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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연의보 10 ㅣ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745
구준 지음, 정재훈 역주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2년 4월
평점 :
《대학연의보》 10권은 9권의 '교화를 숭상함' (崇敎化)과 이어진다. 번역본 9권과 마찬가지로 행정 6부 중 예부(禮府)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기에 제도적인 측면보다는 개인의 수양과 유학적 이념에 대한 내용이 많았다. 세부적으로 살펴보자면 9권에서 마무리하지 못했던 '경술에 근본하여 가르침을 삼음'을 시작으로 사회 풍속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유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효에 대한 고찰, 그리고 군주의 솔선수범하는 모습도 강조하고 있다. 제도적인 측면으로는 유가적 이념에 부합한 백성들이나 신하들을 표창하고 시호를 내리는 부분도 다루고 있다. 책의 초반부는 유학의 이념적인 측면이 두드러지는 반면, 뒤로 가면 갈수록 실용적이고 제도적인 부분을 강조하고 있다.
책을 보면서 어릴 때 느꼈던 불편한 감정이 떠올랐다. 어릴 때 고전을 읽으면서 풀리지 않았던 의문점 중 하나는 바로 사상의 편협함이었다. 중국의 다양한 제자백가 철학은 탁월하고 뛰어나지만, 그만큼 자신의 철학을 널리 퍼트리기 위해 배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를 도가는 에둘러 은유와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고 법가는 대쪽같이 대놓고 표현한다. 유가 역사 마찬가지였다. 공자의 《논어》에서도 다른 사상가를 비판하거나, 자신의 사상이 우월하다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표현한다.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는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혼돈의 시기였다. 힘을 가진 나라는 자국이 맹주가 되기 위해 노력했고, 사상가들 역시 자신의 학파를 퍼트리기 위해 진심이었다. 그렇기에 이 시기에 태어난 철학은 어떤 철학이더라도 편협함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가장 인간적이라고 주장하는 유가의 배타성이 시대를 거듭할수록 더 강해지는 부분이었다. 나는 그 부분에서 불편함을 느꼈다. 춘추시대에 태어난 《논어》와 전국시대에 태어난 《맹자》는 얼핏 보면 비슷한 내용 같지만 분위기나 어조는 전혀 다르다. 《논어》보다 《맹자》가 훨씬 격정적이고 과격하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바로 시대적인 분위기가 달랐기 때문이다. 모든 고전은 태어난 시대적 흐름과 환경을 반영하기 마련인데, 춘추시대보다는 전국시대가 훨씬 각박하고 예가 무너졌다. 그렇기에 맹자는 이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유학을 강조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스피커를 키울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이런 부분을 이해하고 넘어가지만 어릴 때에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성선설을 강조하는 휴머니스트 맹자가 다른 사상에 대하여 저렇게 공격적이고 편협하다니! 마치 겉으로는 좋은 말을 하지만 행동하는 데 있어서는 반대로 하는 사람처럼 다가왔다.
그런 맹자보다 한 술 더 뜨는 양반이 바로 주희다. 《대학연의보》 10권의 초반부는 9권 마지막에서 다루던 '경술에 근본하여 가르침을 삼음'이 이어지는데, 이 부분은 성리학적 이념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쓰였다.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단은 왜 안 좋은지, 유가의 가르침은 왜 탁월한지에 대한 온갖 증명으로 구성됐다. 그렇다 보니 어린 시절 《맹자》를 볼 때의 불편함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주희가 이렇게 열을 내는 이유는 당시 송나라에서 유학의 위치가 흔들리기 때문일 것이다. 서쪽에서 들어온 불교와 민간에 퍼진 도교에 비해 세계관도 좁고 내용도 단순하기 때문에 사상적 위협을 받았을 것이다. 이런 배경을 이해하고 나니 편협하게 다가왔던 주희와 다른 사상가들의 목소리도 불편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과거보다는 그래도 조금이나마 열린 마음으로 책에 집중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감동받은 부분은 '효제를 몸소 실천하여 깊이 있게 교화함' 챕터다. 책을 읽으면서 쓰러진 아버지의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아버지는 나에게 있어 큰 기둥이었다. 나이가 들어도 나의 내면에는 항상 거목처럼 버텨주던 정신적 지주였는데, 이제는 내가 아버지를 지켜드려야 한다. 온전하지 못한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지난날 효도하지 못한 스스로를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내 삶의 모토 중 하나는 '후회 없는 삶을 살자'인데, 아버지께서 건강하실 때 효도를 하지 못한 점은 내 인생에 있어 씻을 수 없는 후회로 남을 것 같다. 그렇기에 지난 후회를 만회하고자 현재를 더욱 알차게 보낼 것이다. 건강하실 때 많은 것을 해드리지 못했지만 앞으로 남은 시간은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내가 아버지의 기둥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 외에 눈에 들어온 챕터는 '좋아하고 숭상하는 것을 삼가서 백성을 이끎'이다. 《대학연의보》는 독서 대상이 일반인이 아닌 최고 권력자인 황제다. 《대학연의보》가 태어난 명나라는 신권보다 왕권이 엄청 강화된 전제군주정으로 운영되던 나라였다. 이렇다 보니 황제의 수양은 나라의 국운을 결정할 수 있는 결정적인 요소였다. 왕조 사회에서 황제의 행동과 몸가짐은 무척 중요하다. 최고 권력자인 황제 스스로가 솔선하여 바르게 행동한다면 이런 모습들이 궁중의 다른 제후들로 이어지고, 제후들의 행동은 사대부에게 영향을 미치고, 사대부의 행동은 백성들의 본보기가 된다. 그렇기에 백성들을 바르게 교화하기 위해서는 황제 스스로가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모범을 보여야 한다. 당연한 말 같지만 당연할수록 현실에서는 실천하기 무척 어렵다. 아이를 훈육하는 방법 중 가장 좋은 방법은 부모가 스스로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공부하라 책을 읽어라.' 명령하기에 앞서 귀감이 될 만한 모습을 꾸준히 보인다면 아이는 부모를 닮아 자연스럽게 책을 가까이하고 공부에 흥미를 느낄 것이다. 이번 권도 당위적인 덕목들을 철학적으로 고찰한 내용이 대부분이었지만, 책을 읽으며 스스로의 행동을 돌아봤다.
끝으로 책을 덮으면서 《대학연의》가 출간되었을 때의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과거 《대학연의》가 출간되기 전, TV 사극인 '정도전'에서 《대학연의》가 많이 언급되었는데 이후 책의 출간으로 이어졌다. 공교롭게도 《대학연의보》 역시 출간되기 직전, '옷소매 붉은 끝동'이라는 사극에서 비중있게 언급되었다. 그때 드라마를 보면서 '설마 《대학연의보》가 번역될 수 있을까? 분량이 엄청 많은 고전인데...'라고 의구심을 가졌는데 놀랍게도 출간으로 이어졌다. '드라마 언급 이후 출간'이라는 공식이 나만의 플라시보일 수 있겠지만, 덕분에 《대학연의보》 번역본이 출간되고 볼 수 있었기에 개인적으로 의미를 두고 싶다. 현재 《대학연의보》는 번역본 2권, 9권, 10권만 출간되었는데, 아무쪼록 다음 책들이 무탈하게 출간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