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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의 태종실록 : 재위 17년 - 새로운 해석, 예리한 통찰 ㅣ 이한우의 태종실록 17
이한우 옮김 / 21세기북스 / 2021년 12월
평점 :
재위 17년 (1417)에 태종을 괴롭힌 것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세자 양녕이고 또 하나는 가뭄이었다. 집권기 후반에 접어들어 태종은 강화한 왕권을 바탕으로 다음 정권을 위해 정부 수뇌부 인사교체를 하는 등 다음 보위를 이을 세자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노력했다. 문제는 세자였던 양녕의 일탈이 가면 갈수록 심해졌는데, 가장 정점을 찌른 것이 바로 이 시기였다.
1416년 하륜과 이숙번을 내치고 박은을 좌의정으로 올린 것은 전적으로 세자를 위한 조치였다. 박은은 명나라 사신도 인정한 충신이었고, 소신 있으며 지방관 경험과 중앙 실무를 두루 걸친 행정의 달인이었다. 능력도 탁월하며 사욕을 채우지 않은 인물이니 안심하고 뒷일을 맡기기에 적임이었던 것이다. 박은 역시 이런 태종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일탈하는 양녕을 굳게 지지했고 일깨우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였다. 정초 1월 1일 신료들과 잔치를 하는 도중 박은은 춤을 추다 뜬금없이 세자 앞에서 눈물을 보이며 태종의 마음을 알아달라고 토로한다. 이뿐 아니라 4월 15일 잔치 자리에서도 박은은 세자에게 충언을 했고 태종 역시 눈물을 보였다.
기록을 보면서 이런 생각도 든다. 박은의 이런 돌발적인 행동은 과연 급조된 것일까? 군신이 모여 즐겁게 마시는 잔칫날, 그것도 왕이 보는 앞에서 미래권력인 세자에게 충언을 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치다. 그러나 태종은 이런 박은을 두둔하며 세자에게 명심할 것을 당부하고 세자 역시도 표면적으로는 박은의 충고를 수용한다. 남의 허물을 공개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하물며 신하가 미래권력인 세자에게 공개적인 훈계를 하는 것은 보통 강심장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박은의 돌발 행동은 태종과의 상의를 거쳐서 행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즉 박은의 행동은 태종의 심중에서 나온 것이라는 뜻이다.
세자의 일탈은 대부분 술과 여자에서 비롯했다. 이 시기 세자는 사대부 곽선의 첩인 어리를 보쌈하여 자신이 취하였다. 구종수와 이오방이라는 소인들과 대궐을 넘나들며 기생, 양갓집 규수를 가리지 않고 동침하는 데 열을 올렸다. 사실을 뒤늦게 안 태종은 복잡한 심경이었다. 그는 미래권력인 세자를 위해 인사를 교체하고 다음 정권의 기틀을 다지는데 집중하는데 반해 세자는 잡다한 것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태종은 진노했고 세자의 진심 없는 사과는 이어졌다. 당대 최고의 글쟁이인 변계량이 세자의 반성문을 대필하였고, 세자는 이를 종묘에 고하며 반성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지만 아들 바보였던 태종은 양녕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태종의 콤플렉스는 적통성이었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동생을 죽이고 형과 싸웠다. 아버지의 권위에도 도전했고, 그랬기에 태종은 더더욱 적장자 계승 원칙에 집착했다. 비록 자신은 이렇게 왕위에 올랐지만 자기 후대는 적장자가 정상적으로 보위에 오르길 희망했다. 그랬기에 숱한 양녕의 일탈을 보고도 참고 인내했다. 언젠가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태종이 이렇게까지 사람에게 헌신한 인물은 아버지 이성계와 동복형제, 그리고 아들들뿐이었다. 그중 양녕는 태종에게 있어 가장 중요했고, 조선의 미래를 상징했다.
태종이 선택한 조치는 바로 세자 주변부를 쳐내는 것이었다. 이오방을 비롯하여 구종수 형제들을 필두로 세자의 일탈을 도운 인물들을 차례대로 사사하였다. 주변을 정리하면 마음을 돌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문제의 근원은 세자 자체에 있었다. 양녕은 겉으로는 반성하는 척했지만, 태종이 사냥 나간 틈을 타서 서연을 중지하였고 활쏘기에 매진했다. 태종이 가뭄으로 근심할 때, 세자는 더위를 핑계로 서연을 줄였다. 자신의 일탈을 도운 소인들을 사사했을 때에도 병을 핑계로 서연에 소홀하였는데 실록에는 주변 사람들을 죽인 것에 대한 원한 때문이라고 정확하게 꼬집고 있다. 세자 주변을 단속하면서도 태종은 떨어진 세자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는 일에 세자를 보내고, 9월 28일에는 사냥을 좋아하는 세자와 함께 강무를 떠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녕은 달라지지 않았다. 연말에는 신효창의 금빛 고양이를 빼앗으려다 서연관의 관료들로부터 책망을 듣는다.
조정의 권력 구도는 자연스럽게 둘로 갈라졌다. 세자를 지지하는 쪽인 박은과 떠오르는 샛별인 충녕 대군을 지지하는 심온 쪽으로 신료들이 양분됐다. 박은은 심온에게 충녕대군의 이목이 집중되므로 세자의 권위가 상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경고를 한다. 심온은 그런 박은을 무시하고 오히려 충녕대군을 두둔하기에 이른다. 조심성 없는 심온의 모습을 통하여 그의 앞날을 손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이상의 기록으로 볼 때 양녕의 폐세자는 당연하게 느껴진다. 태종이 무엇 때문에 나라의 기틀을 다졌던가. 모두 신생국 조선의 밝은 앞날을 위해서였다. 그랬는데 조선의 미래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었다. 아들을 끔찍하게 생각했고 자신이 가지지 못했던 적통성에 집착한 태종이었다. 그랬기에 양녕에 대한 애증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공을 위하여 사를 버려야 하는 결단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