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근세의 새벽을 여는 사람들 1 - 센고쿠기의 군상 일본 근세의 새벽을 여는 사람들 1
이계황 지음 / 혜안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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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연말 근세 일본에 대한 책이 연달아 출간되었는데 김시덕 교수의 《일본인 이야기》와 이계황 교수의 《일본 근세의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다. 두 책 모두 근세 일본을 다루고 있으며 시리즈물로 기획됐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서술 포인트는 상당히 다르다. 《일본인 이야기》는 근세 일본을 신선한 시각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정치적인 흐름을 포함하여 세계사에서 일본이라는 플레이어가 어떻게 활약하는지, 그리고 이 시기에 새로운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 카톨릭의 영향력이 생각보다 대단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일본 근세의 새벽을 여는 사람들》은 일본의 전국시대에 혼란했던 다이묘들의 정치적 군사적 움직임을 소상하게 밝히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데, 《일본인 이야기》에 서술된 것보다 훨씬 디테일하고 전문적이다.


그러므로 두 책을 정리해보자면 《일본인 이야기》는 범위는 넓고 깊이는 대중적인 시각으로 설정하여 기술하고 있는데 반해 《일본 근세의 새벽을 여는 사람들》은 범위는 다소 좁으나 깊이는 심도 있게 파고 들어간다. 똑같은 시기를 다룬 책이 연달아 출간된 것도 신기한데, 저자에 따라서 같은 시대를 다룬 저술의 포인트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재미있다. 《일본 근세의 새벽을 여는 사람들》 시리즈는 총 2권으로 출간됐는데, 1권의 제목은 센고쿠기의 군상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책은 무로마치 막부의 전반적인 정치 흐름을 시작으로 센고쿠(한자어로 전국을 뜻하나 책에서 표기한 대로 본 글에서도 앞으로 센고쿠라고 표현한다.) 시대의 서막을 알린 오닌의 난, 그리고 슈고 다이묘들의 몰락과 센고쿠 다이묘들의 등장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을 리뷰하기 전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먼저 이 책은 내용은 다소 전문적이다. 그러므로 일본, 특히 센고쿠 시대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완독하기 힘들다. 책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나오며, 수많은 사건이 나오는데, 일본 지리와 문화, 그리고 인물들에 대해서 잘 모르는 대다수의 한국인들의 입장에서는 소화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일본인 이야기》는 역사적 흐름보다 저자의 주관적인 해석을 전면에 내세운 책이라면 《일본 근세의 새벽을 여는 사람들》은 저자의 주관적인 해석은 최대한 배제하고 역사적 흐름을 위주로 전개하고 있다. 무로마치 막부에서 센고쿠 다이묘들의 시대가 오기까지 정치적 군사적으로 잡음이 많았는데 이런 분위기는 특정 지역을 넘어 일본의 전 영토에서 전방위적으로 일어난다. 국내에 소개되거나 번역된 센고쿠 역사서는 소위 전국시대의 3걸이라고 불리는 노부나가, 히데요시, 이에야스에만 집중하고 있는데, 이런 책들도 대체로 편향된 시각을 보이거나 얕은 처세술을 이야기하는 부류가 대다수였다.


그에 반해 《일본 근세의 새벽을 여는 사람들》 1권의 경우는 센코쿠 시대가 열리기 전 무로마치 막부가 내재하고 있던 잡음과 센고쿠 시대를 열었던 오닌의 난의 배경을 디테일하게 분석하고 있으며, 일본 전역에서 일어난 정치적 군사적 행적들을 소상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렇기에 책의 두께에 비해 다루고 있는 양은 많았고, 너무나도 많은 등장인물과 사건이 나오기에 책을 끝까지 완독하는 데 있어 애정과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저자는 최대한 자신의 의견은 자제하고 역사적 흐름만을 담담하게 기술하겠노라고 서두에 밝히지만, 정치적 군사적인 흐름을 설명한 뒤 이런 행동이 정치적으로 어떤 점을 노린 것인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짤막하게 코멘트를 달고 있다. 학자나 이 분야에 능통한 전문가 독자 입장에서는 이런 부분이 다소 불편하게 다가올지 모르겠지만, 일반 독자의 입장인 나에게는 이런 저자의 코멘트가 시대를 이해하고 각 세력의 이합집산을 이해하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됐다.


책의 내용은 굉장히 복잡하지만 간단하게 축약해보면, 일본의 역사를 크게 살펴보면 지금의 도쿄를 중심으로 한 간토(동부) 지역과 교토를 중심으로 한 간사이 지역(서부)의 갈등이 거대한 축이라고 볼 수 있다. 고대 이래로 가마쿠라 막부 이전까지는 선진문물의 통로인 해안가가 있는 간사이 지방이 정치적 중심지였다, 이후 가마쿠라 막부가 간토 지방에 세워지고 정치의 축은 동부로 이전된다. 가마쿠라 막부 이후 교토에 무로마치 막부가 세워지면서 열도의 실권은 다시 간사이 지방으로 이전되며, 센고쿠기를 거쳐 에도에 막부를 세우게 된 도쿠가와 가문 덕에 다시금 간토는 정치의 중심지로 거듭난다.


무로마치 막부는 중앙 집권을 지향한 도쿠가와 가문의 에도막부와는 다르게 쇼군 가신단과 유력 슈고 다이묘의 연합체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다 보니 쇼군이 어지간한 역량을 지니지 못한다면 (아니 역량을 가진다 할지라도) 유력 슈고 다이묘와 가신단을 정치적으로 제압하는 데 있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무로마치 막부 중기와 말기에는 외부적으로 간토에 세워둔 가마쿠라부와도 대립이 있었는데, 간사이 지방에 있는 막부가 간토 지역까지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기 힘들었으며, 역사적으로 두 지역은 갈등관계 속에 있었기에 간토의 영주들 역시 쇼군가의 권위를 대수롭지 않게 보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명목상으로는 쇼군의 지위를 인정하지만 수가 틀리면 언제든지 자기들끼리 연합하여 반기를 들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앙 정치의 갈등과 하극상 분위기는 지방으로도 스며드는데, 여러 지방의 대영주인 슈고다이묘는 중앙 정치를 위해 수도인 교토를 들락거렸으므로, 실질적인 영지 지배는 슈고다이나 가신들에게 위임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다 보니 실질적으로 지방의 토지를 다스리는 사람은 슈고다이묘가 아닌 슈고다이나 가신들인 경우가 많았는데, 이들 역시 슈고다이묘 몰래 지방 행정력과 군사력을 장악했다. 그래서 오닌의 난 이후 무너지는 중앙 정치에 실망하여 돌아온 슈고다이묘들 가운데에서는 자신의 영지의 행정력을 장악한 유력 가신이나 슈고다이에게 오히려 죽임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이런 하극상 풍토에 불을 붙인 것은 중앙 정치를 관장해야 하는 쇼군의 떨어지는 역량이었다. 나라가 망조에 들 때에는 늘 빠지지 않는 것이 무능하고 어린 최고지도자와 그 틈을 비집고 권력을 휘두르려는 세력들의 움직임인데, 무로마치 막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뛰어난 정치력으로 지방의 하극상을 진압한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 외에는 그렇다 할 정치력을 보여준 쇼군이 없었는데, 쇼군의 강력한 권력을 지향했던 6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노리가 아카마쓰 노리야스에게 살해당하면서(가키쓰의 난) 끝내 쇼군가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만다. 이후에 집권하는 쇼군들은 전전긍긍 자신의 자리만 지키기에도 벅찼으며, 결국 이런 쇼군의 정치적 우유부단함, 슈고 다이묘들과 쇼군 가신단의 대립, 지방의 하극상 풍토가 빚어낸 결과가 바로 '오닌의 난'이었다.


오닌의 난은 쇼군의 후계자를 정하는 것으로 의견이 나눠 일어났지만 이는 명목상인 이유일뿐이고, 실질적으로는 슈고다이묘와 가신단간의 이합집산으로 인한 권력 다툼이었다. 전쟁은 동군과 서군으로 나눠 지루하게 전개되었는데, 결과적으로 교토는 불타기 시작했고, 강력한 세력을 자랑하던 슈고 다이묘와 가신단은 대규모 충돌로 인해 군사적인 힘이 크게 약화됐다. 중앙의 이런 흐름을 살피던 지방의 슈고다이와 슈고다이묘의 가신 세력들은 서서히 지역 내에서 실력을 과시하기 시작했고, 혈연이나 혈통보단 정치적 군사적 실력으로 모든 것이 결정 나는 센고쿠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규슈를 포함한 서부, 그리고 도후쿠를 포함한 동부, 중부를 포함한 기나이 등 일본 열도 전방위에서 영지의 지배권을 잡기 위한 전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슈고다이묘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실력으로 영지의 지배권을 획책하기 위해, 영지를 넓히기 위해 전투는 이어졌으며, 그 속에서 여러 세력들 간의 이합집산, 합종연횡이 끊임없이 반복됐다. 서부에서는 전통적인 슈고 다이묘인 오우치가와 신흥 세력가인 아마고가의 전투가 메인이었지만, 결국 최후의 승자는 모리 가문이었다. 중부의 경우 오와리에서 일어난 오다 가문이 전통적으로 막강했던 슈고 다이묘인 이마가와가와 새로운 패자로 등극한 사이토가를 무찌르고 패권을 장악한다. 간토 지역에서는 카이의 다케다가, 그리고 다테가와 도호쿠의 우에스기가 등이 두각을 드러냈다. 무로마치 막부의 지방 행정권은 혈연과 세습에 기초한 슈고다이묘가 가지고 있었는데, 오닌의 난을 통해 세습적 권위가 무너지자, 영주의 실권을 장악하는데 역량이 부족했던 슈고다이묘는 하극상으로 권좌에서 내려오게 된다. 힘으로 권력을 쟁취한 소다이묘들이나 가신들, 그리고 정치적 군사적 역량으로 권좌를 지키는데 성공한 슈고다이묘들은 센고쿠 다이묘로 진화하게 되고, 중앙 정부와 쇼군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센고쿠 다이묘들은 광역적인 패권 경쟁에 돌입하게 된다.


짧은 시기 다양한 세력의 활동을 담고 있어서 책을 쫓아가는데 나름 애를 먹었지만, 완독하고 나니 남는 것도 많았다. 센고쿠 시대는 일본 역사, 그리고 세계 역사에서 가장 특이한 시대였다. 이 시기 우리나라는 문치주의와 평화로운 관계에 사로잡혀 태평스러운 나날을 보냈는데, 물 건너 일본에서는 무로마치 막부가 통치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군사적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막부와 영주들은 늘 긴장 속에 군사적인 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일본인들은 정확하고 계산이 빠르며 이해타산을 칼같이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이런 부분은 무로마치 막부와 센고쿠기의 시대를 거치면서 생존하고자 했던 지배층의 모습에서 비롯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정치에서 윤리를 강조했다. 문제는 이런 윤리를 너무 강조하다 보니, 실질적인 정무 능력보다 공직자에 대한 도덕을 너무 우선하여서 현실성이 없었는데, 일본은 그 반대인 것 같다. 이들에게 있어 정치란 윤리와 도덕 이전에 생존의 문제였다. 일개 평민과 무사에서부터 하급 다이묘, 그리고 슈고 다이묘와 조정의 대신들, 심지어 천황과 막부의 수장 쇼군까지, 자신을 노릴 수 있는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었으며 이렇다 보니 어제의 적은 오늘의 우군, 오늘의 우군은 내일의 적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매우 흔했다. 이런 일본의 정치적, 군사적 흐름은 현실을 너무 극도로 생각한 나머지 최소한의 윤리마저 결여된 것 같았다. 아무튼 책을 통해서 오늘날 일본의 모습에 대한 기원을 추적할 수 있었으며, 복잡한 센고쿠기 다이묘들의 움직임을 이토록 소상하게 밝혀낸 점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도 일본인의 책이 아닌 우리나라 사람이 객관적인 입장에서 정리한 센고쿠 시대의 역사서라서 더더욱 신뢰가 갔다.


물론 책에서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책에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첨부자료나 지도 등을 풍부하게 담고 있지만, 중요한 전쟁의 경우 진군로 정도는 표현해줬으면 어땠을까 싶다. 저자는 책에서 그런 부분들을 직접 찾아서 보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하지만, 학자가 아닌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 작게 인쇄된 지명을 보며 세력들의 추이를 직접 살피는 것은 아무리 애정이 있다 하더라도 독서의 흥미를 반감시키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젊은 나도 작은 지도의 지명들을 보기에 어려웠는데, 눈이 어두운 어른들의 경우는 어떻겠는가. 정성스럽고 잘 쓰인 저서에 옥에 티인 것 같아서 매우 아쉬웠다. 남은 2권은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에 대해 집중적으로 고찰하는데, 내가 잘 알고 있는 시대라서 그런지 1권보다 더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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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이굿맨 2020-02-28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리뷰수준 ㅎㄷㄷ하네요. 정말 잘봤습니다.