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을 조금 읽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나는 현재 단기매매를 전문적으로 하는 개인 트레이더다. 좋은 트레이더가 되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한데 그중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바로 '심리'다. 단기매매를 추종하는 트레이더는 변동성이 강한 주식에서 수익을 볼 수밖에 없는데, 요동치는 주가를 바라보고 있으면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주가 변동성이 강한 종목의 경우 초 단위에도 수익과 손해를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트레이더는 이런 변동성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가 정한 거래 원칙과 철학에 따라 대응해야 한다. 주가가 목표치 이상으로 오른다면 욕심부리지 않고 수익실현을 하는 것이 현명하고, 목표 손절라인 이하로 떨어진다면 희망 회로를 굴리지 않고 일단 손절로 대응해야 한다. 주식을 처음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었으며, 그 기준을 지키는 것도 무척 어려웠다. 그러나 뛰어난 단타 투자자들은 수익실현을 할 때에도 손해를 볼 때에도 감정의 동요 없이 기계적으로 매매에 임한다.
시장에서 피 같은 수업료를 토해내고 살아남으면서 주린이 시절의 뇌동매매 습관은 많이 고쳐졌지만, 인간인지라 나 역시 원칙을 지키지 않은 매매를 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손실로 이어졌고 그럴 때마다 나 스스로를 다급하게 몰아갔다. 어떻게 하면 감정으로 비롯한 뇌동매매를 하지 않을까? 지금보다 더 승률이 높은 기법을 꾸준하게 실천한다면 수익이 더 늘어날 텐데,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고민들로 무수히 많은 날들을 보냈다. 그렇게 고민을 계속하던 중 하나의 대안을 발견했는데 그것이 바로 '퀀트' 투자였다. 내가 정한 기준을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고, 이를 감정의 동요 없이 꾸준하게 실천할 수 있는 시스템적 투자. 감정으로 인한 뇌동매매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으며 자신이 설정한 투자 원칙에 충실할 수 있는 것이 퀀트 투자였다.
기관의 생리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개인투자자들을 유형화해본다면 크게 가치투자와 단타투자로 나뉠 수 있다. 최근 퀀트를 공부하고 접목하는 개인투자자도 많지만 아직까지는 앞의 두 투자법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에는 퀀트 투자의 비중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퀀트를 공부하고자 나름의 추천도서들이나 입문서들을 읽고 개별 팩터들을 설정하여 초보적인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소액으로 매매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퀀트보다는 내가 직접 매매를 하는쪽이 수익은 훨씬 많았다. 결과는 생각보다 좋지 않았지만 퀀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오히려 재대로 퀀트에 대한 기본기를 배우고 파고들어 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퀀트의 기본과 원리에 대해서 정리된 기본서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최근 이 책을 주변의 퀀트 투자자 지인으로부터 추천을 받았다.
이 책의 저자는 기관에서 퀀트를 중심으로 프랍 트레이더로 활약하고 있다. 얼마 전 저자는 책을 출간한 기념으로 북토크를 열었는데 기관투자자들은 어떻게 퀀트를 적용하는지, 개인투자자는 어떻게 퀀트를 적용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북토크는 서울이었는데 다행히 저녁 시간이라서 참석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강연을 들으면서 저자에게 공감이 가는 부분이 3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 단기 트레이더인 나의 입장과 저자의 프랍 트레이더라는 저자의 입장의 동질성이다. 자금의 규모나 소속의 차이가 있지만 트레이더는 단기 수익을 무조건 창출해야 한다. 내가 주로 거래하는 시장은 중소형주가 많은 코스닥인데, 저자는 주식을 포함한 채권, 선물, 옵션 등등 거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거래한다고 한다. 아무튼 단기 수익을 반드시 내야 하지만 방법론에는 차이가 있다. 저자는 퀀트를 통하여 자금을 운용하고 있고, 나는 나름의 정형화된 기법으로 매매에 임하고 있었다.
두 번째는 심리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다. 퀀트투자라고 하면 보통 컴퓨터를 통한 기술적인 부분만을 떠올릴 텐데, 저자는 기술은 그저 방법론에 불과하고 중요한 것은 시장 전체에 임하는 심리를 잘 컨트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나 역시도 무척 공감한다. 어떤 투자를 하건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된 멘탈이다. 퀀트의 강점은 바로 인간이니까 가질 수 있는 심리적 결함을 최소화한다는 데에 있다. 생각해 보면 주변의 단타 고수 플레이어들은 트레이딩을 할 때 '기계처럼' 매매한다. 손절라인이 오면 손절을 함에 있어 일말의 망설임도 없다. 만족할 만한 목표 수익이 나면 욕심을 부리지 않고 얼른 매도한다. 시장에서 초과수익이 나려면 '비이성적 과열'이 있어야 한다. 나의 수익은 곧 누군가의 뇌동매매의 결과다. 합리적인 매매를 한다면 초과수익은 절대로 나올 수 없다. 누군가의 비이성적인 매매가 있어야 누군가는 손해를 누군가는 이익을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시장에서는 플레이어들의 심리가 무척 중요하다.
세 번째, 꾸준함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다.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심리와 더불어 꾸준함이다. 이 꾸준함이라는 것은 퀀트에 있어서 최고의 팩터 포트폴리오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으로 볼 수 있겠고, 그렇게 하여 도출된 결과를 흔들림 없이 실천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단타 트레이더도 마찬가지다. 초보 때는 자신만의 기준이나 기법을 세우는 것이 우선이다. 여러 가지 매매를 하다 보면 유독 잘 맞고 승률이 좋은 기법을 발견하게 된다. 이후는 기법을 좀 더 가다듬으면서 꾸준하게 실천하는 것이다. 가치투자든 단타투자든 퀀트투자든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기준이 세워지고 나면 이를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 비록 손해를 보는 구간이 있더라도, 전체적으로 볼 때 승률이 7:3 혹은 6:4만 되더라도 수익을 챙기는 데에는 아무런 무리가 없다. 투자 초보들이 착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손절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부분인데, 이는 싸우면서 한 대도 안 맞고 이기겠다는 논리와 비슷하다. 몇몇 거래에서는 손절이 필수적이다.(특히 단타 매매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률이 높은 기법이나 시스템을 개발해 놓는다면 장기적으로 집계했을 때 수익이 날 가능성이 높다. 저자 역시도 퀀트가 수익을 내는 구조에 대해 카지노 시스템과 흡사하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좋은 원칙과 시스템을 정립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하고, 승률이 좋다면 이 시스템을 고수하는 꾸준함이 있어야 한다.
책에서는 퀀트를 7가지 빌딩블록으로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 또한 각각의 챕터에서는 심화 학습을 위해 추천도서들도 제공하고 있어 막연한 퀀트투자를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자세하게 알려준다. 개인투자자인 내가 퀀트를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매매할 수 있는 시장은 중소형주 위주로 돌아가는 코스닥 하나뿐이니 때문에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하는 기관의 입장보다는 수월할 수도 있겠다. 주변에 퀀트투자를 하는 지인 중 한 분이 우스갯소리로 '우리나라에서 퀀트 승률이 높은 시장이 코스닥이야. 그만큼 변동성도 심하고 비이성적 과열이 심한 곳이기 때문이지.' 라고 하던데, 저자도 북토크 강연에서 중국 시장과 우리 시장에 퀀트가 잘 먹힌다고 귀띔했다. 그래서 나도 이 책을 기본서로 삼고 퀀트의 영역에도 본격적으로 공부해 볼 생각이다.
아직까지 퀀트투자가 대중화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양서들을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기관투자자의 시각을 잘 이해할 수 있었고, 대한민국에서 퀀트의 위치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퀀트에 있어 저자의 행보가 무척 기대되고, 다음 저서를 볼 때까지 나 역시도 퀀트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지식과 경험을 갖춰야겠다고 생각했다. 퀀트의 정석이라는 제목이 아깝지 않은 도서다. 퀀트에 대해 자세하게 알고 싶은 분들께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