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몽룡의 동주열국지 5 - 전국시대
풍몽룡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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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 열국지》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할 5권은 전국시대를 다루고 있다. 4권의 마지막에서 변방 중의 변방인 오나라와 월나라가 차례로 패자를 칭하면서 춘추시대는 지나고 전국시대로 접어들었는데, 흔히 "춘추전국"으로 합쳐서 표현하는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는 각각 어떤 특징이 있을까? 여기서는 서주시대를 포함하여 세 시대의 특징을 간략하게 고찰해보려 한다.

 

먼저 가장 앞선 서주시대는 주나라의 전성시대로 제도적으로 봉건제를 지향한다. 주나라 시대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분은 왕중의 왕인 천자인데, 오직 주나라의 군주만이 분봉(영지를 나눠서 제후에게 주는 것) 할 권리를 가졌다. 물론 천자는 실질적으로 자신의 영지인 주나라만 다스리고 다른 지역은 제후들이 다스리기에 권력의 분포로 살펴보자면 지방분권형 정부와 비슷하다. 전국의 제후들을 다스리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수단은 바로 예악이었다. 예는 사회질서를 뜻하고 악(음악)은 예의 경직성을 이완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서주시대의 봉건 시스템은 시간이 지나면서 한계를 드러냈다. 봉건제는 지방 제후들의 현실적 힘을 고려하지 않았고, 이를 통제하는 예악 역시 강제성이 없었기에 제후들의 야심을 통제하는 데 있어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서주시대 후대의 천자들은 하나같이 개인적 쾌락을 탐닉하고 정사를 게을리하였다. 그 결과 서주시대를 지탱하던 예악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결국 주나라는 내외부의 혼란으로 인해 동쪽으로 천도하게 된다. 바야흐로 동주시대의 서막이 올랐다. 역사가들은 동주시대를 기점으로 춘추시대가 시작됐다고 규정한다.

 

대륙을 호령하던 아버지, 주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본 제후들은 호시탐탐 맹주의 자리를 노리기 시작했고 이런 와중에 제나라의 환공이 가장 먼저 실력행사에 들어갔다. 그는 주변 제후국들을 불러 모아서 회맹을 주도하면서 제나라가 중원의 맏형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아버지가 아닌 맏형이라는 것이다. 환공은 자신이 국제사회의 실력자임을 자처했지만 주나라의 왕, 즉 천자의 권위까지는 도전할 마음이 없었다. 존왕양이, 즉 왕을 높이고 주변의 해로운 것들은 물리친다는 구호를 내세워 명분과 실리를 두루 찾으려고 노력했다. 명분과 실리. 이질적인 가치관이 남아있는 시대가 바로 춘추시대였다. 그렇기에 춘추시대는 모순으로 가득 찼다. 주나라 천자의 귄위는 인정하지만 실질적인 국제사회의 질서는 패자가 담당했다. 사회적으로도 주나라의 예악이 붕괴되고 수많은 하극상이 일어났지만, 한편으로는 무너지는 예악과 질서를 수호하고, 지키고자 노력했다.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시대였다. 춘추시대에서 가장 주목받는 계급은 제후였다. 천자는 이미 허수아비가 되었으며 그런 천자를 대신하는 계급은 패자가 된 제후였기 때문이다. 제환공을 시작으로 진(晉)문공, 초장왕, 오합려, 월구천 등이 차례로 패자에 오른다. 유심히 살펴볼 점은 권력의 축이 북방에서 남방으로 이동했다는 점과 문명 지역에서 야만 지역으로 패자의 자리가 옮겨갔다는 점이다.

 

이는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중화문명의 범위가 확장됐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바로 야만인들의 권력 쟁탈 방식이 중원에 스며들었다는 점이다. 즉 중국은 춘추시대를 거치면서 중화문명의 범위를 물리적으로 넓혔고, 반대로 내부적으로는 야만인들의 거친 습성과 호전성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춘추오패 중 가장 야만적인 나라 월나라가 패자를 선포한 이후, 중원은 또다시 혼란에 빠졌다. 새로운 시대, 전국시대의 서막이 올랐다.

 

전국시대는 이전 시대와 비교해볼 때 어떤 특징이 있을까.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주나라에 대한 존왕양이 가치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춘추시대에는 미약하게나마 주나라의 권위를 인정하고 예악과 질서를 수호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전국시대에는 약육강식을 지향했다. 그렇기에 작은 군소 나라들은 커다란 세력에 멸망당하고 천하는 7개의 강대국으로 재편된다. 춘추시대가 명분과 실리가 공존했다면 전국시대는 오로지 실익에만 관심이 있었다.

 

전국시대를 대표하는 계급은 두 계층인데 전반기는 '대부'이고 중 후반기는 '사인'이다. 대부는 제후의 가신이자 고급 귀족이고, 사인은 대부의 가신으로 신분상으로는 가장 낮은 귀족이지만 전국시대에 접어들어 평민과 다를 바 없었다. 약육강식의 시대가 도래하자 나라와 나라뿐만 아니라 나라 내부에서도 계층 간 하극상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춘추오패로 명성을 떨친 진(晉)나라의 몰락이다. 당시 진(晉)나라는 제후인 군주보다 대부들이 권력이 강했고 그 결과 나라는 위, 한, 조 세 개로 쪼개지는데 이들 세 나라를 삼진(三晉)이라고 한다. 삼진(三晉)의 출현은 대부 계층의 부상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또한 대부와 더불어 사인 계층 역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학문을 익혀 강대국들을 떠돌며 유세를 하여 출세를 도모했다. 전국시대는 능력만 있다면 파격적으로 임용하는 사례가 빈번했기에 사인들 역시 생계와 명예를 위해 열국을 주유하며 구직을 청했다. 이 시기에 활약했던 소진과 장의, 상앙, 한비, 이사 등등이 사인 계급을 대표한다.

 

전국시대를 주도한 나라는 진(秦)나라인데 중원을 하나로 통일하는 국가다. 진(秦)나라는 춘추시대 중원에 위치한 진(晉)나라에 문공을 군주로 만들면서 두각을 드러냈는데 당시에 진(秦)목공은 서쪽 변방에서 오랑캐로 취급받던 진(秦)나라의 내실을 다진 군주였다. 이후 진(秦)나라는 주나라의 봉건제를 군현제로 대체했고 예악이 아닌 엄격한 법률로 내부를 다스렸다. 군현제는 지방 분권적인 봉건제와 대조적으로 중앙집권을 추구하였고, 강력한 법률 역시 백성들과 관료들을 통제하는 데 있어 효율적이었다.

 

진(秦)나라가 추구하던 사상은 법가 사상인데 이는 봉건제를 수호는 입장인 유가 사상과 대조적이다. 법가는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사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는데 그 새로운 방법이 바로 엄격한 법제였다. 난세의 시기, 인의와 예악으로 대표되는 유가보다 엄격한 법가의 사상이 훨씬 현실적이었기에 결국 진(秦)나라는 주나라 왕실을 멸하고 6국을 정복한 뒤 전국통일은 달성한다.

 

《열국지》의 이야기는 시황제의 통일로 끝이 나는데 이후의 이야기는 《초한지》로 이어진다. 이렇듯 《열국지》는 방대한 춘추전국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로 책 속에는 엄청나게 많은 인물과 사건이 등장한다. 이 시기를 다루고 있는 역사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마천의 《사기》인데, 《열국지》가 문학적인 스토리텔링에 의거하여 시대를 표현했다면 《사기》는 인물 중심의 역사책이기에 가독성 면에서는 《열국지》가 더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역자인 신동준은 다양한 동양고전을 번역했는데 문학과 역사 철학 등 중국 인문학의 장르를 가리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역자의 번역서는 기존의 학계와는 색다른 해석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열국지》 번역에서도 작가만의 독창적인 견해가 많아서 기존의 견해와 비교 분석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일각에서 《열국지》를 두고, 장르는 문학이지만 역사서로 삼기에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라고 칭송한다. 소설이기에 허구가 가미되었지만 비슷한 장르의 《삼국지연의》, 《초한지》보다는 심하지 않다. 그렇기에 이 책으로 방대한 춘추전국시대를 입문하는 것도 탁월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묵직한 장편소설을 다 읽고 서평을 마치고 나니 기분이 무척 시원섭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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