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전문서적을 주력으로 발간하는 주류성 출판사에서 중국 왕조 역대 황제 평전 시리즈를 기획하였는데, 이번에는 《송나라 역대 황제 평전》이 신간으로 발간됐다. 전작인 명나라와 청나라, 당나라도 무척 재미있었는데 이번 작도 무척 기대가 됐다. 송나라는 중국 문화에 있어서 무척이나 의미 있는 왕조이며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중국 역사에서 송나라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점이 특별한 것일까. 책의 서두에서 언급하듯 송나라는 중국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왕조였으며 국가를 다스리는 방향도 문치를 지향했으므로 신민들의 인권도 나름 보장됐다. 송태조 조광윤은 오대십국의 혼란기를 최대한 평화로운 방책으로 해결하였으며 통일된 중원을 무력이 아닌 문치로 다스리고자 노력하였다. 이후 계승한 송나라 군주들은 조광윤이 설정한 문치주의의 기조를 벗어나지 않았으며 그랬기에 송나라는 뛰어난 문명을 꽃피울 수 있었다.
중원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운 문치를 지향한 송나라는 정치와 인권의 발전뿐만 아니라 과학기술과 도시문화, 상공업 발전 등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여줬다. 송나라의 군주들도 기본적으로 유학적인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노력하였으며 신하들을 강압적으로 누르지 않고 최대한 예우하며 함께 국정을 이끌어가려고 하였다. 유교에서 이상적으로 여기는 '군신공치'의 이념이 실제로 구현된 것이다. 특별함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중원에 들어선 여러 제국들 중 한족이 중심이 되어서 건국한 통일왕조는 한나라, 송나라, 명나라가 대표적이다. 이렇다 보니 중국인들에게 송나라는 핏줄로도 가까운 나라로 인식됐다.
한나라가 중국인의 아이덴티티와 지향하여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면, 당나라는 제국의 확장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줬다. 송나라는 중원의 주류 사상인 유가 사상에 입각한 문치주의를 가장 잘 구현했으며 이를 통한 정치적, 문화적, 정신적 문명의 높은 발전을 보여줬다. 불행하게도 송나라 이후 들어서는 원나라와 명나라는 무력과 전제정치에 입각하여 중원을 다스렸으니 오늘날 민주적인 정치제도로 판단해 보자면 발전이 아닌 퇴보한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뛰어난 문명국인 송나라는 과연 문제가 없었을까?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문치주의를 극도로 숭상한 점에 있다. 전근대 왕정국가의 통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文)과 무(武)의 조화다. 중원이 무척 혼란한 난세의 시대에는 사실 문(文)보다 무(武)의 중요성이 커진다. 송나라는 중원을 통일했다고 하지만 중원의 북쪽에는 거란의 요나라, 여진의 금나라 등이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해 송나라 시대는 남북국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치주의를 숭상한 송나라와 다르게, 요나라와 금나라는 무척 호전적인 국가였다. 송나라는 이들과 싸움을 회피하려고 노력했는데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무척 많은 돈을 소모하였다. 실력이 아닌 돈과 타협으로 평화를 유지한 것이다.
군주들은 현실에 직시한 위험을 외면했고 예술과 문화에 심취했다. 문신들 역시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관념적인 탁상공론을 일삼으며 붕당을 지어 황제의 권력을 압박하고 정치적 이해가 다른 당파를 공격했다. 송나라는 뛰어난 문화를 이룩했지만 이를 스스로 지킬 능력과 의지가 없었다. 과학기술도 발전하여 당시 기준으로 최첨단 무기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두려워하여 싸움을 회피했다. 그 결과 북송의 마지막 황제라고 할 수 있는 휘종과 흠종은 금나라에 끌려가서 개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객사했다. (정강의 변)
이 책은 정치사를 다루고 있기에 자세하게 나오지 않지만, 송나라가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성리학'이 이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중국뿐만 아니라 동양사 전체를 놓고 봐도 성리학은 매우 중요하다. 한반도의 여말선초 시대, 조선을 개국한 주도적인 세력들이 바로 신진사대부인데 이들의 사상적 바탕도 성리학이다. 고려를 대신한 조선도 성리학을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졌는데, 이런 성리학은 조선이 멸망하기 전까지 약 500여 년 동안 한반도를 지배한 사상이었다. 이렇듯 성리학은 우리나라와도 때려야 땔 수 없는 사상이었던 것이다.
성리학을 자세하게 분석해 보면 송나라의 장단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성리학이 태어난 배경에는 극도로 지향한 문치주의가 주요한 원인인데 현실에서 이민족에게 짓밟히는 암담함을 곱씹으며 정신승리하며 만든 사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현실적이기 보다 관념적인 성격, 군주의 권한을 전적으로 옹호하는 것이 아닌 신권과의 조화를 강조한 부분, 학문적 체계와 도통을 세운 부분 등... 여러모로 송나라의 성격을 그대로 이어받은 철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성리학을 절대화하여 국가의 주류 사상으로 받아들인 조선은 어떠했는가? 송나라와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극단적인 문치를 숭상하다 임진전쟁을 불러일으켰고, 망할 때까지 급변하는 세상의 변화를 받아들이기보다 탁상공론을 일삼으며 성리학적 틀을 더욱 견고히 하려고 노력했다. 아무리 뛰어난 사상과 관념이 있더라도 지킬 수 없는 힘이 없다면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다. 사라진 송나라와 조선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