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으로 리드하라 - 세상을 지배하는 0.1퍼센트의 인문고전 독서법
이지성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인문고전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예전부터 유효했으나, 대중화되진 못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언어의 장벽과, 기존 학자들의 태도, 그리고 대중 역시도 무심했으니깐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잊혀왔고, 전공자 외에는 사실 크게 관심 있지 않는 이상 인문 고전은 가치에 비해 낮게 대우받았음이 사실이다. 학계에서는 어려운 말들과 그들만의 언어로 인문학의 진입장벽을 높여와서 대중이 다가가기 힘들게 만들었던 게 사실이고, 올바른 번역보다는 일본어 이중 번역본이 나돌아다니곤 했다. 다른 선진국들이 완역한 고전의 숫자를 보더라도 아직까지 플라톤 전집이 없고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이 모두 완역이 안 나온 것은 소정 학자들의 탓이며 더불어, 국가의 책임으로 귀결되는 것 같았다.

 

 이 책이 발간되고 난 후와 전으로 나눠보면, 솔직히 이 책이 나온 후, 사람들은 인문학의 중요성을 더 인식을 한 것 같다. 감성적인 언어와 비약적인 말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대중에게서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더불어 범국가적으로 인문학 열풍을 불러일으키는데 공헌을 했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이 책의 작가의 필력은 그런 면에서 보면 호소력을 지니고 상당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진실이건 아니 건을 떠나서, 아무튼 이 책이 대한민국의 제2의 인문학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는 솔직히 높은 점수를 줘야 한다. 지금은 너 나 할 것 없이 인문학과 고전에 대한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으며, 이에 발맞춰 저가형 고전 시리즈인 '올재'를 비롯한 책과 더불어, 여러 가지 개론서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소정 학자들 역시도 탈 권위적인 입장을 표명하며,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강연과 개론서 등을 써내기 시작했다. 다만 지금도 아쉬운 부분은, 개론서나 눈높이도 중요하지만, 인문학적 중요성을 대중에게 전하는 만큼, 그에 맞는 콘텐츠(좋은 완역본 등등)를 갖추는 것 역시도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저런 영향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의 논조는 너무나도 모 아니면 도 같은, 맹신주의적인 고전의 열망이 보였다. 확실히 고전은 중요하다. 그 말은 맞다. 세상을 바꾼 위인들 중에는 사실 고전을 읽지 않은 사람(칭기즈 칸과 같은)보다는 고전에 의해 영감을 받고 업적을 이룬 사람이 월등하게 많다. 저자의 말은 진실이긴 하지만 일반화하긴 상당히 위험하다. 그렇게 고전을 맹신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전은 중요하다. 살아남은 책이니깐, 시대를 이끌어왔다는 책임에서 중요한 텍스트임에는 맞다. 하지만, 맹신하기에는 여러 가지로 무리가 따른다고 본다. 저자의 말은 반쪽짜리가 아닌가 싶다. 시대를 이끌어온 사상가나 위인은 고전에 힘을 받은 것이 90% 이상임엔 틀림없다. 하지만 논제를 뒤집어서 항상 고전의 힘이 사람에게 위인의 포텐을 각성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 고전을 읽고 어떻게 감동을 받아서 적용시키기에는 결국 본인에게 달려있다. 인문 고전이 사람을 각성시키는 힘은 가지고 있지만, 절대적이진 않다고 생각한다. 내 개인적인 사견을 붙이자면, 고전은 인간에게 있어서 큰 추상적인 방향을 제시하긴 하지만, 구체적으로 이럴 땐 이렇게라고 말해주진 않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어려운 형이상학이나 복잡한 이론을 담은 고전이 있다. 그러한 고전은 인류의 삶에 있어서, 발전적으로 도움을 준 것은 맞지만, 그 책이 모든 인간의 구체적인 힘든 점 등을 해소시켜주진 않는다. 아니 어쩌면 내가 봉착한 역경 속에서 그 고전의 복잡한 논리가 오히려 독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추상적으로는 옳은 것일지 몰라도, 구체적으로 적용시키기란 쉽지 않다 고전이란 작품은,

 

 저자의 말 대로라면 인문고전을 무조건 읽은 사람들은 만화에서나 보는 신 인류와 같이 각성을 한다고 하는데, 과연 그게 가능할까? 가능할 수도 있고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말 대로 무조건적을 두뇌가 확 바뀌고 그러진 않다고 생각한다.

 

리링 교수의 저작 중에서 이런 비슷한 말이 있다. 고전이라 함은 박물관에서 보는 유물과도 같다. 역사적인 가치가 있으니깐 박물관에 전시될 자격이 있고 누군가는 그런 유물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지만, 누군가는 그냥 아 그렇구나라고 지나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지나친다고 해서 그 유물이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 나는 고전을 바라볼 때 이런 자세가 좋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절대적으로 맞는 것이 있을까? 종교 교리를 제외하고는 없다고 생각한다. 고전은 가치가 있고 존중은 해야 함은 맞지만, 무조건적인 맹신 역시도 안 좋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옛날과는 다르다. 큰 인간의 보편적 가치는 동일하게 내려올지 몰라도 세부적인 부분이나, 기술적인 부분, 더불어 지식의 다양화와, 지식의 양, 이런 부분에서 고대와 중세 근세와는 다르다. 예전 고전이 힘을 발휘했던, 시절을 생각해보자, 고려나 조선으로 예를 잡아보자. 그 시절에는 지금 말하는 인문학이 실제적인 공부였다. 지금으로 말하면 전공이나 다름없었고, 출세를 하고 사회를 살아가려면 한문을 익혀야 했고 인문 고전 <논어>를 비롯한 사서 삼경 등을 읽어야만 했다. 왜냐? 사회적인 추세가 그러니까, 공부를 하고 현실에서 관직을 얻으려면 그렇게 해야 했으니깐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시대에는 한자나 라틴어를 어릴 때부터 배우는가? 아니다. 우린 실용학문인 수학이나 국어 영어 이런 부분을 주 교재로 배우지 <논어>나 한자 한문 등을 '정규 과정'에서 배우지 않는다.

 

 우리가 만약 고대나 고려 조선 시대, 아니면 서구의 그리스나 로마 시대에 태어나면 그 시절에는 인문학과 철학이 실용학문이었고, 고전을 읽는 것이 공부의 주 경험이고 연장선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고려나 조선 시대에는 동양고전만 파고들면 끝이었고 서구에서는 그리스 로마 라틴 고전들만 접하면 된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어떠한가? 세계화가 진행됨에 따라서 동서 고전을 모두 접할 수 있다. 지식을 많이 습득할 수는 있지만 그만큼 볼 수 있는 지식의 양은 많고 우리의 시간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런 환경에 처해 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처럼 고전에 목 매달고 그렇게 생활할 수도 없을뿐더러, 고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도 않다. 그렇다고 해서 고전의 가치가 폄하되진 않는다. 고전은 중요하고 케바케로 인생의 중요한 부분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경우도 있다만... 사실 고전이 주는 메시지는 추상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리딩으로 리드하라>는 확실히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책임은 분명하다. 이 책 한 권으로 인문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가 높아지고, 인문학이 진입장벽을 낮춘 것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인문학을 종교적으로 맹신하는 저자의 태도는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