무는 작은 벼슬이지만 불평하지 않고 매사에 성실하게 공무에 임해서, 중앙에서 지방 공무원들의 감사를 볼 때 항상 최고점을 기록할 정도로 열심히 일한 부분도 인상 깊었다. 애환을 책으로 달랜 그들이 사회에서 빛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지금 리뷰중인 책은 <책만 보는 바보> 이다. <책에 미친 바보>는 이덕무가 쓴 산문선이다. 제목에 혼동이 올 수 있으니 조심하자. 참고로 책에 미친 바보는 개정판이 나와서 표지가 지금 것과는 다르다고 한다.)

 

 책을 보며, 그의 독서에 대한 집념과, 인내심, 그리고 성실성에 대해서 많은 감명을 받았다. 더불어, 이 책을 보고 이덕무라는 사람에 관심이 더 생겨서 그가 쓴 저서들을 검색해봤고 구매했었다. 책 제목이 비슷한데, <책만 보는 바보>는 지금 리뷰하는 책이고, < 책에 미친 바보>는 이덕무가 쓴 산문선들을 골라내서 편역한 책이다. 제목이 많이 혼동이 될 텐데 잘 보고 구분을 해야 한다.

 

 나는 누군가의 전집을 사 본 경험이 없다. 주로 대표작들만은 사곤 했는데, 처음으로 이덕무의 저서 전집을 구매했다. 이덕무의 전집은 <청장관전서>로 지금은 절판된 책이다. 총 13권으로 돼있는데, 이덕무를 알았을 당시, 나는 이덕무에게 많은 감명을 받고, 또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의 생각과 사유를 읽고 싶어서 구매한 책인데 다 읽진 못 했다. (생각보다 지루하기도 했고) 보통 사람이라면 이덕무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려면, <책에 미친 바보>만 구매해도 될 듯싶다.

 

 책을 좋아하는 청아한 선비의 일대기를 부담 없이 봤다. 어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유익한 도서가 아닌가 싶다. 나도 이덕무의 다독력을 본받아서 내년에는 더 많은 책들을 읽어나가겠다는 공허한(?) 다짐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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