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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자 - 도가사상의 정수
열자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21년 6월
평점 :
일반적으로 노장사상을 대표하는 책으로 《노자》와 《장자》를 으뜸으로 꼽는다. 그렇기에 도가사상은 노장사상으로 통한다. 오늘 리뷰하려는 《열자》도 이런 도가사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책이다. 《노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명의 화자가 무미건조한 어조로 자신의 철학을 설명한다. 《장자》는 《노자》와는 다르게 작은 이야기집, 우화로 구성되어 있는데, 《열자》 역시 이와 비슷하다. 그렇기에 《열자》와 《장자》는 우화집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사상적으로는 도가사상에 기초한다.
비슷한 구성의 책이라서 그런 것일까? 왜 《열자》는 《장자》보다 덜 알려지게 됐을까? 역자의 자세한 해설을 읽고 나름의 짧은 지식을 통하여 생각해 본 바 내 결론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흔히 도가사상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신선'이다. 세속으로부터의 탈피, 원시적인 자연을 동경하며, 속세를 잊고 사는 자연인의 모습. 이런 모습들은 도가철학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심상이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해 볼 점은 과연 도가철학이 개인의 탈속과 자유만을 추구했느냐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서 《장자》는 철저하게 개인의 자유와 탈속을 추구하는 노선을 따르고 있다. 그럼 도가사상의 원류에 해당되는 《노자》는 어떠한가?
다양한 판본들을 읽어보고 나니 《노자》는 개인의 수양과 탈속보다는 공동체적, 즉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정치적인 내용을 다루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춘추전국 시대와 전한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도가적인 색채를 가진 인물들은 하나같이 다들 정치와 관련됐다. 초한쟁패의 영웅이라 할 수 있는 장량과 진평이 이에 관련된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결론을 내려보자면 《노자》는 개인의 탈속보다는 국가의 정책과 방향과 관련된 정치서적 텍스트이고, 《장자》는 자유분방한 노자의 사상을 개인의 관점으로 재해석한 책으로 볼 수 있다.
《열자》는 어떤 책일까? 표면적으로 봤을 때에는 《장자》와 비슷하게 탈속과 관련된 내용이 많아 보인다. 그러나 우화들을 자세히 음미하다 보면 《노자》에서 추구하던 공동체와 정치적인 내용도 들어있고, 《장자》에서 추구하는 개인의 탈속과 관련된 내용도 들어있다. 역자인 신동준 선생님은 기존의 학계와는 다르게 고전을 색다른 관점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은데, 《열자》 역시 마찬가지다. 역자는 《열자》는 《노자》의 기본 사상인 정치적인 성격을 이어받은 우화집이라고 규정하고, 《장자》보단 《열자》가 《노자》의 사상을 직접적으로 계승했다고 주장한다.
개인적으로 《열자》를 읽으면서, 《열자》가 《노자》를 사상적으로 직접적인 계승을 했다는 논의에 갸우뚱한 부분은 있지만, 확실히 《장자》보단 《열자》 쪽이 정치적인 뉘앙스가 많다는 주장은 긍정한다. 그렇기에 역자의 주장과 나의 생각을 절충해보자면 《열자》는 《노자》와 《장자》의 사이를 연결하는 가교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이렇듯 《열자》는 특유의 잡탕적 성격 때문에 역대 이래로 위서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진서로 규정하는 것이 학계의 대세인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눈에 들어온 부분은 양주와 관련된 내용이다. 중국철학은 대부분 공동체와 관련된 경우가 많다. 농경, 정착 문화를 가진 민족이기에 철학 역시도 공동체의 효율적인 통치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고찰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러나 이런 중국에서도 극단적인 개인주의 철학을 가진 사상가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양주다. 양주는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 개인의 행복을 희생할 수 없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는데, 전체주의적인 성격이 강했던 그 당시에는 굉장히 파격적인 주장이었다. 그래서일까, 양주의 목소리를 담은 저작은 전해지지 않는데, 유일하게 양주의 관점을 볼 수 있는 책이 바로 《열자》다. 이뿐만 아니라, 《열자》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우공이산'과 같은 고사의 우화도 볼 수 있어, 이런 부분들을 발견하는 것도 쏠쏠한 즐거움이었다.
개인적으로 신동준 선생님의 동양고전 번역본을 흥미롭게 읽었는데 몇 년 전 갑작스러운 타계 소식을 듣고 무척 놀랐다. 그렇기에 역자의 이름으로 나오는 동양고전은 보기 힘들겠구나 아쉬웠는데, 이렇게 새로운 신간으로 《열자》를 만나니 오랜 지기를 보는 것처럼 무척 반갑다. 물론 이 책은 예전에 발간됐던 책인데 구간이 절판되어 새로운 표지와 편집으로 출간된 책이다. 돌아가셨지만, 새로운 편집본을 통하여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나름의 아쉬움을 덜어낸다. 《열자》를 시작으로 《논어》, 《맹자》, 《대학중용》, 《노자》, 《장자》, 《주역》 등등의 책들도 새롭게 복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