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리티 투자, 그 증명의 기록 - 테리 스미스의 투자자 서한과 칼럼들
테리 스미스 지음, 김진원 옮김, generalfox(변영진).생각의여름(김태진) 감수 / 워터베어프레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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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한 투자자 형과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항상 나누는 주제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새로 나온 가치투자서에 대한 이야기다. 형은 시드가 많고 어느 정도 경제적 자유를 이룬 입장이라서 투자에 대해서 이런저런 조언을 아끼지 않는데, 작년 이맘때 위대한 투자자들의 서한들을 자주 읽어보라고 추천했다. 모멘텀 투자와 가치투자를 함께 하는 나에게 있어 자신에 맞는 투자 방법을 찾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긴 호흡으로 안정적인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가치투자에 집중할 것을 강조했고, 그 길을 먼저 걸어가 본 선배들의 서한을 많이 읽을 것을 당부한 것이다.

 

 작년 여름 기준으로 서한을 검색해 보니 읽을만한 책이라곤 개정이 완료된 《워런 버핏 주주서한》 정도였다. 버핏을 다룬 2차 저작물은 엄청나게 많지만 정작 그가 손수 쓴 글은 《워런 버핏 주주서한》이 유일했다. 그렇기에 이 책의 가치는 돈으로 따질 수 없을 정도로 귀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최근 주식과 관련된 신간들은 무더기로 쏟아지는데, 대가들의 서한을 정리한 책은 아직까지도 '워런 버핏'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버핏의 서한을 읽으면서 좀 더 다양한 투자자들의 서한을 접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던 찰나 작년 연말, 《노마드 투자자 서한》이라는 책이 출간됐는데, 가치투자를 하는 분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았다. 두툼한 분량의 서한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정말 멋있다.' , '한국에서도 과연 이런 방법으로 투자할 수 있을까.'라는 경외감이 들었다. 펀드 포트폴리오에 구성을 통하여 종목 선정의 기준을 확인할 수 있었고, 경제적 해자가 있는 기업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묵묵하게 투자하는 철학도 큰 영감을 받았다. 그들은 여러 대가들의 책에서 강조하던 조항들을 현실에서 이상적으로 구현한 투자자였다. 단기적인 시각이 아닌 장기적인 관점으로 스스로 사업을 하듯 꾸준하게 투자하던 노마드 투자조합의 서한을 읽으면서, 한국에도 알려지지 않은 대가들의 다양한 서한들을 서점에서 볼 수 있길 희망했다.

 

 시간이 흘러 올해 상반기, 영국의 워런 버핏이라고 불리는 테리 스미스의 투자자 서한이 번역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테리 스미스는 최근 영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펀드매니저라고 하는데 미국의 투자자들에 익숙한 나에게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집에 있는 영국 대가들의 책을 살펴보니 앤서니 볼턴과 줄루 투자법으로 이름난 짐 슬레이터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처음 보는 인물의 서한이라 무척 기대가 됐다. 저자의 신선함 외에도 기대를 끄는 요소들이 있었다. 첫 번째로 《노마드 투자자 서한》을 번역한 분들이 감수를 하셨다는 점을 꼽고 싶다. 질 좋은 서한집을 직접 번역하신 분들이 감수를 하고 추천을 하는 책이라서 기대가 됐다. 두 번째는 출판사 때문인데 개인적으로 이 책을 출간한 워터 베어 프레스 출판사를 좋아한다. 투자서를 전문으로 번역하는 출판사는 극소수라서 좋은 책을 꾸준하게 내는 출판사는 아무래도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다. 이번 신간 이전에도 좋은 책을 많이 출간하였는데, 서재에 《100배 주식》과 《빅 머니 씽크 스몰》을 소장하고 있다. 특히 피터 린치로 투자에 입문한 나에게 있어 《빅 머니 씽크 스몰》은 무척 의미 있는 책이었다. 이 책은 피터 린치의 후계자인 조엘 틸링해스트의 저서인데, 피터 린치의 저서가 기본기를 다져주는 느낌이었다면 《빅 머니 씽크 스몰》은 좀 더 깊어진 가치투자 이론을 다루고 있었다. 이렇듯 투자에 대한 명저를 지속적으로 출간한 출판사에서 내놓은 신작이라 기대가 많았다.

 

 500여 페이지의 방대한 서한집의 내용을 압축하기란 쉽지 않다. 다양한 주제의 서한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전주불도저의 《당신의 투자가 심플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책의 내용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두 책의 핵심이 무척 유사했기 때문이다. 테리 스미스의 투자기법은 여느 가치투자자의 입장과 결을 함께하고 있다. 훌륭한 회사의 주식을 사되 비싸게 사지 않고, 사고 난 뒤에는 아무것도 하지 마라. 결국 퀄리티가 있는 주식을 '비싸게 사지만 않고 보유한다면' 수익을 준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투자가 참 심플해 보인다. 물론 방대한 서한집의 내용이 간단하진 않지만, 책을 관통하는 핵심은 단순했다. 좋은 기업을 싸게 사서 보유하는 것. 모멘텀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하루하루 이슈와 뉴스, 그리고 테마와 재료를 파악해야 하는데 일반인이 이런 부분을 체크한다는 것이 사실 쉽지 않다. 책을 통하여 투자에 있어서 단순한 철학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꼈다.

 

 세부적인 내용들 중 눈에 들어오는 부분은 ETF에 대한 비판과 집중투자 전략, 가치주와 성장주에 대한 생각인데, 특히 PER 지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인상적이었다. 감수에서 언급했듯, 테리는 '가격 대비 높은 퀄리티 주식'을 선호했다. 여기서 핵심 문구는 가격 대비다. 단순한 밸류로 볼 때에는 고평가라고 볼 수 있지만 기업의 미래 성장성과 퀄리티로 볼 때 가격 대비 저렴하다고 계산된다면 매수의 관점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와 관련된 테리의 말을 인용해 본다. '밸류에이션이 낮다고 해서 가격 대비 가치가 높지 않을뿐더러, 밸류에이션이 높다고 해서 가격이 비싸지는 않다.'

 

 이 외에도 책에는 다양한 주제로 쓴 서한들이 가득하다. 최근 가치투자 방법을 두고 '오늘날에도 통용될 수 있는 투자법'인가에 대한 생각도 많았다. 2023년 버크셔 해서웨이 주총에서 '앞으로는 투자로 돈 벌 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언급했듯, 투자에 대한 환경과 조건이 시간이 흐를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가치투자라는 방법은 유효한 것일까?'라는 의구심이 있었는데, 이 책을 보면서 이런 의구심을 덜어낼 수 있었다. 저자는 최근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펀드매니저다. 여러 대가들이 강조하던 가치투자의 요소들이 최근 시장에서도 통용될 수 있다는 점을 스스로 증명했다. 테리 스미스의 발자취가 담긴 《퀄리티 투자, 그 증명의 기록》은 앞서 출간된 《노마드 투자자 서한》과 함께 가치투자가 최근의 시장에서도 충분히 통용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행보가 기대되며, 앞으로도 서점에서 다양한 서한집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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