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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인간의 탄생 - 체온의 진화사
한스 이저맨 지음, 이경식 옮김, 박한선 해제 / 머스트리드북 / 2021년 9월
평점 :
'체온의 1도만 올라도 면역력이 대폭 높아진다.'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문구이며, 이를 자세하게 고찰한 책도 시중에 많이 나와 있다. 체온을 굳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몸과 면역체계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얼핏 봐서는 책의 내용이 무척 진부하게 느껴졌다. 저자는 인간과 동물은 체온조절, 즉 따뜻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성장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따뜻함의 추구'는 물리적인 따스함뿐만 아니라 정신적, 정서적 유대관계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스스로는 혼자서 산다고 자위하더라도 개인의 삶 속에는 좋건 싫건 여러 유대관계가 복합적으로 뒤섞여 있다. 인간뿐만이 아니라 동물도 마찬가지다. 애완동물들은 자신의 주인에게 애정을 표시할 때 가장 흔하게 나타내는 행동이 바로 몸을 부비는 것이다. 동물들도 자신들의 유대를 갈구할 때, 신체를 비비고 체온을 나누는 행위를 보여준다. 인간은 여기서 나아가 관계에 있어 심리적 정서적인 유대관계를 복합적으로 추구하며 유대감을 강화했다. 그런 유대감의 핵심은 '따스함'이었다. 대부분의 생물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따스함을 추구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과학은 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데, 그중 한 가지가 바로 당위의 검증이다. 누가 봐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들을 체계적으로 증명하고 확인하여 정리해야 한다. 따뜻함을 추구하는 생물의 본성도 이런 당위적인 영역에 속한다. 저자는 체온조절에 대한 다양하고 객관적인 실험을 실시했고, 이를 통하여 생물은 물리적, 심리적으로 따스함을 추구하며 진화했다는 결론을 검증한다. 두꺼운 책은 저자의 열정 어린 실험과 진지한 담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동물의 예를 비롯하여, 인간의 본능적인 부분과 심리적인 결정에 이르기까지 따스함이 생물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생각 이상으로 엄청났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 수학의 검증 문제를 푸는 느낌을 받았다. 답은 알고 있지만, 왜 이런 답이 도출되는지에 대해 고찰하는 과정. 그 과정이 지루하거나 따분하지 않았다. 이런 일련의 즐거움이 '지적인 유희'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인문사회학적 취향을 가진 문돌이 입장에서 과학 관련 서적은 탐탁지 않은 '어딘가 불편한' 존재다. 과학은 예시가 많고 실증적인데 반해, 인문 쪽은 실증보단 주관적 통찰과 직관에 치우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여느 과학책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술술 읽혔다. 그 이유를 곱씹어 보니 저자가 다루고 있는 분야는 과학뿐만이 아니라 사회, 집단, 개인의 심리 등등 사회학에서 범주로 다루는 부분들까지 확장하고 있어서 골수 문과생들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개별 학문의 전문성도 중요하지만, 2000년대 이후를 기점으로 간학문적인 활동이 급격하게 늘어났는데, 이 책도 과학(진화론), 사회학(관계), 심리학 등등을 복합적으로 다루고 있다.
두꺼운 책을 덮으면서 생각한다. 오늘날 지구촌은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 간의 직접적인 대면접촉의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 따스함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 본성이라면 언택트 시대는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일까. 아마도 간접적 정서적 유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데, 이를 어떻게 추구해야 할 것인가. 이 역시 우리 세대가 풀어야 할 중요한 숙제라고 생각한다. 유례없는 비극을 맞이했지만 우리의 선조들이 따스함을 잘 유지하며 이어왔듯, 우리 세대도 분명 잘 극복하여 따스한 온기를 꺼트리지 않을 것임을 강하게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