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연의보 9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744
구준 지음, 정재훈 역주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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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출간된 《대학연의보》 번역본은 2, 9, 10권으로, 2권은 인사에 관련됐고 9권과 10권은 예와 관련된 제도를 다루고 있다. 9권은 '교화를 숭상함(崇敎化)' 챕터의 총론을 시작으로 학교 제도 정비, 도학과 경술에 근거하여 사회를 단속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행정을 담당하는 6부 중에서는 예부(禮府)의 업무를 다루고 있다. 예부의 업무를 다루고 있어서 그런지 2권과 비교해 볼 때 성리학적 이념을 한층 강조하는 것 같다. 예와 관련된 《예기》를 많이 인용하고 있으며 《주역》과 《시경》, 《상서》도 자주 보였다.

 

 9권의 핵심은 예와 관련되어 있다. 행정 6부 중 예부(禮府)는 사회 풍속과 학교 제도, 제사 제도 등등을 관장하던 곳이다. 유학에 있어 예란 이념(仁)을 구체화하고 실천하는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다. 법가의 법은 강제성을 가지고 있지만 유가의 예는 강제적 성격보다 당위적인 측면을 부각한다. 이런 예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제사다. 유교 풍습의 문화권에서 제사는 응당 조상에게 마땅히 드려야 당위적인 할 의식으로 통용된다. 법으로 규정하지 않았기에 제사를 지내지 않더라도 어떤 사회적인 불이익을 받지 않지만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긴 어려울 것이다.

 

 유학의 장점이자 맹점 중 하나는 인재를 판별함에 있어 도덕과 능력을 고려하는데 대체로 도덕을 더욱 중시하는 입장이다. 한 마디로 문질빈빈의 인격체를 추구하는데 여기서 바탕은 도덕이라고 할 수 있겠고 무늬는 일머리를 뜻한다고 보면 될 듯싶다. 문제는 이런 초인적인 인간상을 기대하는 것이 비현실적이라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법가에서는 도덕보다 능력을 우선하여 관리를 선발한다. 이에 반해 유가에서는 능력보다는 인간이 된 사람을 우위에 둔다. 법가는 능력이 뛰어난 신하들을 군주가 법과 술을 사용하여 강압적으로 제압할 것을 강조한다. 반면 유가는 인성이 바른 사람들을 조정에 두면 자발적으로 충성하고 정사가 평화로워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능력주의 사회인 요즘에 선호되는 사상은 아무래도 효율성이 돋보이는 법가다. 개인적으로 도덕과 능력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윤리적인 사람이 능력이 뛰어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반대로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도덕적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윤리를 우위에 두는 유가의 사상은 이상적인 측면이 많지 않나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그렇다 하더라도 윤리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사회를 구성함에 있어 도덕과 윤리는 무척 중요하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말처럼,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규정들을 모두 법으로 다룰 순 없다. 그렇게 된다면 사회는 무척 경직될 것이고 개인의 자유도 무척 제한될 것이다.

 

 《대학연의보》는 이념보다 실무와 행정에 초점이 맞춰진 고전인데, 9권의 경우, 예(禮)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어서 그런지 다른 파트와는 다르게 관념적인 성격이 한층 강화된 것 같다. 촘촘하게 제시하는 윤리 강령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명나라가 윤리적으로 바른 사회였다면 굳이 이렇게 구체적으로 윤리 강령을 제시할 필요가 있었을까? 시대를 거듭할수록, 물질문명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편의가 더욱 강화될수록, 윤리와 도덕은 더욱 각박해졌던 것 같다. 유학에서 이상적으로 꿈꾸는 요순의 시대와 책이 저술된 명나라를 비교해 본다면 어느 시대가 윤리적일까? 아무래도 전자의 시대가 아닐까? 문명이 발전한다는 것은 이기적인 군상들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멀리 갈 필요 없이 MZ 세대와 30 ~ 40대 세대의 분위기와 윤리관을 비교해 본다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기에 도덕과 윤리는 중요하다. 이것이 없으면 사회는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9권은 분량이 많고 인용된 경전들의 문구가 다소 형이상학적이라 어려웠지만 윤리와 도덕이 쇠락해가는 현대에 있어 귀감이 될 만한 문구가 많았다. 이런 울림이야말로 고전을 읽는 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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