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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탑다운 투자 전략 - 이베스트 리서치의 주식 투자 레벨 업 프로젝트
윤지호 외 지음 / 에프엔미디어 / 2023년 2월
평점 :
최근에 읽은 투자 관련 신간들 중 투자의 포인트가 상반된 책이 있었는데 하나는 매크로와 관련된 탑다운 투자서였고, 또 하나는 기업에 집중하는 바텀업 관련 책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두 책에는 '한국형'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는데, 그만큼 한국 시장의 특수성이 부각되는 문구였다. 돌이켜보면 2022년은 매크로 지표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시간이었다. 대세상승장인 2020년과 2021년에는 매크로 지표를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 투자를 할 때에도 환경보단 기업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했다. 상승장에는 대세 업종의 애널리스트들을 매체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들의 복음(?)을 들으면서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좋은 기업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신념을 갖게 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고 나면 오르는 주가 앞에서 굳이 매크로 지표를 찾아보지 않았다.
그 결과 2022년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투자자는 시장으로부터 '참교육'을 당했다. 살인적인 금리 인상과 더불어 각종 매크로 지표들에 따라 주가는 출렁이기 시작했다. 폭락하는 주가 앞에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가치투자자들은 자신이 산 주식에 물렸을 때 호가창이나 차트를 확인하기보다 투자 공부를 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랬다. 물린 종목들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공부뿐이었다. 일반적으로 주식을 공부한다는 것은 기업을 공부하는 것으로 통용된다. 주식투자에 있어서 이런저런 포장을 다 걷어내자면 결국은 종목 선정이 중요하니까. 좋은 기업을 공부한다는 것은 결국 좋은 종목을 발굴하겠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작년은 달랐다. 각종 지표의 발표일, 연준 의사들의 발언, 그리고 FOMC를 비롯하여 금리 인상에 대한 코멘트가 있을 때마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마음을 졸이며 실시간으로 발표를 지켜봤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나는 매크로에 대해서 공부를 시작했다. 기업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기업을 둘러싼 환경 역시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라는 것을 하락장을 통해 겪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개인이 공부하기에 매크로가 너무나도 방대하고 복잡하다는 점이다. 쏟아지는 각종 지표들을 일일이 챙겨 본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어떤 지표를 중심적으로 봐야 할지, 지표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투자로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지 도통 감을 잡지 못했다. 책 몇 권을 읽긴 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아리송한 내용이 많았다. 나름 매크로를 진지하게 공부해 보고자 제도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참고한다는 버나드 보몰의 《세계 경제지표의 비밀》을 구매했는데 사전식으로 지루하게 나열된 편집 때문인지 완독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후 금리에 대한 책을 비롯하여 환율과 지표들을 간략하게 설명한 책을 봤지만 괜찮은 책이라고 손꼽은 책은 극소수였다. 가치투자의 교과서는 피터린치와 워런 버핏, 벤저민 그레이엄의 저서를 손꼽고 단기 트레이딩에서는 제시 리버모어나 윌리엄 오닐, 마크 미너비니의 책을 추천하는데 매크로 탑다운 투자에 대해서는 '교과서'라고 할 만한 책을 찾을 순 없었다.
책을 보면서 '왜 이제서야' 이런 책이 나왔는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뒤늦게 본 것이 너무나도 아쉬울 만큼 매크로에 대해서 모범적으로 깔끔하게 정리했다. 윤지호 대표를 필두로 한 이베스트 리서치 센터팀이 공동으로 저술한 책인데, 각 챕터마다 저자들의 개성과 내용이 돋보였다. 책은 거시적인 사이클을 필두로 매크로 지표 그리고 원자재의 동향과 매크로를 활용한 퀀트 투자까지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 도움이 됐던 파트는 역시 매크로 지표를 다루는 3장과 원자재를 다룬 4강이었다.
매크로 지표를 다룬 3장에서는 기초적인 경제지표 용어를 시작으로 다양한 경제 지표 중 어떤 것을 우선적으로 봐야 하는지, 지표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맨투맨으로 과외하듯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책을 읽고 나니 파편적으로 흩어졌던 지표들이 하나로 융합되는 느낌을 받았다. 작년에 매크로에 대한 공부를 하더라도 기껏해야 미국의 CPI나 수출지표만 확인하는 수준이었는데, 요즘은 책에서 다룬 여러 지표들을 실제로 찾아보고 스스로 해석하려고 노력 중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파트는 4강인 원자재였다. 과거에는 원자재란 해외선물을 하는 사람들이 주로 보는 지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점으로 폭등하는 천연가스와 원유, 곡물을 보면서 원자재가 주식을 떠나 일상의 물가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매크로를 다룬 대다수의 책에서 원자재에 대해서는 짧게 언급하는 경우가 많아 아쉬웠는데 이 책은 상당 분량을 다루고 있었다. 특히 농산물 중에서 옥수수가 기억에 남는데, 사료 용도 외에도 바이오에탄올이라는 수요 덕분에 유가와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다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아무튼 투자에 있어서도 환경은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기업이라 하더라도 환경의 악조건을 극복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2022년 대세 하락 속에서 버틴 기업이 얼마나 있을까? 극소수의 업종을 제외하고는 깡그리 폭락했다. BJ 파월을 필두로 한 연준 인사들의 말 한마디에 선물과 코인이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이기는 투자'를 한다는 건 쉽지 않다. 하락장 시기에 경제 매체에서는 상승장에서 자주 보였던 업종 애널리스트보다 매크로를 다루는 애널리스트가 자주 보였다. 이런 매크로 애널리스트들의 활약 덕분에 투자자들은 매크로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문제는 최근이다. 2023년을 시작으로 강한 상승장이 이어졌다. 그래서일까 연준의 발표를 비롯하여 매크로 지표에 대한 시장의 반영이 예전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시장이 덜 반응한다고 해서 매크로의 중요성은 덜한 것일까? 아닐 것이다. 시장의 향방과 분위기를 대략적으로 예측하는 데에는 매크로 지표가 절대적이다. 경기와 주가는 워런 버핏의 할아버지도 확신할 수 없다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매크로 지표를 통하여 시장의 흐름을 어느 정도까지 확률적으로 예측해 볼 수가 있다. 요지는 매크로가 하락장에서만 중요하다는 말이 아니라는 뜻이다. 장세와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체크를 하고 공부해야 될 중요한 부분이다.
투자의 난이도는 분명 어려워지고 있다. 과거에는 싼 기업들이 많았고 매크로에 대해 몰라도 문제없었다. 그러나 요즘은 아니다. 주식의 밸류는 점점 높아지고 있어서 옥석 가리기를 잘 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지금 환경이 어떤지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매크로는 필수다. 과거처럼 기업 하나만을 바라보고 투자하는 시대는 지났다. 그렇기에 이 책이 무척 반가웠다. 변동성이 강한 한국 시장에서 탑다운 투자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분들, 어떤 지표를 확인해야 하고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궁금한 분들, 원자재의 동향이 경기와 주가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알고 싶은 분들께 적극 추천하고 싶은 도서다. 이 책을 읽고나니 읽다 덮어버린 버나드 보몰의 《세계 경제지표의 비밀》을 완독할 용기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