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 외 세계문학의 숲 5
다자이 오사무 지음, 양윤옥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제목 : 인간실격

쪽수 : 267

출판사 : 시공사

가격 : 9500원 

 

 

*. 책의 구성은 인간실격 외, 여러 단편들 수록집인데, 여기서는 인간실격만을 다루고 있습니다.

 

 한 텍스트나 작품을 읽을 때, 나는 최대한 객관적인 마음과 비평적인 마음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쓸데없이 과도한 감상주의는 작품을 이해하는데 오히려 방해요소로 적용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급적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책을 읽어나가는데, 그게 쉽지 않은 책들이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책이 나에게 너무 어렵거나, 흥미가 없거나 와 같은 경우가 있고, 반대로 나도 모르게 작품에 동화되어 비판적인 사고의 끈조차 끊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인간 실격>은 나에게 있어서 후자에 작품에 속했다. 나는 이 책을 붙들고, 꽤나 오랜 시간을 끌었다. 사실 분량만으로는 얼마 되지 않는 책인데도, 계속해서 끊어서 읽다가, 3번째 수기를 접하는 순간 그 거부할 수 없었던 무언가의 필력에 사로잡혀, 단숨에 책장을 넘겼었다. 책을 다 읽고 만화책인 김전일을 보는데 만화가 집중이 되지 않을 정도로 책의 후유증은 강대했다. 결국 보던 만화책을 덮고 단숨에 2독을 속독으로 마쳤다.

 

 이 작품 역시도 전에 리뷰를 했었던 <몰락하는 자>와 너무나도 닮은 책이었다. 제목의 상징성, 그리고 부정적인 세계관, 의식의 흐름의 기법 등으로 많은 부분이 비슷한 소설이었다. 소설의 스토리도 아주 간단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소설은 구성적으로 액자식 구성을 사용하고 있다. 서두의 1인칭 화자는 독백적인 어체로 담담하게 사진 3장을 묘사한다. 어느 소년의 어릴 때의 사진- 여자들이 많은- , 그리고 고등학생인지 대학생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의 미소년의 사진, 마지막은 백발의 머리의 무표정한 특징 없는 사람의 사진에 대해 묘사한다. 여기에 묘사된 사람이 바로 주인공인 '요조'의 사진으로, 각 사진들의 상징적 의미는 요조가 어떤 인물인지 짐작하게 만들어줬다.

 

첫 번째 수기로 넘어가면, 첫 번째 사진에 대한 이야기로 본격적인 소설이 시작된다. 이때 소설의 화자는 요조를 1인칭으로 내세우며, 의식의 흐름의 기법이 적용된다. 대체로 1장에서는 어릴 때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풀어낸다, 주인공은 배경이 지방 부호의 막내 자식으로 태어났다는 설정이다, 핵심적인 부분은 요조가 세상에 대해서 가면을 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요조는, 마음으론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과 의문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내색하지 않고, 태연하게 완벽하게 사람들의 호감을 사기 위한 연기를 하는, 기만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일본 소설 특유의 잔잔함과, 일상적인 부분에서 이야기는 시작했으므로, 거부감 없이 볼 수 있었다. 특히 1장에서는 앞으로 요조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암시하는 부분이 나오며 독자의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두 번째 수기는 역시나 두 번째 사진 시기를 설명하는데, 요조에게 감옥이나 다름없었던 자신의 집을 벗어난, 청춘기(고등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슬슬 이 수기에서부터 인간의 추악성을 조금씩 선보이기 시작하는데,  고등학교 청춘들이 겪을 만한, 이성에 대한 사랑과, 평생의 영향을 미치게 되는 우정, 그리고 시대적인 반항을 그리고 있다. 잘 생긴 외모의 요조는 여자들에게 관심을 받기 시작하고, 호리키라는 친구 같지도 않은 친구와 만나게 된다. 그 뒤 사회주의 사상에 빠졌다가 운동 자체에 실망을 하고, 도피하듯 도망 나온다, 부정적인 사고관으로 방황하고 방황하다가, 결국 쓰네코라는 유부녀와 함께 동반자살을 시도하지만, 여자만 죽고 요조는 살아남는다.

 

이야기의 가장 핵심적인 세 번째 수기는, 그동안 절제했던 작가의 인간에 대한 추악성과 부정적인 내면 심리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마치 첫 번째와 두 번째 수기가 물 풍선에 물을 넣는 작업이었다면, 세 번째 수기는 그 물 풍선을 유감없이 터트리는 장이라고 느꼈다. 만화가라는 직장을 구하는 과정에서 애가 있는 여자를 알게 되고, 그 여자에게 경제적으로 의탁하기 시작하면서, 그 모녀의 생활에서 어울릴 수 없는 괴리감을 느낀 요조는 그들에게서 도망치고, 결국 방황하는 삶을 살고, 알코올에 중독되는 삶을 산다. 그런 요조에게 삶의 희망을 가지게 해 준 요시코라는 연하의 여자, 그녀와 요조는 결혼을 하게 되고 요조는 희망을 가지고 소시민적인,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나.. 어떤 사건을 계기로, 요조는 요시코 역시 신뢰하지 못하게 된다. 자신의 인생에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영향을 준, 절대적 순수를 상징하던 요시코가 상처를 입자, 정신적인 충격과 정신적인 방황으로 요조는, 알코올 중독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결국 그 알코올 중독을 마약으로 대체한다. 구제할 수 없는 요조는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에 의해, 정신병원으로 보내진다. 그리고 그 뒤, 큰 형의 힘으로 풀려나와서, 결국 폐가와 같은 집에 할머니와 함께 살아간다. 요조는 이 때 27살을 앞둠에도 불구하고 흰머리가 늘어 마흔 대에 사람으로 묘사하는 부분은 작품의 비극성을 더욱더 심화시키고 있었다. 메인 이야기였던 액자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고 후기로 넘어간다.

 

후기에서는, 서두의 화자가 등장하며, 이 3가지의 수기와 사진에 대한 배경 설명을 끝으로 소설은 막을 내린다.

 

 이 소설은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 소설이다. 그런 성격인 만큼, 주인공인 요조는 다자이의 인생 그 자체를 축소시켜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다자이는 주인공 요조와 거의 흡사한 인생 - 대지주의 6번째 아들로 태어났다는 점, 사회주의 운동에 잠시 가담했다는 점, 실제로 여인과 함께 바닷가에서 동반 자살 결과 여자만 죽고 자기는 살았다는 점, 믿었던 사람들을 통해 정신병원으로 보내진 점, 그 사이에 아내가 배신한 점- 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자전적인 기록에 적절한 허구를 붙여서, 자기 내면에 있는 인간에 대한 부조리를 한없이 내보이고 있는 것이 이 소설이다. 토마스 베른하르트가 <몰락하는 삶>에서 비판하는 것과는 비교해볼 수 있는데, 몰락하는 삶에서 베른하르트는 크게 두 가지를 표현하고 있었다. 당시의 사회상은 배경적 비판으로, 그리고 그와는 별개적으로 인간의 내부적인 부분은 광기적인 질투와 경외를 비판으로, 삼고 있다. 이 두 가지의 비판이 조율되어서 극한의 웅장하면서도 엄중한 비극적 분위기를 도출하는데, 다자이의 소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물론 다자이 역시 당시 시대의 일본 사회상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비판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사회를 비판하면 비판할수록 인간 내부의 심리를 극한까지 파고들었다. 

 

 사회가 부정하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지만, 그런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라면 더욱더 내면적인 인간의 부조화를 극복해야 한다고 믿은 이상적인 다자이. 그러나 그 이상적인 사상 만으론 극복할 수 없었고, 해결될 수 없는 인간의 부조화에 대해 다자이는 괴로워하고 힘들어하였다. 그 결과 사회주의 운동의 참여와 그 운동의 실패로 인해 길을 잃은 다자이의 모습은 소설 내에 요조를 통해 정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 뒤 다자이는 적극적인 사회적 개입보다는, 내면의 심리의 부조화에 대해 생각하고 표현하게 된다. 따라서 다자이의 문학은 그런 면에서 상승 지향적인 성격(외향비판적, 출세적, 이상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하향 지향적인 성격의 문학(내면의 깊숙한 모습을 끝까지 파고드는)이라고 평하고 있다. 주인공 요조는 결국 3류 만화가의 인생을 걷고, 그 만화도 나중에는, 공허한 밥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다자이 역시 <인간실격>을 쓰기 전, 여러 가지 다작을 했었다. 그는 정신병원을 다녀온 뒤, 새로운 사람이 되어 여러 가지 작품들을 발표했고, 성공했다. 시대적으로 전쟁에 패배하는 일본의 사회상에 대해, 신경 쓰지 않고 자신만의 문학관을 정립해나간다.

 

하지만 누가 알았을까, 그런 다자이가 외향적 가면 내부에선 평생을 준비했던, 한 방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이 자전격 소설의 <인간 실격> 이었다. 그는 이 작품을 남기고 마지막으로 연인과 함께 투신하여 생을 마감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다작 활동을 한 다자이는 독자를 위해 보여주기 위한 문학을 한다는 것에 대한 내면적 자괴감이 들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 공허함의 표현을 <인간 실격>에서 3류 만화가로 지칭한 요조로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소설의 형식적인 면도 첫 번째와, 두 번째 수기까지만 해도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그런 내용이었으나, 세 번째 수기로 가면 갈수록 비극의 강도는 극적으로 높아진다. 마치 <인간실격> 한 방을 준비하고 있다는 다자이의 집념처럼, 세 번째 수기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수기를 합친 양보다도 더 많을뿐더러, 더욱더 비극적이다.

 

<몰락하는 자>와는 다르게, 이 소설에서의 배경은 특별한 비판적 상징 없이, 음울한 분위기만을 조장해주고 있다. 그리고 액자 내부의 이야기에서 요조는 극존칭과 존대어로 독자에게 다가가는데, 이런 기법에서 나는 처음에는 편안한 마음으로 다가갔었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기묘하고도 괴이한 느낌과, 잔잔한 공포감마저 느꼈던 것 같았다. 비교하자면 <몰락하는 자>는 웅장함과 거창한 비판이라면, <인간 실격>은 잔잔하면서도 피를 말라 죽이듯 비판하고 있달까,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그런 느낌?

 

보편적 윤리의 관점에서 보면, 요조의 행위는 절대 용서할 수 없고, 그의 사상 자체도 거부감이 든다. 하지만 다자이의 소설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요조의 마음에 동화되기 시작하고 그와 같은 감정을 느꼈던 것 같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나의 내면에 잠든 또 다른 이타심이란 부분이 다자이의 소설을 보는 순간 응답하고, 그 마음이 커지면서 인간 본연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소설에 공감하게 만드는 기묘한 마력. 이게 바로 다자이의 힘이 아닐까 싶다. 평생을, 인간의 내면적 부조화의 모습, 그 자체를 극한까지 폭로하며 이겨내고자 한 다자이. 그런 그가 아니면 감히 '인간실격'이란 단어를 붙일 수 없었으며, 이런 소설을 쓸 수도 없다. 단언컨대 한 평론가의 말처럼, 다자이는 '인간실격을 쓰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틀림없었다.

 

이런 마력을 지닌 책이라면 독서에 취미를 잃거나 책을 싫어하는 사람도, 쉽게 빠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나는 리뷰를 마치고, 책을 권해달라는 지인들에게, 조용하게.. <인간실격>을 권했다. 인간의 부정적인 모습을 이만큼 적나라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은 흔하지 않으니까.. 그만큼 나에겐 굉장히 매력적이었던 작품이었고,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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